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토리 Mar 24. 2024

마지막 요리수업 날

쉰 살의 유학일기 - 겨울편 #10


열두 번의 요리수업을 모두 마쳤다.

작년 10월에 시작해서 한 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다녔다.

열두 번의 요리수업에서 메인요리 한 가지에 사이드요리 두세 가지씩 만들었으니 꽤 많은 수의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abccookingstudio 홈페이지 캡쳐


일본의 가정식 요리가 궁금해서 시작한 거였는데 꽤 재미있었다.

요리할 때 쓰는 다양한 식재료나 조리도구의 이름, 굽고 삶고 찌는 등 조리법의 일본어를 배울 수 있었고 계량할 때 쓰는 숫자도 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요리가 끝나면 예쁜 식기에 자기가 만든 음식을 담아 창가 테이블에서 먹는데 혼밥일망정 근사한 집밥 한 상을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서 참 좋았다.


마지막 요리수업날은 일본의 공휴일인 춘분의 날이었다. (추분의 날도 쉰단다.)

나와 20대 여성, 60대 여성 셋이서 수업을 받고 나란히 창가에 앉아 그날의 요리인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먹었다.

그동안엔 다들 젊은 여성들과 수업을 해서 인지 서로 멀찍이 뚝 떨어져 앉아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어쩌다 보니 두 여성의 사이에 내가 앉아 먹게 되었다. 휴일이라 테이블이 꽉 차서 다른 데로 옮길 수도 없었다.

가끔 이렇게 나란히 앉는 경우도 있었지만 항상 말없이 자기 음식만 먹었었다.


60대 여성분이 수고하셨어요, 맛있게 드세요라고 하시길래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는데 대뜸 일본인이 아니시네요 하고 알아봤다.

여전히 나의 ざ 발음은 어색한가 보다. ㅎ

요리교실 6개월 다니면서 처음으로 일본인과 이러저러 대화를 하며 밥을 먹었다.

그 중년 여성은 요리교실 고인 물이셨다!!

몇 년째 매년 바뀌는 커리큘럼을 배우러 다니신다고 한다.

밥을 다 먹고 난 후에도 그분이 어디선가 캡슐커피를 빼오셔서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으며 이야기했다.

내가 오늘이 마지막 요리수업이라 하니 너무나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춘분의 날엔 牡丹餅(보타모찌)를 먹어야 하며 어디서 팔고, 이런 날엔 뭘 먹어야 하고 멀 해야 하고…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데 마지막이라 아쉽다 했다.

내가 더 아쉬웠다. 조금만 더 일찍 이 할머니를 만났다면 더 재밌게 요리를 배우고, 일본을 배웠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아쉬움 속에 마지막 요리수업을 마쳤다.

그동안 벌려놓았던 일들을 하나하나 거두고 있는 중이다.

모든 일이 깔끔하게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스노보드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