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건지는 깨달음 하나 #23
일요일 고전 독서토론에서는 4가지 주된 덕(지혜, 용기, 절제, 정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많이 와닿았던 절제와 정의에 대한 부분을 말해볼까 합니다.
절제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노예'로 사는 삶’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삶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표현이 뜻하는 것은 각 개인의 혼 안에는 더 나은 부분과 더 못한 부분이 있는데, 본성적으로 더 나은 부분이 더 못한 부분을 제어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주인’이라는 표현으로 절제의 본성을 암시하는 것이라네. -국가, 플라톤전집Ⅳ, 제4권, 431a-
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우리는 모두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가지고 태어나지요. 그중에서 자신이 더 잘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연마하면서 잘하는 일 하면서 살아가야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네요. 그렇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땜질하느라 잘하는 것이 사장되거나 뒤로 밀리는 삶을 사는 것을 ‘자신의 노예’인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강점에 집중해서 살아가는,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갈 때 개인으로든 속한 국가에서건 조화로운 삶, 질서가 있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삶은 부조화한 삶, 무질서한 삶이라는 말로 해석이 됩니다.
그다음으로 나오는 말이 정의였는데요,
우리가 원칙을 정하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저마다 자기 적성에 잘 맞는 한 가지 일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네.
-국가, 플라톤전집Ⅳ, 제4권, 433a-
또한 우리는 정의란 제 할 일을 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
-국가, 플라톤전집Ⅳ, 제4권, 433b-
그러니 여보게, 이처럼 각자가 제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정의인 것 같네.
-국가, 플라톤전집Ⅳ, 제4권, 433b-
한 국가가 정의로운 국가가 되려면 각자 자신이 잘하는 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개인이 모인 곳이어야 하네요.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느라 남의 일에 참견할 시간도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일 찾아서 각자 제 할 일을 하며 살아가야 결국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해줍니다.
한 개인이 국가이고 한 가정이 국가라고 가정해 봐요.
개인으로서 정의로운 삶이란 자신이 잘하는 일 찾아서 그것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하네요.
그렇게 살아갈 때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서도 정의롭게 기여하는 일이며, 정의로운 사회, 정의로운 국가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일이네요.
우리나라가 한 개인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국가 시스템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를 잘해야 학교 성적이 좋아지고 학교 성적이 좋아야 원하는 대학을 다니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곳에 취직을 하고.....
그런 교육 시스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시스템에 맞추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를 거론하면 안타깝고 답답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현장의 교사로서요.
우리 아이들 정말 너무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채우느라 그 많은 학원을 하루 종일 다니고.....
(저는 하루만 하라고 해도 두 손 두 발 다 들겠습니다. 정말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 시스템(제도) 임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 이것저것 다 시키고, 부족한 것 메꾸느라 에너지를 다 뺏게 하는 게 정말 맞는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공부를 부모가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 한 두 권만 읽어도(훑어보아도, 관련 강의 한 두 개만 마음 열고 들어 보아도) 바로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저도 이 미래 공부 안 했으면 깜깜한 암흑 세상을 살아가고 있겠지요. 현상만 보이는 것을 다 보인다고 알고, 잘 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내 자식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그건 실컷 해 봐야 알 텐데.....
실컷 해 볼 시간이 없습니다. 실컷 해 보도록 허락할 마음의 여유가 더 없습니다.
그 일이 너무 좋아서 너무 재미있어서 한 번이라도 실컷 해 봐야, 끝까지 한 번 가 봐야, 그 지점에서 그 일이 자기가 진짜 좋아하고 잘하는 일인지? 힘들고 어려움이 예상되어도 밀고 나갈 것인지? 무늬만 좋아한 건지? 스스로 구분해 낼 마음의 눈이 생길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허튼짓(♥)을 할 기회와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그 허튼짓이 내가 진짜 잘하는 일이 될지를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시간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시간과 기회가 없다고 똑같이 한 길로 경쟁하듯 계속 달려가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을 허락하게 하고 함께 찾아가는 부모님들도 계시니까요.
방학 동안 이런 것 실컷 해 볼 기회를 가지면 안 되나요?
부모님이 함께 못해 주시면 아이 스스로라도 하게 내버려(허락) 두면 안 될까요?
하루 종일(일주일) 학원 열심히 갔다 왔으니 저녁에(주말에) 게임 실컷 하도록 허락하라는 말은 아닌 것 아시지요?
거의 모든 시간을 학원, 아니면 공부해야 하고 나머지 귀하게(?) 주어지는 시간에는 하고 싶은 게임 해야 하니까 자신에 대하여 알아가고 실습을 해 볼 기회(식간)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선수학습(선행학습) 한 학기 못하면 세상이 끝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보면 진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선수학습(선행학습) 더 많이 한 아이들이 학급에서는 공부시간 더 집중도 못하고 생각하고 생각을 나누는 공부는 더 잘 못하고 있으니까요.
뇌 용량이 가득 차 버려서가 아닐까요?
생각 시스템인 뇌가 이런 공부들 하느라 꽉 차 버려서 생각을 할 공간과 뇌를 위해 사용할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요?
이미 학원에서 다 배운 공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한 공부, 학교 가서 배우려니 얼마나 힘들까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배부른데 억지로 먹으려니 얼마나 힘들까요? 꾸역꾸역 먹는 음식이 몸에 좋은 영양가 있는 음식이 될까요?
이번 방학 내 자식에게 어떤 시간을 허락할 건가요?
고학년 된다니까 학원 한 군데 더 다녀야 하는 것 아닌지? (다른 부모님들도 다 그렇게 한다니까) 그것 먼저 고민하고 알아보고 아이에게 푸시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학원 최소한만 다니게 하고(꼭 필요한 학원만을 말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아이 잘 키우고 계신 부모님과도 정보를 나눠 보시는지요?
같은 생각을 가진 부모님과 정보를 나누면 서로 안심은 되겠지요. 그러나 더 좋은 길, 바른 길은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요.
내 아이를 정의롭게 성장하게 하도록 도울지, 아닌지의 문제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