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읽는인간 Dec 27. 2022

시 필사는 처음이지?

준비물은 예쁜 수첩 한 권, 펜 한 자루

시 필사는 처음이다.


진아 작가님이 시를 필사하신다고 했을 때, 뭔지도 모르고 그가 한다니까 좋다좋다 나도나도 손을 들었다. 어디에 쓰는 약인 줄도 모르면서. 하여튼 방정은.


준비물은 예쁜 수첩 한 권. 보아하니 시 필사엔 꽃무늬가 대세인 것 같았지만 우리집에 그런 건 없어서 여행용으로 사 두었던 몰스킨 분할 노트에 적어보기로 했다. 하다 지칠 수 있으니까 되도록 얇은 걸로. 뭐든 스몰 스타트. 여러번의 실패 속에서 건져낸 교훈이다.


첫 날인 오늘은 복효근 시인의 <우산이 좁아서>라는 시를 옮겨 적었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적으며 같은 우산 속 나란히 걸었던 사람들(이라 쓰고 오빠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내 왼쪽 어깨보다 덜 젖은 네 어깨를 보며’ 라는 구절에선 실제로 같은 상황 다른 반응을 보였던 남편과의 일화가 생각나 부끄러웠다.


신혼 초, 남편과 나란히 우산을 쓰고 가면서 나보다 덜 젖은 그의 어깨를 보며 ‘아 뭐야. 나만 젖었잖아! 이쪽으로 해 좀!’ 역정을 냈었는데 시인은 되려 내가 젖어 다행이다, 더 젖지 못해 미안하다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연상의 B군. 우리집에 놀러와 한참 재밌게 시간을 보내다 무슨 영문인지 내 마음이 토라져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했다. 그는 무릎 위에 올려 두었던 우리집 강아지를 바닥에 살포시 내려 놓더니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키며 말 없이 뒤돌아 섰다.


나중에 도착한 문자메시지에 ‘내가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너네 집 강아지 소파에 오줌 쌌다. 말해주려 했는데 네가 기분 상할까봐 중간에 말을 끊지 못했어. 내가 앉아있던 자리니까 확인해 봐’.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덜 익었지만 분명한 사랑이었다.


프롬의 말대로 사랑이 기술이라면, 사랑이 예술이라면 나는 사랑을 더 배우고 연마해야겠다. 그리하여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익숙한 사랑을 해야하겠다.


‘엄마는 괜찮으니까 너 많이 먹어’

‘엄마는 괜찮으니까 너 입고 있어’

‘엄마는 괜찮으니까 너 쓰고 가’


아이에겐 한치의 고민도 없이 건네는 말들. 내가 깊어 그런게 아니었나보다. 사랑에 무지하고 서툰 내가 그나마 사람 구실 할 수 있게, 사랑을 만져보고 베푸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나에게 와 준 것이었나 보다.


영글자.

우산과 마음을 내가 아닌 너의 쪽으로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시 필사를 함께 하고 싶으신 분들은 진아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내 보세요. 매일 시 한편을 스토리즈로 발송해 주신다고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 밖으로 나온 덕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