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1.
문득 내가 왜 관찰일지를 쓰는지, 그 이유를 문장으로 붙잡아두고 싶어졌다.
사전적인 의미로 관찰(觀察)은 '어떤 현상이나 대상을 주의 깊게 파악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리고 이 행위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바로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 채 풍경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일 수도 있고,
선명하게 인지하여 마음속에 새기는 일일 수도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기준은 결국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대상에 관심이라는 온기가 묻어나는 순간,
그것이 왜 그곳에 존재하는지 궁금해지고, 확인하고 싶어 지며,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그렇게 주의 깊게 살피다 보면 어느덧 대상과 나 사이에는 '관계'라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생겨난다.
영화 <아바타>에는 이러한 관점을 관통하는 대사가 나온다.
"I SEE YOU"
처음엔 그냥 멋있는 인사말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 말은 단순히 '본다'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상대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수용하고 인정할 때, 그들은 I SEE YOU.라고 인사를 건넨다.
내가 어떤 사물을 진정으로 바라봄으로써
관심을 가지게 되고,
관계성을 만들어 가는 것.
이 대사가 내포하는 것과 같이
나는 관찰은 관계 맺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한 주간의 세상 관찰을 통해 내가 맺게 된 '관계'의 기록들을 <일일관찰 일지> 형태로 남겨본다.
2.
스타벅스에는 다른 커피 전문점에는 없는 유일무이한 풍경이 있다.
커피가 완성되면 진동 벨 대신 서버의 목소리로 주문자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닉네임이 없는 경우는 번호를 외치고, 닉네임이 있는 경우에는 이름을 외치며 주문한 커피가 완성됐음을 알린다. 사실 닉네임을 설정하기 전까지는 이 서비스가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오히려 커피를 가져가지 않는 손님 이름을 계속 외치는 서버들이 조금 안타깝게 느껴졌고,
'다른 곳처럼 진동벨을 두면 되지, 굳이 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연말, 별생각 없이 스타벅스 앱을 만지작거리다가 닉네임을 바꾸게 되었다.
추운 날에도 아이스아메리카노만 고집하는 나의 아이덴티티를 한 스푼 넣은 닉네임
"아아가 좋다”
-
그리고 며칠 뒤,
평소처럼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소음 사이로 서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가 좋다 님~!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내 닉네임이라는 까맣게 잊고서는 멍 때리고 있었는데 한번 더 서버가 크게 외쳤다.
"아아가 좋다 님~! 아이스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아. 나구나.
두 번째 부름에서야 황급히 달려 나갔다.
쑥스러움에 얼른 잔을 받아 들고 나오는데, 테이크아웃 잔 위에 그려진 '하트'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아아가 좋다! 라는 취향이 담긴 닉네임에 대한 화답이 아니었을까.
스타벅스는 이 서비스를 '콜 마이 네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순간 김춘수 시인의 <꽃> 시구절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는 그 순간 그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지는 관계성.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 맺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 날이었다.
3.
밥을 먹고 난 후 정동길을 자주 걷곤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식사 후 소화를 시킬 겸 천천히 길을 걸어가고 있다가
오랜만에 공중전화 부스를 발견했다.
'응? 공중전화 부스가 아직도 있네..?'
시간이 멈춘 듯한 공중전화 부스.
아직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동전으로 결제가 되는 걸까
호기심에 안을 들여다봤는데 그 안에는 공중전화와 함께 <충전돼지> 라는 휴대폰 충전기 기기들이 놓여 있었다.
공중전화박스 안 핸드폰 충전기
이 아이러니함을 목격하고는 바로 사진으로 남겼다.
공중전화를 죽였던 존재와의 공존.
적과의 동침.
어떻게 보면 이게 새로운 생존 방식 같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존재 가치가 희석된 공중전화가
본인을 위태롭게 한 충전기를 받아들이며
또 다른 형태로 살아남는 것.
이 아이러니한 장면에서
또 다른 생존법을 목격하고 말았다.
4.
AI 전환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 회사도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연초 업계 최초로 기획 풀제를 시작한다고 공표했다.
수십 년간 익숙했던 '팀 단위'의 조직 체제에서
업무 효율화를 위해 '프로젝트 단위'로 조직 구성을 변경한다는 이야기.
앞으로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프로젝트마다 모이고 흩어지는 '각개전투'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모두들 말한다. 팀이라는 보호 체계 없이 이제는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러한 조직의 변화가 부담과 걱정으로 더 다가왔었다.
그러던 중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이라는 전시에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제목은 <각자도생>
그동안 나는 이 단어를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 관점으로만 해석했었다.
하지만 각자도생이라는 제목 하에 그려진 그림 속 여섯 인물은 서로를 밀어내지도, 침범하지도 않은 채
각자의 도형을 품고 평온하게, 가장 편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있었다.
이 그림으로 알 수 있었다.
각자도생의 '도'를 그림 도(圖)가 아닌 길 도(道)로 해석하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각자의 도(道)와 생(生)
살아남기 위한 궁리가 아닌 각자가 걸어가는 고유한 길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며 온화하게 공존하는 공동체의 모습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앞으로 마주할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마음가짐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5.
관찰이라는 의미릉 더 명확히 잡아보고 싶어서 여러 용어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단어가 있다.
'사띠 sati'
불교에서는 관찰하는 것을
주의 깊음이라 보고, 이를 사띠라고 칭한다.
sati의 원래 의미는 '기억'이라는 뜻인데
블교에서는 이를 확대하여 '마음이나 대상을 잘 알고 있는 상태' 혹은 ‘관찰하다'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마음이 들뜸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보호하고 균형을 잡아주는 것.
그리고 이 단어는 다양한 의미로 번역된다.
알아차림, 주의 깊음, 깨어있음, 마음 챙김...
나도 이 단어를 나만의 방식으로 정의하고 싶다.
'사띠(관찰), 관심으로 관계 맺기'
무관심 속에서 홀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들에게
시선을 주고 관계를 맺어줌으로써, 그것들이 내게 의미 있는 '인연'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
이것이 내가 관찰일지를 멈출 수 없는 이유다.
I SEE YOU.
오늘도 나는 당신을, 그리고 세상을 깊이 관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