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달레네첸스
오토바이 한 대로 수많은 도시와 수많은 나라를 달렸던 282일, 1만 8000km의 이야기.
잠시 한눈을 팔기에도 버거운 세상에서 살아가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삶은 딱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 힘들고, 그래서 다른 것들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숨만 쉬며 살아가는 데도 많은 돈이 들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숨 쉬는 시간 빼고 일을 해야 하는 과노동 사회에서 여행은 누군가에게 꿈이자 낙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세상에 지쳐있던 나는,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한 긴 여행을 다녀왔다. 남미 대륙을 여행했던 20세기의 체 게바라처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유라시아 대륙을 여행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말과 낙타가 뛰어다니는 초원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서, 눈이 잔뜩 쌓인 산 위에서 수도 없이 자신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고자 노력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해 몽골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거쳐 다시 중앙아시아까지, 1만 8000km의 거리를 282일 동안 바이크 한 대로 누볐던 내 무모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3. 블라디보스톡~달레네첸스크
추적추적 내리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빗속으로 달려 들어간다. 도시를 벗어나기 전에 주유소에 들렸다. 러시아의 주유소는 우리나라와 조금 다르다. 휘발유가 옥탄가에 따라 80ㆍ90ㆍ92ㆍ95ㆍ98 등, 다양한 종류로 구비돼 있고, 옥탄가가 높을수록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1리터에 900원 정도라 크게 부담되진 않는다. 산유국의 위엄일까? 저렴한 기름 값에 통장 잔고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기름을 넣는 방식도 조금 다른데, 먼저 바이크를 주유기 앞에 세워두고 주유소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산해야 한다. 몇 번 주유기의 옥탄가 몇 짜리로 몇 리터를 넣을 것인지 말하고 그 값을 지불하면, 직원이 기기에 입력해준 뒤에 주유기로 돌아와 셀프로 기름을 넣어야한다. 차도 마찬가지다.
‘이 복잡한 말을 러시아 숫자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설명하지?’라고 생각하며 손가락을 어떻게 펴야할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종이에 써서 보여주기로 했다. ‘No.1 95×10L’ 내가 내민 쪽지를 보고 점원이 웃으며 계산기를 두드려 가격을 보여준다. 아라비아 숫자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하며 계산한 후 밖으로 나와 바이크에 기름을 가득 넣었다.
시작과 동시에 끝날 뻔한 여행
도시를 벗어나면 주유소가 많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가져온 예비 기름통에도 기름을 가득 채워 넣고 출발했다. 그렇게 5분쯤 달렸을까? 뒤에 따라오던 차가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추월하겠다는 건가?’ 옆으로 살짝 비켜줬더니 창밖으로 검은 물건을 흔들며 날 보고 소리친다. 겁을 조금 먹고 ‘저게 뭐지’ 하고 자세히 봤더니, 아뿔싸 내 가방이다.
계산하느라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뒷자리에 패킹해놓은 짐 위에 올려놓고 그냥 출발한 것이다. 출발한다는 것에 신이 나있기도 했고, 짐이 워낙 많아 꼼꼼하게 점검하지 못했다. 그 가방 안에는 여권과 국제운전면허증, 바이크 증빙서류와 지갑ㆍ카드ㆍ현금 등 여행에 필수적인 모든 물건이 들어있는데 말이다.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놀랐다. 바이크를 급하게 세우고 가방을 받은 뒤 고개까지 숙여가며 “스뻐씨버, 감사합니다, 땡큐”를 연발했다. 하마터면 여행이 시작과 함께 끝날 뻔했다. 가방을 찾아준 아주머니는 웃으며 바로 출발했는데, 확인해보니 가방 안에 현금도 그대로 있다. 러시아의 치안을 걱정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짐을 점검했다. 다행히 가방 외에 잃어버린 건 없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바이크에 올랐다.
조금씩 오던 비가 멎고 구름 사이로 빛이 커튼처럼 펼쳐진 블라디보스토크의 금각교 위를 달렸다. 도로를 제외하곤 양 옆이 모두 바다다. 스로틀을 감아 속도를 높이자 시원한 바람과 바다냄새가 몸을 더 강하게 휘감는다. 매일 하던 상상이 이제 현실이 됐다는 생각에 헬멧 안에서 한껏 소리를 지르며 속도를 더 높였다.
