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공습경보가 발령된 느낌이었습니다.
확성기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코로나’라는 이상한 바이러스가 사람을 침투했데! 죽을 수도 있데.”
“얼른 집 속으로 숨어!”
“마스크 무조건 쓰고, 손 씻기도 철저히 해야 해!”
“사람들과도 만나면 안 돼. 혹시 사람들이 보이면 멀리 떨어져서 걸어!”
영화 장면으로 보았고 상상만 했던 일이 현실에서 직접 벌어졌습니다. 코로나라는 이상한 바이러스의 출현을 숨죽여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아무 저항도 못한 체 인간과 바이러스의 불편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점 점 주눅이 들어갔습니다. 혹시 나에게도 옮길까 봐 납작 엎드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복종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시간이 너무나 더디 흘렀습니다.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있다가는 뭔가 끔찍한 일을 더 당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서서히 밀려왔습니다. 그 불길함과 위기의식은 작년 여름, 제게도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딸이 있는 미국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 한 번은 그럴 수도 있겠다. 겨울 방학 때 가지 뭐.'
스스로의 다독임과 마음속의 유예가 6개월 후에 또 무산되어 버렸습니다. 1년 넘게 가족을 볼 수 없으니까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당한 생이별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화도 났습니다.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게 딸의 존재, 가족이라는 의미는 더 특별했으니까요. 6개월이나 늦어도 1년에 한 번씩은 미국에 있는 딸과 만나서 가족이라는 수혈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의미였거든요. (남편이 일찍 돌아가셨고, 딸 하나인데 고등학교 때 미국 유학을 가서 결혼해서 지금도 미국에서 살아요.)
정확하게 알아야 했습니다.
“도대체 바이러스란 이놈 실체가 뭐야?”
“세상이 갑자기 왜 이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는 거야? 뭐가 잘못된 거지?”
세상이 왜 이러는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아니 꼭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언제까지 딸을 만날 수 없는 건지? 내가 무엇을 더 양보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이걸 알아야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정말이지 바이러스가 무서운 게 아니라 이 모른다는 무지의 막막함이 더 무서웠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사람들은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고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예상이 되면 견뎌낼 수 있다고 하잖아요. 바이러스의 공포와 함께 무지의 공포가 갈수록 엄습해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무렵 김미경 학장님의「김미경의 리부트」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제게는 혜성 같은 책이었지요. 얼른 읽어 보았습니다. 정말 큰일이 벌어진 것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잠시 왔다가 사라진 바이러스랑은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 어쩌면 더 오래 이런 전쟁과 같은 상황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절망까지 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자초한 일이라는 사실과 어떻게든 인간이 되돌려 놓아야 할 일이라는 것도. 더 나쁜 소식은 인간이 노력을 서두르지 않으면 불과 30년 후에는, 지구는 인간이 거주 불가능한 곳이 될 거라는 경고도 마주해야 했습니다. 인간의 멸종까지 예고하고 있는 과학적인 여러 사실들을 탄식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내 자식 구해내고 싶었습니다.
“안 돼! 안 된다고!”
“내 자식 이제 겨우 30대인데, 30년 후는 60살도 안 된다고! “
“내 손자 손녀는 이제 겨우 5살, 1살인데…….”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래도 받아들이겠는데, 30년 후면 내 나이도 90살 가까이 되는 거니까……. 그런데 내 자식은 어떡하냐고? 내 자식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면 절대 안 되잖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마음속에서 “안돼!”를 몇 번이고 외쳤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 너무나 버거웠습니다. 차라리 이 끔찍한 사실을 몰랐으면 좋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개구리가 서서히 데워지는 가마솥 물속에서 의식도 못하고 죽어가듯이 나도 우리 가족도 그렇게 죽어가겠지요. 이런 생각 너머로 사랑하는 내 자식들의 모습이 다시 클로즈업되어 나타났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백번 양보해도 사는 것, 살아내는 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어떤 세상이 온다 해도 우리는 살아나가야 한다.”
-김미경의 리부트, 김미경-
김미경 학장님의 비장한 각오가 제게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나에게 하는 응원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공부를 시작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그 무렵 인스타에서도 위기의식을 느낀 젊은 사람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리부트 스터디팀을 만들어서 매주 공부하면서 인증샷을 올리고 있는 팀도 있었습니다.
