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사방이 환하지만 다시 눈을 감는다. 12시. 배가 고파서 일어난다. 서두를 필요 없다. 오늘은 심심하다고 배고프다고 깨우는 아이들도 남편도 없다. 냉동실에서 아껴두었던 매운맛 3단계 떡볶이 밀키트 꺼낸다. 물을 붓고 재료를 넣는다. 부엌에 퍼지는 매콤한 향에 침이 고인다. 65인치 텔레비전이 오늘은 내 거다. 넷플릭스를 켰다. 벼르고 벼르던 드라마를 정주행 할 예정이다. 배속은 필요 없다. 대사 하나하나 곱씹으며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갈 거니까. 달걀 하나를 삶아 떡볶이 양념에 비볐다. 쓰읍맵다.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시원한 게 당긴다. 김치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맥주를 꺼내와 원샷한다.
화면에 꽉 찬 남주 얼굴을 보니 절로 힐링이 된다. 매끈한 도자기 피부에 솜털까지 보이는 듯하다. 저 배우 이름이 뭐야? 인터넷에 검색해 본다. 98년생? 그럼 나랑 몇 살 차이인 거야? SNS를 눌러본다. 팬 계정인지 본인 계정인지 확인한다. 블루배지가 있는 걸 보니 본인 계정이 확실해 보인다. 셀카 많이 찍는 남자는 별로인데 셀카도 많지 않고 매일 업데이트하는 것 같지도 않다. 주절주절 너무 긴 글도 올리지 않고 꽤 마음에 든다. 팔로우했다. 이제 종종 피드에서 보일 테지. 잠가놓았던 덕질 DNA가 꿈틀거린다.활력이 충전되는 기분이다.
오후 5시. 내리 드라마 여덟 편을 봤는데도 피곤하지가 않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별이를 데리고 산책에 나선다. 오늘은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갈 예정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연결하고 얼마 전 유튜브를 시작한 최애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봤던 영상이지만 귀로만 듣는 재미가 있다. 웃음포인트에서 충실하게 피식거리며 편의점에 들른다. 다시 집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무거운 쇼핑은 안된다. 매콤 짭짤해 보이는 신상 과자 하나를 골라 집으로 향한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샤워를 하고 나온다. 아이스커피가 당긴다. 오늘 같은 날은 저녁이어도 상관없다. 얼음을 가득 채운 큼지막한 보냉컵에 커피를 내린다. 편안한 음악으로 바꾸고 읽다만 책을 꺼냈다. 좋아하는 작가가 10년 만에 낸 작품이다. 오랜만에 완독이다. 독서기록 어플에 책을 쌓아본다.
아까 사 온 짭짤한 과자를 먹으며 쏠메에게 전화를 건다. 쏠메는 언제 전화해도 늘 내 연락을 기다렸던 것처럼 반갑게 받는다. 나는 오늘 팔로우한 남배우 이야기와 방금 읽은 책을 쏠메는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서로 전화로 일기를 쓰는 동안 사 온 과자를 다 먹는다. 약간 모자란 것 같아 생라면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린다. 스프는 살짝만 뿌리고 안주삼아 맥주 한 캔을 비운다.
소파에 누워 아껴두었던 웹툰의 첫 화를 눌렀다. 취향이 비슷한 친구에게 전부터 추천받았던 작품이다. 이 날을 위해 아껴두었다. 다 보려면 날을 새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번에는 재밌어서 아껴둔다. 역시 드라마도 웹툰도 정주행이 제맛이다. 가상 캐스팅을 해본다. 쓸데없지만 행복하다. 친구에게 캐스팅한 배우를 톡으로 보낸다.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거실을 치운다. 11시가 훌쩍 넘었다. 소파에 다시 눕는다. 며칠 전 장바구니에 담아 둔 옷이랑 신발을살펴본다. 아무래도 결제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문득 날짜를 확인한다. 아직 토요일이라니. 토요일인 것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으로 또 한 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