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떠난 유라시아 대륙 여행의 시작 -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김강현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1. 출발, 그 설렘과 두려움.
2016년 7월 23일. 드디어 집을 떠나는 날이다. 갈등과 설렘,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미친 듯 뛰다가 다시 조용해지길 반복한다. 품안에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단도 하나를 품고, 바이크에 텐트와 지도 등 짐을 하나씩 올렸다. 짐이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동여매고, 몇 번을 흔들어 점검하고는 이제 떠나야 할 집 앞 골목길을 둘러본다.
매일 봤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 익숙한 풍경 속에 있으니 이제 곧 여행을 떠난 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잠시 가만히 서서 혼란한 마음을 다잡고 잔뜩 무거워진 바이크에 올라탄다. 키를 돌리고,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잡고 악셀을 살짝 당기며 시동을 거니, 엔진소리가 마음을 두드리는 듯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한다.
그토록 꿈꾸던 순간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한 지 수개월이 지나서, 그동안 공장에서 일하며 모은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들고 내 간절하던 꿈속으로 들어갈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여행을 꿈꿨다.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켠에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떠나지 않았고, 진짜 내 모습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혼자 긴 여행을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여행을 할까’ 생각하다가 바이크로 전국일주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남이 운전하는 이동수단을 타고 여행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도착하는 도시마다 점을 찍는 1차원적인 ‘점의 여행’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 자체가 여행인 2차원의 ‘선의 여행’이 되길 바랐고, 바이크는 그런 여행을 하기에 아주 좋은 수단이었다.
그러던 중 체 게바라의 여행을 담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봤다. 의대생 체 게바라는 바이크로 남미 대륙을 여행하며,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이 세상의 모순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혁명의 길을 걷는다.
처음 볼 때는 지루하기만 했던 그 영화가 머릿속에 자꾸 맴돌았다. 같은 바이크여행을 준비하던 나는 그 영화를 몇 번이고 곱씹어 떠올렸는데, 굉장히 무모하고 위험한 도전이지만 그 만큼 진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전국일주에서 더 나아가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바이크로 하는 유라시아대륙 여행을 결심하고 나서, 몇 달간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다. 월급을 모아 원래 타던 바이크를 팔고 여행에 조금 더 알맞은 250cc 중고 바이크를 구했고, 장비들을 하나씩 마련했다.
그리고 가는 나라마다 일본대사관을 찾아가 사진을 찍으려고 소녀상을 준비했고, 배가 아닌 육로로 러시아까지 갈 날을 기원하는 마음에 바이크 한쪽에는 한반도 깃발도 걸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바이크에 올라 클러치를 살짝 놓으며 악셀을 당겨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니, 처음 운전을 배우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이 된다. 두려움과 설렘이 섞인 이상한 감정으로 나는 꿈꿔온 여행을 시작한다.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고작 몇 시간이 지나고부터 ‘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몇 개월을 길바닥에서 살아가리라 생각 하고 꾸린 짐은 바이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았고, 그 때문에 운전을 하지 않을 때마다 바이크가 자꾸 넘어져 잠시 멈춰 쉬는 것도 여의치 않다.
한 번 바이크가 넘어지면 이를 악 물고 온 힘을 다해야 다시 세울 수 있는데, 몇 번 일으켜 세우고 나서는 힘이 빠져 그마저도 무리다. 혼자서 바이크를 세우려다 머플러에 손가락이 닿아 빨간 물집이 생기기도 했다.
러시아행 배를 탈 동해항으로 겨우겨우 가고 있는데, 신호대기 중에 뒤에서 차가 부딪치기까지 한다. 액땜으로 치부하기엔 영 불안한 출발. ‘정말 괜찮을까?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한다.
비가 내리는 캄캄한 밤이 오자 두려움은 더욱 커진다. 어둠 때문인지, 낯선 길 때문인지 ‘그냥 이대로 집에 돌아갈까?’ 하는 생각마저 한다. 주유도 제 때 하지 못해, 원래 목적지인 동해항이 아닌 강릉 인근에 있는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비에 잔뜩 젖은 몸을 이끌고 추위에 떨며 도착한 찜질방에서 ‘내일 아침에 늦잠을 자서 배를 놓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다.
하지만, 여행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일어나야 했던 시간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나, 준비를 마치고 동해항으로 출발한다. 해가 비추는 낮이 되자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마음에 균열이 생기더니 그 틈으로 설렘이 들어온다. 그리고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객터미널 근처에 있는 편의점 앞 공터에서 배에 가지고 갈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편한 옷 등을 꺼내며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멀리서 나처럼 짐을 잔뜩 실은 바이크가 다가온다. 나와 같은 배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게 될 친구와의 첫 만남이다.
함께 짐을 정리하고 근처 철물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한 후 여객터미널로 들어가니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함께 출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은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바이크를 선적하고 정리해둔 짐 가방만 들고 배에 올라타는데, 지금 딛는 땅이 마지막일 것만 같아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 될 것만 같아서 배를 향하는 발걸음마다 아련한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한 걸음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음 걸음에는 사랑하는 장소나 사랑하는 것들이… 내가 나고 자라고 살아갈 땅위에 수많은 사랑하는 것들이 내 걸음을 따라 피어오르며 발목을 잡았다.
‘꼭 돌아올게, 다시 이 땅을 밟을 때 나는 지금보다 더 성장해 있을 거야, 더 커진 마음으로 꼭 다시 돌아올게’ 마음속 다짐으로 미련을 뿌리치고는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조금씩 움직이는 배 위에서, 멀어져만 가는 조국의 땅을 한참동안 눈으로 붙잡고 있었다.
자투리 여행 정보-01 : 크루즈로 떠나는 러시아 여행
일본이나 중국에 이어, 한국에서 가까운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비행기를 이용해 3시간 만에 갈 수 있지만 색다른 여행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동해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여행도 있다.
현재 동해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정기적으로 블라디보스톡에 가는 노선이 운행 중이다. 가격은 객실에 따라 다른데, 가장 저렴한 이코노미 클래스는 10만원대 후반에서부터 시작한다.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는 뱃길로 약 700km, 22시간 정도 걸린다. 비행기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다양한 선내 이벤트와 선상파티, 사우나, 펍 등을 운영하고 있기에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 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크고 작은 걱정들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을 경험 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튀어오르는 돌고래 떼를 볼 수도 있다.
김강현 기자는 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으로 자동차회사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인천대학교에 입학해 2015년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2016년 7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긴 여행을 마치고 지금은 <시사인천>기자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