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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인간 Oct 06. 2021

집 밖으로 나온 덕질

덕질,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덕질 

noun [덕찔]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그것은 어느 날 홀연히 나를 찾아와 어느샌가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신비로운 마법.  친근한 듯,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이 단어는 과연 어디서 왔을까. 덕질의 어원을 쫒기 위해선 먼저 ‘덕후’라는 단어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


덕후란 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깊이 있게 빠져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어의 ‘오타쿠(オタク)’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른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일본에서 ‘오타쿠(オタク)’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만화 등 서브컬처 중에서도 특히 기호성이 강한 취미나 수집벽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당시에는 일부 마니아 층에서 통용되었다고 한다. 


본래 일본어로 ‘오타쿠(お宅)’는 집, 댁을 의미하는 타쿠(宅)에 대상을 높여 부르는 접두어 오(お)가 붙여진 단어다. 말 그대로 집을 칭하기도 하고, (그 댁에 사는)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이것이 마니아 적인 취미를 갖는 사람을 이르는 오타쿠(オタク, 이 경우 가타가나로 표기함)를 의미하게 된 이유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관심사에 깊이 빠져 집 안에서 고립된 생활을 한다는 견해와, 서로에 대한 배경 지식 없이 오로지 취미와 취향으로 모인 오타쿠 사이의 데면데면한 거리감을 나타내는데 적당한 호칭이었기에 사용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과거 오타쿠는 일본에서도 비호감의 상징이었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만화 등 서브컬처를 즐기는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특히나 기호성이 강한 마니아층을 부르는 단어였기 때문에 어딘가 현생에 충실하지 못하고 사교성도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오타쿠 스스로 사회와의 일정 거리두기를 은근히 즐기기도 한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일본의 버블 경기와 맞물리면서 특정 분야를 탐닉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어른들이 대거 오타쿠 족으로 편입되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더불어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게 됨에 따라 그 밑바탕에 있는 오타쿠 문화를 더 이상 홀대할 수만은 없게 되었던 것도 오타쿠 문화가 사회 전반으로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오타쿠의 시작은 2000년대 전후하여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 게임 등에 심취한 젊은 세대들 사이에 ‘오타쿠’라는 단어가 유입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 현상화되면서 현지화된 ‘오덕후’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〇〇오타쿠’, ‘〇〇덕후’ 등과 같이 특정한 취향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가볍게 사용되는 경향을 보이다가, 현재에 와서는 팬, 애호가, 수집가를 넘어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덕후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덕후 경제’가 마케팅의 키워드로 주목받는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피규어를 모으는 등 수집형 덕후를 겨냥한 굿즈 마케팅도 그중 하나. 팬덤이 형성한 ‘완판 대란’은 덕질에 과감히 투자하는 덕후들의 구매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도 상품 개발 단계부터 덕후들의 취향과 의견을 반영하는 등 큰 손님의 입맛을 겨냥한 다양한 덕후 마케팅을 고민하고 있다. 


나아가 소비에 치중되었던 덕질이 이제는 가치 있는 콘텐츠로 재생산되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어지고 있다. 미드나 일드 덕후들이 자진해서 만든 자막이나 아이돌 덕후가 만든 교차 편집 영상 등, 순수한 팬심으로 우려낸 양질의 콘텐츠로 재능 기부를 하기도 하고, 이를 계기로 직업이나 사업으로까지 연결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과거에는 음지에서 자신의 취향을 숨기며 혼자 덕질을 즐겼다면, 이제는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덕질을 기반으로 한 연결고리를 형성해 가고 있어, 사회적으로도 덕질의 가치와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덕질을 집 안(お宅)에만 가둬둘 수 없다. 


덕질. 그것은 나로 시작하여, 너로 가는 길. 

집 밖으로 나온 덕질을 격렬히 환영한다.




위 글은 2021년 10월 인스타친구들 매거진 가을호 [덕질 - '에디터 코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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