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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의 딸 Sep 24. 2019

16. 늙어도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

잘 모를 땐,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게 된다

운전하다 만난 람보르기니 관련 차량의 재치있는 문구.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다. 그러나 그걸로 람보르기니를 살 순 있다. 둘다 거의 비슷한 거라 보면 된다"

할머니들의 '뒷담화'


    자주 가는 빵집에서 커피를 사려고 줄을 서고 있을 때였다. 앞에는 백인 할머니(또는 이들의 노화가 빠르므로 할머니보다는 중년여성일 수도 있다) 세 명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어떤 누군가를 흉내내길래,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들어보니 뒷담화였다. (*나도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은 선명하게 들렸다)


    한 할머니가 "아니~ 내가 영어를 잘 하고, 못하고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많은 걸 기대하는 게 아니라 가끔 그 사람은 반응이 당황스럽다니까?" 하고 말했다. "내가 실컷 ‘이런 저런데를 갔는데 다음에 우리가 또 행사를 하니까 같이 하자’고 권유했는데 가만히 침묵하더니 'See you later(나중에 만나자)'하면서 가버리더라고. 하하하하하하하. 너무 엉뚱한 반응 아니야? (나머지 할머니 웃음)"

    분명 영어권에서 산 사람이 아닌 '외국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알아듣지 못한 말에 적절한 반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흉내내는 것이리라.  단지 성격에 대해 욕하고 싶었다면, 굳이 앞에 단서로 "내가 대단한 영어를 듣고자 하는게 아니라"라는 언어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지 모르는 그 '누군가'가 꼭 내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상대방이 길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경우가 있다. 여러 번 질문하거나 무리하게 대화에 끼기 보다는 '미소'로 끝을 내고 싶은지도 모른다. 성격이 재밌거나 아는 것이 많아도 '영어'라는 한계 앞에 서면, 자신의 성격과 지적능력조차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미스 USA의 라이브방송 '뒷담화'


    영어권 사람들 중 (일부의) 이런 편견은 2018년 12월 열린 세계미인대회에서도 볼 수 있었다. 사라 로즈 섬머스 미스 미국 대표가 대회행사의 일부로 진행된 '라이브' 인터넷 방송에서 미스 캄보디아와 미스 베트남의 영어소통능력 부족을 비꼬면서 시작됐다. 옆에서는 미스 호주가 맞장구쳤다.  


2018년 12월 세계미인대회에서 미스USA대표(가운데) 사라 로즈 섬머스 양이 캄보디아 대표의 영어실력을 비꼬면서 비난을 받았다. 사진출처 데일리메일

    다음은 당시의 기사 일부 내용이다. "미스 베트남은 귀엽긴 하지만, 마치 영어를 많이 아는 것처럼 행동하지. 그러나 질문을 해보면,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만 있어." "미스 캄보디아는 영어를 전혀 못해"

Ms Summers had said contestant H'Hen Nie, Miss Vietnam, is "so cute and she pretends to know so much English and then you ask her a question after having a whole conversation with her and she (nods and smiles)."

She added: "Miss Cambodia is here and doesn't speak any English, and not a single other person speaks her language.


    네티즌들이 라이브 방송 밑에 댓글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는) 현재의 미국의 독선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정말 미국 대표 맞구만" "나는 외국인 학생들의 논문을 교정해줬던 사람인데, 당신들은 타국의 인재들이 얼마나 노력하며 논문을 쓰는지 반도 못 따라갈 것" 등 비판적인 내용이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세상을 경험해보지 않은 영어권 사람들 중에는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을 마치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고 우습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개인의 실력과 나라의 경쟁력은 별개다. 그저 어느 날 눈떠보니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잘 하게 된 것이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가 세계 1위 강대국이었으면, 미스 USA는 성조를 따라하지 못하는 자신의 입과 혀 때문에 울면서 밤에 단어를 외웠을지도 모른다.


내 실력을 평가절하 당하지는 말자


    10년 전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원에 진학했던 지인은 이렇게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우리 분야 사람들이 보면 너무너무 구린 실험방법에 영 아닌 아이템인데, 단지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프레즌테이션만 그럴듯하게 해. 그리고 연구비를 다 따가지. 좋은 내용이 있어도 영어가 안 되면, 표현이 안 되고. 그러면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해. 짜증난다."    


East Vancouver의 맛 좋은 '래핑 빈' 커피집. 매일 아침, 주인이 새롭게 간판문구를 쓰는데 영어공부하기 딱 좋다. "(당신의) 태도가 역경과 모험의 차이를 만든다."

  

    영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 영어 때문에 비영어권 사람들이 살기란 녹록지 않다.  일단 입을 열고 무엇인가 표현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학창시절보다 영어단어를 외우거나, 언어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더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도 공부에 대한 끈을 놓지 말자. 하루에 한 두 개씩이라도 뉴스를 보건, 드라마를 보건, 캡션이 달린 영화를 보건. 조금씩이라도 늘려보자.


    이 나이에 어디 좋은데 취업하려고, 영어점수 잘 받으려고, 꼭 그런 목적이 아니어도 좋다. 맛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주문하기 위해서, 표를 바가지 가격으로 잘못 사지 않기 위해서, 또 무엇인가 하나라도 세상의 것을 배우기 위해. 영어, 아직 손을 놓을 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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