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에 거리두기

INFJ의 해방일지 (1)

by 재희

“과도한 책임감이 자신을 힘들게 할 수 있어요”


다면적 인성검사였던가. 상담사는 결과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대부분 척도가 정상범위 안에 있기는 하지만 ‘강박’에 대한 수치가 높은 편이라고도 했다.


‘책임감이 있다’는 것은 좋은 뜻이다. 하지만 책임감은 나를 어딘가에 묶어두며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적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삶을 옥죄는 굴레가 된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에게 나의 책임감은 좋은 의미일지 모르나 나에겐 괴로움일 수 있다.


“부모님이 엄격하신 분들이었나요?”


질문하는 상담사는 내 눈빛을 살핀다. 강박의 원인을 어린 시절로부터 찾으려는 것 같았다. 놀기 전에 꼭 숙제를 해야하고, 약속시간보다 꼭 먼저 나가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늘 모범적이고 바람직하길 바라신 것은 맞다. 당시의 여느 부모님들처럼 나의 욕구보다는 사회적 기준, 타인의 시선을 중요시 여겼으리라.


타고난 성향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성향 검사에서 위험회피도가 유난히 높게 나타난다. 관계 안에서도 위험을 피하고 싶은 욕구가 과도한 책임감으로 표현될 지 모른다.


어쨌든 ‘나’보다 ‘타인’을 삶의 기준으로 삼다 보면 책임감은 도를 넘기 쉽다. 하지만 적정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과도한 책임감이 있었기에 지금 내 삶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내 삶의 열매에 기여했던 친구가 이제 나를 힘들게 한다고 해서 바로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무 익숙한 사이여서 없는 게 허전할 때도 있다.


그럼 어떡할까. 이 ‘과도한’ 책임감을. 일단은 살짝 거리를 두는 정도가 좋은 것 같다. 거리두기를 연습하면서 나의 상태를 살피는 것. 나를 해치지 않는 책임감의 적정선을 조율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일 해도 될 일을 오늘 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