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여행동기
파란색은 언제나 예쁘다.
해질녘의 파란 하늘이나 바다 수평선, 녹색빛 나는 파란 물속, 맑은 하늘 아래 걸려 있는 쪽빛 천조각. 그런 파란색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의 여행 동기는 언제나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한 장면이 머릿 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예쁜 파란색을 보면 마음 속에 꼭꼭 접어 간직했다가 이따금 한번씩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아, 이곳에 꼭 가야지'라는 다짐을 했다.
_첫번째 여행동기
17살에 본 파란색은 사진이 많은 유럽여행기 속에 있었다. 특별히 프랑스나 유럽권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아, 여행하고 싶다.' 정도? 책을 산 이유도 사진이 예뻐서였다. 휘리릭 넘긴 책장 중 눈에 띄는 사진 하나가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은 프랑스의 파란하늘과 어울려 있었다. 아직까지도 유럽은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깨끗하고, 청량하고, 맑은 느낌에 책 속 사진을 보지 않고 눈만 감아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_두번째 여행동기
19살에 본 파란색은 영화 속이었다. '세얼간이'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많은 이야기도 담고 있었고. 그러나 내용보다는 마지막 장면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인공이 아이들과 모형비행기를 날리던 그 곳. 인도 어딘가에 있는 바다인줄 알았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인도 북부에 있는 호수였다.
<판공초>
하늘과 산 아래 있는 맑은 물. 한없이 파랗고 맑은 물, 다르게 보면 보랗빛도 도는 예쁜 색을 가진 호수였다. 19살 수능이 끝나고 본 영화 '세얼간이'의 마지막 장면은 22살 5월에 인도로 떠나게 만들었다.
_세번째 여행동기
언제였더라, 모르겠다. 동화 속에서 열기구를 보았는지, 항공사 CF에서 본건지, SNS에서 본 사진인지. 어느순간부터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곳이 생겼다.
<터키 카파도키아 열기구>
스쳐지나며 본 사진들을 마음속에 꼭꼭 담아두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그 전에 먼저 터키에 있는 <악마의 눈, 나자르본주>일 수도 있다.
악마의 눈이라고 불리는 그 부적의 파란색, 흰색, 검정색의 조합이 예뻤다. 어두운 파란색은 유리로 만들어져 투명하고 맑았다. 흰색과 검정색이 섞인 눈알과 대조되는 모습, 그리고 그 부적이 달려있는 배경은 파란 하늘. 맞아, 이것도 고등학생 때였다. 한창 히피문화라는 것에 그들만의 자유로움과 모양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 그래서 악마의 눈과 히피문화를 찾아보다가 카파도키아를 찾은 것 같다. 카파도키아의 하늘은 구름도 없이 파랬고, 그 파란 곳에 브로치를 달아 놓은 듯한 알록달록 예쁜 열기구들이 나는 모습에 반했다.
쓰다보니 터키의 하늘에 반한 것 같기도 하고.
_네번째 여행동기, 다섯번째 여행동기, 여섯번째 여행동기
네번째, 다섯번째, 여섯번째 여행동기는 짧다.
그리스, 산토리니섬
그리스는 예전부터 막연하게 '예쁜 곳, 파란색, 흰색, 바다'라는 이미지에 그냥 무작정 가고 싶었다. 최근에야 이유하 하나 더 늘었다. SNS에서 본 바닷물이 청록빛을 띄었는데 그 바닷물 속에 잠겨버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늘 보던 흰 벽에 파란 지붕, 그리고 파란 하늘. 이따금 '계단이 많아서 올라가기 힘들 것 같아. 만약 그곳에 가서 올라가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재밌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베니스, 부라노 섬
아이유의 '하루 끝'이란 노래가 있다. '하루 끝'의 뮤직비디오 중 20분짜리 긴 뮤직비디오가 있었다. 거기에 나오는 이탈리아의 숙소는 잿빛 도는 푸른색이었고, 밖은 비가 내렸다. 우울한 파란색은 덩달아 사람을 풀어지게 만들었다. 느릿느린, 꿈뻑꿈뻑, 오히려 장면이 전환된 파란 하늘보다 나른하고 우울한 느낌의 잿빛 푸른 하늘이 인상깊었다. 숙소에서 천천히 준비하고 나와 거리의 과일상점에서 사과하나 사며 걷는 그 모습이 예뻤다.
일본,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
일본 오키나와 츄라우미 수족관을 찾으면 항상 나오는 사진이 있다. 넓은 유리 수족관에 고래상어 한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 파란 불빛과 파란 바닷물. 그리스 여행동기에도 썼다시피, 그런 깊고 맑은 물속을 보면 그곳에 잠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상어이긴 하짐만 고래도 정말 좋아하고.
자꾸 여행동기가 늘어난다. 그곳이 유명해서가 아니라, 어느 한 장면만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다.
이런 여행동기에 직접 응답했던 건 인도 한군데밖에 없지만, 이번 9월에는 오키나와도 갈 것이고, 차차 가려고 한다.
일단 2012년 5월에 다녀온 인도 배낭여행을 쓰다보면, 오키나와에 가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