<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리지관찰일지 #두번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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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은
낭만 치사량이 초과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그때쯤 혼자서 떠났던 포르투 여행.
그 여행 중 알게 된 것들의 잔향이 꽤 오래 머물고 있다.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낭만의 취기를 오르게 하는 것들.
청량하면서도 산뜻했던 '그린와인'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들었던 노래 'POOL HOUSE'
그리고 그때 만났던 '포르투 친구들'
파두 공연을 보다가, 와이너리 투어를 하다가, 미식 투어를 하다가, 모루 공원에서
혼자 여행 와서 각개 각각의 이유로 만난 사람들.
나이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 다르지만
여행을 좋아했던 우리는
포르투로 대동단결 되어 어느새 또 새로운 여행지를 계획하고 있었다.
포르투만큼의 낭만을 끌어올려줄 여행지로 여러 곳곳을 논의하다가
다 같이 한 곳에 의견이 모아졌다.
바로 제주도
'우-도'
제주도 중에서도 동쪽을,
동쪽 중에서도 우도를 참 좋아했기에, 대학교 졸업 후 3~4년마다 주기적으로 왔던 것 같다.
아침 배를 타고 일찍 들어가서, 자전거를 타고 속성으로 크게 섬 한 바퀴 돌고서는
"이번에도 알차게 놀았다!" 하고 뿌듯해하며 오후 3~4시 배를 타고 빠져나오곤 했었다.
그러나 꽤 여러 번 왔음에도, 단 한 번도 우도의 밤을 궁금해본 적이 없었다.
매번 해가 중천에 있을 때, 해안선에 별빛 같은 햇살이 일렁일 때,
그 윤슬만을 보고 우도를 다 알았다고 단정하며 여행을 마무리했었다.
그런 와중 요 근래 듣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
우도는 사람들이 하나씩 빠져나가 고요해진 밤 -
그때부터 진짜 매력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발단이었을까
포르투에서 만난 일곱 명은
우도의 밤을 향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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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여행이 코앞에 다가올 때쯤 안타깝게도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여행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하루 정도는 우도의 밤을 누려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토요일 오전, 일요일 오후 돌아오는 비행기를 끊었다.
바쁨을 잠시 접어두고, 우도행 선박에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다.
보통 우도 가는 뱃길 따라서 갈매기떼 들도 움직이곤 하는데 이번엔 갈매기 떼들이 보이지 않았다.
오후 3시 우도행 배에는 우리 일곱 명 포함 30명 남짓 안 되는 사람들뿐이다 보니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배를 탄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우도 천진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아마 우리 배가 마지막 배였던지 항구 앞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렇게, 우도를 빠져나가는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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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의 우도는, 이전에 경험했던 우도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알록달록한 미니 전기 자전거들이 오색 찬란하게 해안도로를 점유하고 있었고
귤 모자를 쓰고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항구 바로 앞에 즐비하게 서있는 전기 자전거 가게들의 뜨거운 호객행위가 끝났다는 것 외에는
이전 봐왔던 풍경 그대로였다.
일렁이는 푸른 파도가 검은 돌에 부딪쳐 산산이 퍼지는 그 모습은 여전했다.
익숙한 풍경들을 눈에 담으며 숙소를 향해 바삐 움직였다.
우도의 밤은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배달도 안되고, 문 여는 가게도 거의 없다 보니
해가 지기 전에 먹을 것들을 사둬야 한다.
긴 밤을 보내기 위한 식량 확보를 위해 바쁘게 바쁘게 움직이며 두 손을 가득 채웠다.
그때쯤 해도 슬슬 바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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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해서 먹을 것들을 정리하고 하나씩 펼쳐두는 사이
통창에 어둠이 짙게 묻어나기 시작하며, 낮의 우도가 조금씩 접히고 있었다.
우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해산물에 청량한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며
지난 포르투 여행 이야기로 채워나가다 보니
잔은 비어갔고 어느새 술이 부족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숙소에서 20분 거리에 편의점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게임으로 편의점 갈 사람을 정하기로 했다.
추운 밤에 누가 나가고 싶겠는가.
모두가 치열했으나, 게임에 자신 있다며 큰소리치던 나는 어느새 편의점 선발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조금 기뻤다.
이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사람 없는 우도의 밤거리를 꼭 한 번은 걸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다 같이 걷고 싶었다.
우도의 밤을 보러 온 여행인데 숙소에만 있기 너무 아깝지 않냐며
논리보다는 감정에 가까운 설득을 했는데 아마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던 것일까.
결국 모두가 문을 나섰다.
밤 9시
우도의 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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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내가 경험한 그 어떤 밤보다도 어두웠다.
그리고 그 어떤 밤보다도 고요했다
칠흑 같은 어둠
찰싹, 찰싹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
머리 위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조용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차도 없고
가로등도 얕고
사람도 없었다.
휴대폰 불빛을
작은 등대 삼아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걷다보니
어둠이 짙을수록 더 하나가 되었다.
이 세상에 우리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자
이상한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고라니처럼 소리를 질러도, 망아지처럼 뛰어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날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
초점이 맞은 것이 거의 없지만
흐릿한 사진 속 눈빛만큼은 다들 또렷하다.
별빛을 닮아
빛나는 안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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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괜히 웃음이 났다.
우도에서 밤에 편의점에 간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고 웃긴 일일 줄은 몰랐다.
돌아오는 길에는
때아닌 달리기 시합이 시작됐고
웃느라 숨이 차 금세 숙소에 도착했다.
지도로 보면 왕복 40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그 시간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았다.
어둡디 어두운 바다
찬란하게 내리쬐는 별빛
얼굴을 스치는 짠 공기
멀리서 천천히 움직이던 등대
고요함 속에 자연과 우리뿐이었다.
그 사이를 웃음소리와 숨소리가 채웠던 시간 -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이다.
1년 전 포르투에서 만난 우리가
1박 2일 우도라는 조금은 무리한 일정임에도
같은 밤하늘을 보기 위해
각자의 시간을 비워 제주로 모였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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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여행지를 추천해 달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우도의 밤을 말하고 싶다.
바다는 잘 보이지 않았고
윤슬도 없었고
푸른색도 아니었지만
칠흑 같은 어둠과
고요함 속에
우리들로 꽉 채워져 있었던 그 밤-
그렇게 가장 어두웠던 우도의 밤은
낭만 치사량 한도초과한
기억 속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언젠가 와인이나 막걸리를 만들게 된다면
#꼭 쓰고싶은 네이밍
#우도의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