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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Apr 25. 2024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의 오키나와 여행

쉰 살의 유학일기 - 봄편 #2

마사미상과 함께 오키나와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로 인해 없어졌던 피치항공의 삿포로-오키나와 직항 편이 다시 생기면서 나온 3박 4일 특가 이벤트 상품이었다.

결론은 일본의 패키지여행은 한국의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었고, 한국어 엄청 잘하는 일본인 친구와 같이 가는 거라 불편한 점도 하나도 없었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다 왔다.

나는 여행만 갔다 하면 비를 몰고 다니는 날씨 요괴 쪽이었는데 일본에 오니 갑자기 요괴가 요정으로 둔갑했는지 여행 내내 날씨도 끝내줬다.

한국의 날씨요괴가 일본에 와서 晴れ女(하레온나, 날씨복을 받은 여자)가 되어 일기예보의 비소식도 이겨버렸다.


오키나와의 바다는 홋카이도의 바다와는 다른 매력으로 아름다웠다.

고야참푸루, 오키나와 소바, 오리온 맥주, 사타안다기, 타코라이스 등등 오키나와 고유의 음식들도 맛있었다. (사실 음식은 홋카이도가 더 맛있었다는 건 안 비밀~)


오키나와의 자연도 음식도 다 좋았지만 여행 내내 나는 마음 한켠이 짠했다.

화재로 소실되어 복구 중인 수리성을 보면서 불타던 남대문을 떠올렸고, 타코라이스를 먹을 때 부대찌개가 떠올랐다.

미국인지 일본인지 모르게 꾸며놓은 거리와 해변에서는 동두천, 송탄이 생각났고, 여기저기 철책을 둘러놓은 미군기지를 보면서 용산이 생각났다.

홋카이도 역시 아이누의 땅을 일본이 강제로 뺏은 거지만 전쟁의 흔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이런 감정은 들지 않았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치이고, 전쟁에 무너지면서 얼마나 팍팍한 삶을 살아왔을까.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것을 보고 있는 서른 명의 일본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거의 모든 건물 입구에 세워져 있는 오키나와의 수호자 シーサー(시사)를 쓰다듬으며 ‘잘 지켜주라~’하고 빌다가 흠칫했다.

얘가 얘네 나라 잘 지키면 우리나라한테는 안 좋은 거 아냐? 셈법이 복잡해지는데?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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