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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토리 May 25. 2024

일본 프로야구 관람기

쉰 살의 유학일기 - 봄편 #6

마사미언니의 제안으로 일본 프로야구 닛폰햄 파이터즈의 경기를 보고 왔다.

원래는 남편과 보러 가려고 했는데 내가 귀국하기 전에 하나라도 더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어 같이 가자한 것 같다.


나 열 살 때 한국 프로야구가 처음 생겼었다.

나는 OB베어즈 원년 어린이회원 멤버였으며 - 그 해 OB베어즈가 우승했다! - 최우수 투수였던 박철순 선수에게 사인볼도 받은 사람이다!!

직장 다닐 때는 두산베어즈와 LG트윈스의 빅경기를 보러 잠실야구장엘 꽤나 들락거렸었고, 결혼 후 애들이 좀 컸을 땐 온 가족이 치킨 사들고 한밭야구장에서 한화이글스를 응원했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독수리 아닌 곰팀!!)


아무튼 삿포로시 인근 키타히로시마라는 곳에 있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홈구장, 에스콘필드에서 열리는 경기를 보러 갔다.

에스콘필드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7번째 돔구장이자 후쿠오카 PayPay 돔에 이어서 아시아 2번째 개폐식 돔 야구장이다.

본래 닛폰햄은 삿포로시에 위치한 삿포로 돔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었으나, 삿포로시에서 지나치게 높은 구장 사용료를 요구해 결국 키타히로시마시에 신구장을 지었다고 한다.


일찍 만나 에스콘필드가 있는 F빌리지 주변을 돌아보려고 했지만 날씨가 너무 추웠다. 그래도 야구장 안에는 온갖 음식점과 기념품점이 있어 내부를 구경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홋카이도 지역 특산물을 사용했다는 푸드코트에서 각자 먹을 음식을 사고 맥주를 마시며 야구경기를 봤다.

맥주에 진심인 나라답게 맥주는 자리에서 주문해 바로 받을 수 있었다. 일본도 꽤 디지털화되어서 현금은 안 받는다.

비어걸, 비어보이들이 무거운 생맥주 통을 짊어지고 계단을 쉴 새 없이 오르내리는데 에미 맘이 발동해서 자식 보는 거 같아 어찌나 맘이 짠한지…


선수들 이름은 하나도 모르지만 어쨌든 홈팀인 닛폰햄 파이터즈가 7회 초까지 1점짜리 홈런을 포함해서 4:0으로 앞섰다.

그러다 7회 말, 오릭스 버팔로즈에게 무사 만루의 기회를 내주더니 만루홈런을 맞았다.

헐… 내 눈으로 만루홈런을 직접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8회 말 4:4 동점인 상태에서 일찍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키타히로시마는 작은 도시다. 인구가 6만 명 정도라는데 에스콘필드는 35,000명을 수용한단다.

그럼 오늘 이 경기장에 온 사람들 대부분이 삿포로 사람들일 텐데 경기가 끝나고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그 혼잡은 어마무시할거다. 거기에 끼여가고 싶진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10회 연장에서 5:4로 닛폰햄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 프로야구와 일본 프로야구 대표팀을 역임한 레전드 은퇴 선수들이 오는 7월22일 여기 에스콘필드에서 경기를 치른다고 한다. 일명 '한일 야구 국가대표 OB전'(가칭).

진작 알았으면 귀국을 일주일 늦춰 그 경기를 보고 갈걸 그랬다.

그랬다면 한일전에 진심인 한국인의 응원을 제대로 보여줬을 텐데…

야구장의 시설도 훌륭하고 선수들 실력도 좋다지만 응원은 역시 한국, K-응원이 제맛이다.

나의 일본생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일본 프로야구 관람이었는데 언니 덕분에 하나가 이루어졌다.

일본살이가 두 달도 채 안 남은 지금, 도장 깨기 하듯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해내는 재미가 있다.

다음 버킷리스트는 멀까? ㅎㅎ


덧붙여, ‘키타히로시마’시의 '히로시마'는 우리에게 원자폭탄 피폭으로 널리 알려진 히로시마에서 유래했다. 19세기 후반, 처음 이 지역에 마을을 짓고 살기 시작한 이들이 히로시마현에서 온 이주민들이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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