빠른 속도로 도시를 벗어나니, 광활한 러시아의 도로가 나타났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자작나무 숲 외에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하늘이 아주 낮게 느껴졌다. 두꺼운 구름이 낀 하늘, 끝없는 초원과 간간히 만나는 자작나무 숲을 보며 계속 달렸다.
1시간 쯤 달렸을까, 배가 고파 점심을 먹기 위해 도로 옆 공터에서 잠시 멈춰 전날 미리 사뒀던 빵과 소시지를 꺼내 길바닥에 털썩 앉았다. 식탁이 아닌 길에서, 식기가 아닌 손으로 먹는 점심. 무엇을 먹어도 좋을 만큼 자유로운 기분이다.
점심을 해결하고 쉬고 있는데,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쯤 돼 보이는 아이 둘이 다가와 우리가 신기한 듯 한참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인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웃고 있다가 같이 사진을 찍고 나니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하는 손동작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가볍게 주먹을 쥐고 검지와 중지, 엄지를 비비며 한 번씩 손바닥을 위로 펴서 내게 내밀었다. 그 뜻을 이해하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에게 한마디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발했다. “미안. 형이 너희보다 더 가난해”
이동하다 중간 중간 멈춰서 휴식을 취하고 볼일을 보기도 한다. 물론 화장실은 없다. 버스정류장이나 우리나라의 ‘졸음쉼터’ 같은 넓은 갓길에는 여지없이 배설물과 휴지가 나뒹군다. ‘아, 여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몸을 가릴 것도 없는 대낮에 나도 흔적을 남겼다.
짧은 휴식이 끝나면 핸드폰에 담아온 노래를 들으며 또 다시 달렸다. 출발할 때처럼 너무 빠르게 달리지는 않기로 했다. 주변을 볼 수 있는 적당한 속도로, 잔잔한 음악과 온몸을 감싸는 바람을 맞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여행을 즐겼다.
오후가 되자, 중년의 형님 둘은 근처 마을에서 숙소를 잡겠다고 멈췄다. 며칠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지만 정이 들어 헤어짐이 아쉽기만 했다. 암묵적으로 상대방의 여행을 서로 존중하기로 했기에, 인사를 나누고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뒤 두 명을 남겨두고 출발했다.
길은 미리 다운받아놓은 GPS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인했다. 내비게이션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의 방향과 큰길 정도는 나오는 데다, 큰 길을 따라 서쪽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여행이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GPS를 너무 믿지 말자
그러나 잠시 후 문제가 발생했다. GPS에 나온 길을 따라 달리고 있는데 어느 순간 도로가 끝났다. 언젠가는 오프로드를 달릴 거라 예상했지만, 너무 빠르다. 아침까지 계속된 비로 진흙투성이가 된 땅에는 중간 중간 물웅덩이까지 생겨있다. 잠시 멈춰 이어폰을 빼고 느린 속도로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내가 맨 앞에서 길을 열면 나머지 사람들이 내 바퀴자국을 따라 오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데, 일행 가운데 물웅덩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노인(70대)이 넘어졌다. 깜짝 놀라 바이크를 세우고 달려가 노인의 바이크를 일으켜 세우고는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기에 다시 출발했지만, 얼마 못가 노인은 넘어지길 반복했다.
바이크 운전 실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노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바이크여서 중심을 잡지 못했다. 독일제 고(高)배기량 투어링 바이크였는데, 바이크 무게만 해도 상당한 데다 침낭에 이불까지 살뜰하게 챙긴 짐들도 너무 많았다. 내 바이크와 짐 무게가 200Kg이 넘는데, 내 것보다 훨씬 더 무거운 바이크를 운전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노인을 주시하며 이동하다가 넘어지면 달려가 돕고 다시 출발하길 반복했다.
모기와 파리 등, 온갖 벌레들이 날아들어 공격하기도 했다. 몸은 이미 진흙과 땀에 범벅이 됐고, 부츠 안으로는 진흙탕물이 스며들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지도를 보고 근처 도시인 달레네첸스크까지 가는 다른 길을 찾았다.
