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포토에세이 #2] 항구도시, 키수무(Kisumu)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엔진 같다면, 서부의 항구 도시 키수무(Kisumu)는 잔잔한 호수처럼 여유가 넘치는 곳입니다. 2003년 겨울, 아프리카 탐사단과 함께 도착한 이곳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담수호인 '빅토리아 호수'를 품고 있었습니다.
호수라고는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덕분에 마치 바다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이 풍요로운 물길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케냐의 주요 민족인 루오(Luo)족입니다. 공동체 정신이 강하고 음악과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들답게, 도시 곳곳에는 활기찬 에너지가 흐릅니다.
항구 도시답게 시장에는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물고기들이 가득합니다. 거대한 나일퍼치부터 현지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틸라피아, 그리고 '다가(Dagaa)'라고 불리는 민물 멸치까지. 키수무의 식탁은 언제나 호수가 주는 선물로 풍성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재미있는 간판들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그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Furaha Hotel'이라는 소박한 건물이었죠. '푸라하(Furaha)'는 스와힐리어로 '기쁨' 또는 '행복'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름은 번듯한 호텔인데, 아무리 봐도 하룻밤 묵어갈 객실은커녕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아주 작은 구멍가게 같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언어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케냐의 시골이나 일상적인 거리에서 마주치는 'Hotel'은 우리가 생각하는 숙박시설이 아니라, 음식을 파는 '식당'을 의미합니다. 영국 식민 지배 시기, 'Hotel'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통용되었습니다. 그 관습이 굳어져 지금까지도 케냐 사람들에게 호텔은 곧 정겨운 식당을 뜻하는 말이 되었죠.
최근에는 큰 도시를 중심으로 '레스토랑(Restaurant)'이라는 세련된 표기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골목 어귀에는 투박한 글씨로 'Hotel'이라 적힌 식당들이 정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비록 화려한 로비나 푹신한 침대는 없지만, 이곳은 배고픈 이들에게 따뜻한 틸라피아 요리와 차파티 한 장을 내어주는 진정한 의미의 '기쁨의 장소'입니다. 이름이 호텔이면 어떻고 식당이면 어떨까요. 갓 구워낸 음식의 온기만으로도 이곳은 여행자에게 그 어떤 5성급 호텔보다 달콤한 휴식을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