'나도 저런 공부를 하면 좋겠는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다른 공부도 아니고 디지털 공부가 주(主)인 것 같은데…….'
뼛속까지 기계치라고 자타가 인증하는 저는 디지털 공부라는 말에 잔뜩 주눅부터 들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공부만은 못해낼 것 같았습니다. 마음속에서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가 치열하게 씨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리부트 공부에 대한 도전은 마음 한 켠 아쉬움으로 접어놓고 지내던 어느 날, 딸이 보내준 손자의 동영상을 보고 있다가 또다시 눈물이 터졌습니다. 손자가 기도하는 모습의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마지막 내용 중에 “~~지켜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합니다. 전혀 관계없는 영상인데도 왜 그렇게 가슴이 먹먹하던지요. 할머니에게 하는 간절한 부탁처럼 들렸습니다. 할머니를 응원하는 손자의 기도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이제는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있다가는 나만 망하는 게 아니라 내 딸, 내 손주까지 망하겠다 싶으니까 다시 정신이 차려졌습니다.
그래 한 번 해 보자. 할 수 있을 거야.
희망의 빛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어디에 홀린 사람처럼 바로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인스타에 이런 내용의 공지를 올렸습니다.
50대 이상 언니야들 중 삶에 반하고 싶은 언니야들 있으면 모여 봅시다.
리부트 스터디하면서 함께 성장하고 싶습니다.
공부 방향은 함께 의논해 가면서 하겠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제 또래 동지들이 여러 명 있었더라고요. 금방 팀이 구성되었습니다.
‘삶에 반한 언니야들!'
우리의 리부트스터디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한 주도 빠짐없이 리부트스터디는 진행되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 2시간이 우리의 리부트스터디 시간입니다. 1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었고 치열하게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아예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구성을 했습니다. 자기 계발도 부지런히 해 나갔고 함께 점검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1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8월 11일이 1년째였습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부를 해 갈수록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렴풋하던 세상이 도수 맞는 안경을 낀 것처럼 분명해졌습니다. 다른 질서가 잡히고 있다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면 이 질서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연대해서 배우고 공부하면 어떤 세상이 와도 두렵지 않겠다는 자신감과 믿음도 생겼습니다. 과거 그 어떤 시기보다 훨씬 힘든 만큼 더한층 성장할 타이밍이라는 확신과 함께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맞아. '엄마’를 먼저 살려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구나!
이 희망적인 생각에 초점이 맞추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의 변화를 알아가면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건 ‘엄마’라는 대상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달라진 우리의 삶, 그 속에 가정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였거든요. 왜 가정이 제 역할을 확실히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는지? 그 속에서 엄마 역할이 왜 훨씬 더 중요해졌는지? 엄마가 어떻게 하면 엄마도 살고 가정도 살리고 나아가 세상을 살릴 수 있는지? 이렇게 더 중요해진 엄마의 존재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려주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리 복음과도 같은 내용이라도 말이에요. 그렇잖아요. 공식적으로 엄마가 중요하다고 말해버리면 엄마들에게 십자가를 지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엄마 역할 잘 못해 내면 큰일 나니까 정신 바짝 차리라고 다그치는 것처럼 들릴까 봐 많이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 위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공부인데, 결국 엄마가 더 중요해졌고 엄마 역할 똑똑히 해야 하는 걸로 결론 나니까 예상은 했지만 당황스러웠습니다. 내 자식이 더 힘들게 생겼고 내 자식에게 더 부담을 주는 일이 되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당장 세끼 밥 누가 하루라도 좀 맡아서 해결해 주면 숨통이라도 트이겠다는 것이 엄마들의 소박한 바람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 둘에 시달켜서 퀭한 눈으로 등장하는 페이스톡 화면상의 딸의 모습이 이 세상 엄마들 모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온 힘으로 살아내고 있는데, 이 상황만으로도 너무나 힘이 든다는 것도 아는데……. 위로 먼저 못해주면서 좋은 것 어떻게든 떠먹여 주려 안간힘 쓰는 엄마로만 보일까 봐 너무 미안해서입니다. 받아먹더라도 스스로 꼭 꼭 씹어서 삼키고 소화시킬 시간은 충분해야 몸에 좋은 영양분으로 흡수될 텐데……. 그럴 타이밍도 아닌데 눈치 없는 엄마인 것 같아서 눈치가 많이 보여서입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우리 새끼 꼭 먹여야 할 것 같아서, 타이밍 놓치면 절대 안 될 것 같아서, 내 입에 넣어 대신 씹어서라도 딸에게 먹이고 싶어서 자꾸 애간장이 탑니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는 대신 살아서라도 힘든 걸 조금이라도 덜 경험하게 하고 싶잖아요.