지도에 표시된 길이 있는 것을 보고 고생하며 들어온 길을 다시 돌아나가기로 했다. 들어올 때처럼 천천히 돌아 나오니 벌써 캄캄한 밤이다. 주변에 아무런 불빛도 없는 도로는 너무나 어두웠다. 바이크의 라이트로는 고작 몇 미터 정도밖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계속 긴장하며 천천히 달리다 저 멀리 불빛이 보일 정도까지 왔다. 대략 30분이면 마을 중심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문을 닫은 주유소 가로등 아래에서 잠시 멈춰 쉬기로 했다. 그런데 멈춰보니 일행 중 한 명이 사라졌다. 진흙길을 벗어날 때까지는 같이 있었는데, 어두워서 뒤를 신경 쓰지 않고 달린 결과였다.
깜짝 놀란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금방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한참을 가서야 진흙길 근처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진흙길을 빠져나와 맨 뒤에서 달리다가 차가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에 갓길에 넘어진 것이다. 다행히 다친 데가 없고 바이크도 멀쩡했지만, 놀랐고 너무 어두워 반대 방향으로 달리다가 다시 돌아와 우리를 만난 것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글이 안되면 그림으로
놀란 마음을 충분히 진정하기 위해 휴식을 취한 후 천천히 달려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여관(Гостиница[가스찌니짜])을 찾기로 했다. 마을을 조금 돌아다니니 불이 켜진 간판이 보여 바로 들어갔다. 숙소에 들어선 시각은 10시가 가까웠다. 방을 잡는 것도 힘들었는데 일행 중 누구도 러시아어를 못하고, 가스찌니짜 직원 중 누구도 영어나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나는 양손을 포개 귀 옆에 붙이고 자는 시늉을 하고 손가락 다섯 개를 펴서 ‘다섯 명이 자려한다’를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낮에 만난 아이들이 보여줬던 손동작으로 가격을 물었다. 직원은 내 설명을 이해한 듯 뭐라 안내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국 종이와 펜을 빌려 그림으로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일행이 다 들어갈 수 있는 큰 방을 잡았고, 가격을 깎는 것도 성공했다.
작은 침대가 세 개, 소파가 두 개 있는 큰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돌아가며 샤워하고 나니 배가 고팠다. 생각해보니 점심으로 길가에서 먹은 식빵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노인은 피곤했는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어서 그냥 두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 같은 층에 있는 주방으로 갔다. 챙겨온 먹거리는 노인에게 받은 즉석밥과 블라디보스토크 마트에서 산 사각형 컵라면, 그리고 점심에 먹고 남은 소시지다.
즉석밥 포장을 벗겨 물과 함께 냄비에 넣은 다음 끓이다가 컵라면을 잘게 부숴 냄비에 같이 넣었다. 소시지는 손으로 뚝뚝 잘라 넣고 라면스프를 넣으니 죽이 탄생했다. 강원도 산골에 살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남은 음식을 가마솥에 끓여 빨간색 바가지로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담아주던 강아지 밥이랑 겉모습이 비슷했다.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배가 너무 고파 후후 불어 크게 한 입 먹었다. 배가 고파서인지, 힘들어서인지 맛은 아주 훌륭했다. 감탄하며 바닥까지 싹싹 긁어 비웠다.
저녁을 먹고 나니 온몸이 늘어진다. 소파에 누워 잠들기 전 ‘와, 진짜 힘들다. 오늘이 며칠 째지?’ 하고 생각하다가 출발한 첫 날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앞으로 남은 여행에 대한 걱정과 힘든 길을 무사히 지나왔다는 성취감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자투리 여행정보 - 03 : 여행에 '가장' 필요한 러시아어
언어를 알지 못해도 여행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진심으로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언어는 여행의 질을 높여줄 만큼 굉장히 중요하기도 하다. 러시아를 여행하며 가장 많이 썼던 단어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인사말> 안녕하세요-Здравствуйте[즈드랏스부이쪠], 감사합니다-Спасибо[스뻐씨버], 수고하세요(안녕히 계세요)-До свидания[다스비다니야]
숫자> 1-один[아진], 2-два[드바], 3-три[뜨리], 4-четыре[치띄레], 5-пять[뺘찌], 6-
шесть[쉐쓰찌], 7-семь[쏌], 8-восемь[보씸], 9-девять[제뱌찌], 10-десять[제샤찌]
기타> 예-Да[다], 아니오-Нет[녯], 얼마예요?-Сколько стоит?[스꼴리꼬 스또잇], 한국인(고려인) - коре́йский[까레이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