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원 준비로 바쁜 아침, 아이가 외쳤다
"어두운 색 옷은 싫어! 핑크색 옷 입을래!"
등원 준비로 바쁜 아침, 아이가 외쳤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나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딸 키우는 집이 피해가지 못한다는, 그 핑크병이 당도한 것인가. 4돌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늦은 편이긴 하다.
그동안 아이는 '새 옷은 싫다', '입은 옷은 벗기 싫고, 벗은 옷은 입기 싫다'는 두가지 원칙만을 고수했을 뿐, 옷에 대한 취향이나 선호를 표현한 적이 없다. 나는 옷 때문에 아이의 움직임이 방해받는 것이 싫었기에, 어벙벙한 핏의 상하의를 주로 입혔다. 그 옷들은 대부분 갈색, 회색, 베이지색이었다. 핑크는... 촌스러웠다. 인디 핑크도 아니고, 버건디도 아니고, 전형적인 핑크라면 더욱. 핑크에 캐릭터 그림과 레이스라면 더더욱. 그건 너무하잖아!
그러나 아이는 핑크색 시크릿쥬쥬 맨투맨에 핑크색 튜튜 스커트, 핑크색 레깅스를 차려입은 친구 딸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결연히 외쳤다.
"검은 색, 회색, 갈색 옷은 입지 않겠어!"
그 뿐이 아니었다. '치마 입으니까 공주 같아', '공주를 구하러 가자', 아이 입에서 '공주'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자르자는 나의 권유는 '머리가 길어야 이뻐' 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공주는 치마만 입는 거 아닌데? <종이 봉지 공주> 책 봐봐. 종이 봉지 입고 왕자를 구출하러 가잖아', '머리가 너무 길면 머리 빗을 때 아플 수도 있어'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핑크를 경계했던 것은 핑크가 촌스럽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핑크, 레이스, 공주옷으로 대표되는 어떤 세계가 아이를 덮쳐올 것이 반갑지 않았다.
그 세계란 외모를 여성스럽게 치장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이 공주라고 믿거나 공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엄마 아빠가 왕비/왕이 아닌데?), 왕자와의 결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세계. 전세계의 수많은 여자아이들이 부모의 절대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또래집단에 진입하는 방식이자, 자신이 여성임을 최초로 자각하는 방식. 핑크에서 너무 멀리 나간 것 아니냐고?
<신데렐라가 내 딸을 잡아먹었다>의 저자 페기 오렌스타인은 말한다. 공주란 결국 하나의 단계일 뿐이고, 여자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도 여전히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드레스를 입고서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그러나 아이가 여자아이가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문화를 통해 배운 것은 '자신이 능력 있고 강인하며 창조적이라는 혹은 똑똑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모든 소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되길 원한다(혹은 원해야만 한다)는 사실'(17쪽)이라고.
얼마전 아이보다 한 살 많은 딸을 키우는 친구 집에 갔다. 친구 집에는 시크릿쥬쥬 아이템이 가득했다. 시크릿쥬쥬에 빠진 친구의 딸은 아이에게 '시크릿~~ 마법!!!'이라는 마법 주문과 다양한 공주 아이템의 사용법을 전수해주었다. 친구의 딸과 나의 딸은 시크릿쥬쥬 왕관을 쓰고, 마법봉과 양산을 들고, '시크릿~~ 마법!!!'을 외치며 집안을 돌아다녔다. 친구는 말했다.
"어차피 초등학교만 가도 촌스럽다고 생각한다니까, 그 전까지 즐겨라 그런거지 뭐. 근데 유치원 가면 우리 애는 양반이다?"
친구 딸의 유치원 반 여자아이 15명 중 공주 문화에 (친구 말에 따르면) '홀딱 빠진' 아이는 10명. 친구가 보여준 사진들 속에서 10명의 '공주님'들은 모두 분홍색이나 보라색 공주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리본 머리띠나 왕관을 썼다. 이들 중에도 문화를 선도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유행하는 공주 아이템은 물론, 마트에서 산 엘사 드레스가 아닌 고급 새틴 드레스, 조악한 왕관이 아닌 어른 눈에도 세련된 액세사리를 가지고 있는. 똑부러진 친구 딸조차도 '00는 역시 대단해' 라며 그 취향을 인정한다는, '인플루언서' 같은 존재랄까. 2명의 '인플루언서'와 8명의 '공주님'들은 그렇게 핑크와 레이스, 공주 드레스와 시크릿쥬쥬 장난감 속에서 유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며칠 후 다른 친구 집에 갔다. 그집에도 시크릿쥬쥬 아이템이 가득했고, 5살인 친구의 딸은... 시크릿쥬쥬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친구는 말했다.
"시크릿쥬쥬 회사에서 동영상을 왜 유튜브에 공짜로 푸는지 알아? 어휴. 그거 30분짜리 광고야! 시크릿쥬쥬 아이템 팔려는 광고."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 틈바구니로 시크릿쥬쥬를 검색해보았다. 시놉시스는 이랬다.
'공주가 되고 싶은 소녀들의 꿈을 도와주던 동화나라의 요정 쥬쥬, 어느날 왕자님에게 마음을 빼앗겨 공주가 되려 하지만 그 틈에 동화나라가 봉인되면서 어쩌구 저쩌구.... 쥬쥬는 인간 세상에서 동화나라와 왕자님을 되찾기 위한 미션을 시작하는데... 시크릿 플라워를 다 모아야 봉인이 풀리고 왕자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데. 과연 쥬쥬는 마녀의 방해를 이겨내고 미션을 완수할 수 있을까?'