하지만 코로나 세상이 오기 전까지는 저도 딸 스스로의 보폭으로 삶을 경험하며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엄마였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미리 알려주지 않아도 경험하면서 스스로 깨닫도록 허락해 주는 그런 엄마였습니다. 그 보폭이 느려도 심지어 뒷걸음질 쳐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의 삶의 길을 침범할 생각도 관여할 권리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엄마가 혹시 딸의 삶에 끼어든다 생각되면 언제든 옐로카드 들으라고 말해 달라던 엄마였습니다. 딸에게 옐로카드 받은 적은 없습니다.(딸은 아니라고 할는지요?^^). 엄마가 할 일은 응원과 기도가 전부임을 알았고, 그걸 온 마음 다해서 실천해 내며 살았던 엄마였습니다.
지금은 노아의 방주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잘 모르지만 ‘노아의 홍수’와 같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홍수가 났고 많은 사람들이 대책도 없이 떠밀려 내려가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노아는 미리 준비한 방주로 자신과 가족과 가축을 살려냅니다.
코로나 이후 디지털로 이사를 서두르고 그 세상에 먼저 입성하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이사한 세상에서도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갈수록 더 많이 보입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눈치 못 채고 홍수에 떠밀려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보입니다. 홍수 인지도 모른 채로요. 내 딸도 내 가족도 이 홍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듯이 보입니다. 이러다 떠밀려 내려가면 어떡하나 많이 걱정이 됩니다. 내 자식 죽이게 생겼는데 가만 내버려 둘 엄마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딸에게 뭐라도 알려주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했던 공부였습니다. 1년이라는 세월이 모이니 노아의 방주를 준비한 셈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를 먼저 살려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다음은 사랑하는 내 자식, 내 가족 살려 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코로나의 또 다른 최전선,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애쓰시는 모든 엄마들을 살려내고 싶은 생각은 세상의 친정 엄마를 대신하는 애잔한 마음일까요? 그래서 책으로 얼른 엮어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이 노아의 방주와 같은 책이길 희망해 봅니다.
희망이 보이면 아무리 힘든 일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엄마'입니다. 힘 나면 뭐든 시작하고 해 낼 '엄마'들입니다. 자식 위한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책이 위로와 안심과 응원을 담은 책으로 먼저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내 자식 숨 좀 돌리고 힘 얻어야 뭐라도 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조금만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면 자기 자식 위해 금방 힘낼 수 있는 엄마들입니다.
코로나 백신의 효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엄마백신'의 효능에 비할까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엄마 한 사람의 역할이 때로는 엄청난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그 어느 시기보다 힘든 만큼 더 잘 이겨낼 테고 더한층 성장할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제가 알게 된 것 제 딸과 세상 엄마들이 얼른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또 다른 방주를 만드는 기회가 되길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자식, 가족을 살려내는 방주 역할을 확실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가족 지켜내는 수준을 넘어서서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코로나를 이기는 차원을 넘어서서 코로나에 당당하게 승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라는 이 단어와 접선하면 엄마들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엄마’라는 이 말은 그 어떤 예상을 뛰어넘는 기적을 가져다주는 에너지 덩어리인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 말아요.
우리는 또 해 낼 것입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더한층 성장할 것입니다.
신은 선물을 주실 때
고통이라는 보자기에 싸서 주신다죠?
이번 선물은 더 큰 것 같습니다.
내 자식 잘 되는 것
내 자식 행복해지는 것
나도 그 속에 ‘엄마’로 사는 것만큼
더 좋은 선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인스타에 리부트 스터디하자고 공지 올렸던 피드 모습입니다. 내 손자가 기도하는 모습의 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