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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Jun 29. 2024

기존에 썼던 글을 해체해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 출판 뒷얘기2


*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 출판 뒷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기존에 썼던 글을 해체하기


엄마가 된 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뭔가 정리되지 않은, 부글부글대는 것들을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써온 글이 꽤 쌓였다. 그래서 처음 출판을 계획할 때는 막연히 생각했다. '그동안 썼던 글들을 잘 모으면 되지!' 다른 이들의 에세이 역시 특별한 구성이 있다기보다는 일단 쓰고, 그걸 묶은 것 같았다. 목적 없이 글을 썼지만 쓴 글을 모으고보니 내가 가진 문제의식과 관심사가 흐릿하게나마 보이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는 조산으로 인한 상처의 이야기였고, 그러면서도 조산에 한정되지 않은 엄마됨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썼지만 두루뭉술하다. ㅋㅋㅋㅋ) 그렇게 첫 원고는 엄마가 된 후의 시간 순서대로, 조산으로 인한 고통, 죄책감, 죄책감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거쳐 성별 분업, 나의 자아실현에 대한 고민까지 전방위적으로 훑어내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른) 형식의 기혼 유자녀 에세이가 한동안 너무 많이 나오지 않았나. 가장 큰 한계는 이러한 형식으로는 밀도 높은 구성이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 저자의 문제의식이 흩뿌려져 있고 독자는 이 흩어져있는 문제의식을 스스로 하나씩 발견해가야 한다. 물론 독자가 이걸 발견해가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독자가 그런 재미와 수고를 감당하는 경우는, 대체로 저자의 캐릭터성이 어느 정도 담보된 경우다. (내 생각엔 그렇다.) 직업이나 삶의 이력이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만큼 독특하거나, 이미 자신을 브랜딩해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거나,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기존 독자층을 확보했거나... 그렇게 고유한 캐릭터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경우, 독자들은 저자의 캐릭터에 대한 매혹으로 책을 펼쳐 들고 저자의 캐릭터가 반영되었거나 혹은 그와 모순되는 어떤 문장이라도 찾아나선다. 하지만 나는 그런 캐릭터가 없는 평범한 시민1. 기존의 썼던 글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기존에 썼던 글을 해체하고, 그것들을 재료로 삼아 새롭게 쌓아보기로 했다.  



엄마를 향한 명령으로 책을 재조직하기


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하려면 어떤 구성이 필요할까? 내가 겪은 산후우울증이라는 컨셉을 밀어붙여 볼까? 신생아중환자실, 재활병원, 상담센터 등의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은 어떨까? 오은영 박사를 전면에 내세우면? 아니, 그전에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도대체 뭔데? 고민을 거듭하다 내가 그동안 써온 글들이 엄마를 향한 사회적 명령에 대한 것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육아 초기, 발달 문항지의 내용을 하나라도 연습해보려고 하고 아이를 재운 밤이면 인터넷에서 발달 정보를 찾았던 일들은 ‘발달을 자극하라’는 명령의 일환이었다. 교육노동에 매진하면서도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은 ‘공감하는 엄마가 되라’는 명령에서 빚어진 혼란이었고. 나의 죄책감이 나의 어린 시절의 상처에 기인한다는 상담사의 말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라’는 명령 속에 있었지만, 정작 나는 사회가 아이의 장애나 질병 등에 대해 ‘엄마 탓이다’ 말한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나의 이야기는 엄마가 된 후에 쏟아진 사회적 명령들 속에서, 그것의 정체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될 것이었다. 안개가 걷히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좀더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오은영과 포스트오은영


1-4부까지는 완성했지만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의 인터뷰를 몰아넣는 것으로 스리슬쩍 마무리하려 했던 것이 편집자님께 딱 들켰다. 편집자님은 인터뷰를 각 부 뒷부분에 하나씩 넣고, 마지막 부를 새로 쓰자고 제안해주셨다. 


당시는 오은영 박사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던 시기였다. 사실 1-4부까지의 이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오은영 박사였는데, 발달을 자극하라는 명령(1부)도, 공감 육아법(2부)도, 내면 아이를 돌아보라는 명령(3부)도 모두 오은영 박사의 발언을 제시하고 비판하는 방식으로 꿰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은영이냐 하정훈/조선미냐’, ‘공감육아냐 훈육이냐’, ‘민주적인 부모냐 진상 부모냐’로 갈등하는 요즘을 담아내내야겠다는 생각에, 5부에 관련 논의를 담고 ‘그러다 몬스터가 될 것이다’라고 제목을 붙였다. 작년 여름부터 2주에 한번 글 쓰고 피드백을 나누는 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 모임에서 관련 글을 썼고, 이 글을 보완해서 교육 잡지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을 토대로 교육 잡지에 쓴 원고를 토대로 단행본의 원고를 완성... 했다는 일종의 선순환 혹은 돌려막기? 


어쨌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과 같은 구성이 되었고, <엄마라는 이상한 세계>의 출판사 소개글처럼 "저자 이설기가 엄마를 향한 명령들에 지독히 얽혀든 이야기"이자, "이상한 세계의 한복판에서 속절없이 흔들리면서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밀쳐내고 협상해온" 이야기로 완성될 수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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