공주... 왕자님을 만나기 위한 미션... 마녀의 방해... 줄거리만으로도 어지러웠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쇼핑란에 시크릿쥬쥬 아이템이 수십만건 쏟아져나왔다. 요술봉 양산 세트, 시크릿 셀카폰, 드레스, 시크릿 화장가방, 헤어디자이너 미용가방, 네일아트, 보석함, 핸드백 세트... 시크릿쥬쥬 장난감은 대부분 꾸밈 노동에 관한 것들이었고, 여자 아이들에게 '너도 쥬쥬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어' 약속하는 듯 보였다.
부모에게 공주는 '어차피 조금만 크면 촌스럽다고 할 존재'만은 아니다. 공주란 아이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지를 말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공주란 우리가 아이들을 고통에서 보호할 수 있다는 소망, 아이들이 슬픔을 몰랐으면 하는 소망, 레이스와 순수함 속에서 아이들이 평생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소망'(위의 책, 129쪽)인 것이다. 디즈니사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엄마들은 공주의 특성을 '판타지, 영감, 동정심, 안전'이라고 생각한다. 오렌스타인은 특히 '안전'에 주목해, 부모들이 공주 놀이가 딸의 성적 대상화를 막아주면서 순수함을 지켜준다고 느낀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이 공주들은 왜 모두 예쁘고 날씬하고 글래머일까. 왜 눈은 얼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허리는 한 줌이 안되며 가슴은 수박만 할까. 스스로 사랑을 찾아나서거나 세상을 지키는 주체적인 공주일지라도, 왜 외형은 그대로일까. 게다가 유아 관련 회사들은 엄청난 속도로 공주 관련 아이템을 쏟아낸다. <겨울왕국>의 주체적인 공주 엘사에게 열광하지만, 남는 것은 반짝반짝한 엘사 드레스. 사고뭉치면서 욕심쟁이인 복합적인 캐릭터 쥬쥬를 시청한 후, 쌓이는 것은 쥬쥬 화장품 세트.
아름다움과 섹시해보이는 것이 핵심인 여자 아이들의 문화가 우울증, 섭식장애, 왜곡된 신체 이미지, 무모한 성적 행동을 이끈다는 연구, 전형적이고 이상화된 여성의 신체에 노출될수록 여자아이들이 육체적으로나 학업면에서 스스로를 낮게 평가한다는 연구 결과들을 인용하지 않아도, 전형적인 공주 이미지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결과가 어떨지는 예측 가능하다. '성공한 여자의 이미지는 사방에 널려 있었지만 동시에 외모가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압박은 더 강도가 심해졌고, 더 어린 아이들에게 확대되었다'는 오렌스타인의 분석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공주에 더이상 반응하지 않는 여자 아이들을 대상으로는, 섹시함으로 여성성과 '진정한 나 자신'을 표현하라는 마케팅이 기다리고 있다. 순수하고 무해한 공주와 섹시하게 골반을 흔드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모두 사회가 여자 아이들을 대상화하는 방식일 뿐이고, 이는 무 자르듯 나눠지지 않는다. 또한 십대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인터넷 세상은 외모지상주의를 더욱 강화한다. SNS로 대표되는 가상 세계에서는 타인의 시선과 반응이 더욱 중요해지고, 특히 여자 아이들은 예쁘거나 섹시한 사진을 올릴 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성적 대상화와 외모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
아이를 보며 가끔 생각한다. '아빠의 쌍커풀을 닮았다면 좋았을텐데.'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남편의 크고 동그란 눈을 빼닮은 아이를 상상했다. 아이는 남편의 외모를 고스란히 닮았지만, 눈만은 아니었다. 아이는 나의 작고 째진 눈, 남편의 큰 얼굴와 짧은 다리, 부부에게 없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다. 나를 똑 닮은 눈을 바라보다, 아이가 외모를 자원 삼아 인생의 여러 단계를 수월하게 통과하길 바랐던 내밀한 마음을 마주한다. 예쁜 외모가 여성에게 얼마나 큰 자원인지 나 역시 밤새워 증언할 수 있으니까.
아이를 보며 자주 감탄한다. 솜털 가득한 볼, 톡 튀어나온 이마, 웃을 때 눈 밑에 지는 보조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얼굴에 뚝뚝 떨어지는 장난기... 세상에, 이렇게 예쁠 수가 있다니. 아이가 제멋대로 노래를 지어 부르며 동네를 활보할 때, 친구들과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며 까르르 넘어갈 때, 부엌 살림살이들을 꺼내 온 정신을 집중해 진열하고 있을 때, 아이가 온몸으로 자신의 생명력을 내뿜고 있음을 느낀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로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쌍커풀 없는 아이의 눈을 아쉬워하면서도, 아이의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아이가 슬픔을 모르는 공주로 자라 좋은 남자와 평탄하게 사는 꿈을 꾸며, 그 꿈이 불가능한 것임을 절감한다. 여자 아이가 아름답고 똑똑하면서도 상냥하기를 바라는 세상의 잣대에 갈팡질팡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소외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모순된 (그리고 다소 앞서나가는) 마음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오늘도 아이는 제멋대로 지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람쥐처럼 놀이터를 종횡무진한다. 좋아하는 핑크색 옷을 입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