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와 나르시시스트> 김태형
‘어쩜 저렇게 나쁜 사람이 있지?’ 싶은 순간이 있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사람. 특히 직장에서 상사 또는 동료로 이런 ‘빌런’을 만난다면 인생은 심각하게 고통스러워진다. 나는 궁금했다. 저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저들의 악한 행동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관련 내용을 찾던 중에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사이코패스와 나르시시스트>.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언론에도 많이 등장하고 영화 소재로도 쓰여서 익숙했지만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는 낯설었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야말로 우리 주위에서 자주 등장하는 빌런들이다. 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이렇다.
나르시시스트와 사이코패스는 언뜻 보아서는 거의 똑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비슷한데, 그것은 그들이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공유하고 있어서이다.
자기자랑과 과시가 심하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반면 세상은 과소평가하면서 오만무례하게 군다.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 그들을 지배하고 착취한다.
처음에는 아주 친절하게 굴지만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가차 없이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며 남들을 학대하고 괴롭힌다.
그 차이를 단순하게 대비해 보면 나르시시스트는 사랑을 지나치게 갈망해서 문제이고, 사이코패스는 사랑을 조금도 필요로 하지 않아서 문제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나르시시스트가 남들한테 사랑과 인정을 받는 데 목을 매기 때문에 장애자가 되었다면, 사이코패스는 감정능력이 턱없이 부족해 사랑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어서 장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감정과 공감능력, 양심이 결여된 존재로서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욕구, 생물학적인 욕구를 추구하는 동물적 존재다.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수도 없다. 그러니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살인행위를 남의 일처럼 태연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이들을 ‘고도의 지능을 가진 포식동물’이라고 정의한다. (주변에 사이코패스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즉시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반면,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적 인격장애’로 분류되며 사랑과 인정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문제가 된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우월감을 드러내며, 사랑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격렬하게 화를 낸다.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왕비’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사이코패스와 나르시시스트는 전체 인구의 1%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들도 직장을 다니며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기에 우리도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특기인 ‘착취적-가학적 대인관계’가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아래에 묘사하는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에서 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대인관계에서 나르시시스트가 바라는 바는 오직 자기의 이익과 뜻을 관철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들을 이용하고 조종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에만 몰두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사사건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드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강압적인 태도로 윽박지르기, 고집스럽게 따지고 들어 지치게 하기, 거짓말과 사탕발림으로 동의 구하기, 남을 비방 중상하기, 협조를 거부하기와 같은 수법들을 총동원한다. 이 중에서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일관성 있게 그리고 주요하게 사용하는 수법은 끊임없는 ‘비난’과 ‘신경질’이다.
나르시시스트와 생활을 함께하는 이들은 언제 또 비난을 들을지, 그들이 언제 또 신경질을 낼지 몰라 항상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긴장상태에서 살아간다. 나아가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상대방이 이해할 만한 타당한 근거도 없이 신경질을 부리고 비난을 퍼붓는 나르시시스트한테 계속 당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갖게 되어 점점 무력감에 빠져들고 결단력을 잃게 된다
나르시시스트는 대인관계에서 전혀 진실하지 않아 매우 이중적이고 위선적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친절하게 굴지만 집에 들어오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웃는다. 또한 그들은 가까운 이들에게는 냉담하게 굴고 심지어는 정서적인 학대를 일삼으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정말 좋은 사람처럼 행세한다.
나르시시스트의 대인관계는 본질적으로 모두 다 착취 관계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들을 철저하게 조종하고 이용함으로써 악독하게 착취한다. 물론 그들도 남들에게 돈이나 선심을 쓰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본질은 자신의 착취 목적 그리고 자신의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데 있다.
만약 내가 나르시시스트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나를 보호해야 할까?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빌런과 함께 살아가는 경우 아래와 같은 악순환이 발생한다.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는 것은 너무 벅찬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지 논쟁을 끝내고 평온을 찾기 위해 결국 져주고,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나르시시스트가 원하는 것’이며, 그러한 ‘성공을 거듭할수록 그들은 더욱 자기 요구를 만족시키려고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압박하는 전략을 고수한다.’ 따라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그들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악순환의 관계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해라. 건강하지 못한 인격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전문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처럼 먹고사는 일로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관계를 끊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아래 원칙들을 참고하면 좋겠다.
① 나르시시스트의 허락이나 인정을 구하지 마라
② 나르시시스트의 부당한 지배를 허용하지 말자
우리는 나르시시스트들의 부당함과 타협하지 말고 그들에게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나르시시스트가 우리의 인생과 운명을 지배하도록 허용하지 말자.
나르시시스트에게 단호하게 맞서기 시작하고 그(녀)의 지배와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면 그(녀)는 화를 내고 압력을 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인 불편함과 긴장을 감내하지 못해 그들에게 굴복하면 우리는 영원히 나르시시스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렵기는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는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맞서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글로 읽으면 쉽지만 막상 빌런들 앞에 서면 심장이 바짝 조여 오고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를 지키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빌런에게 전하고 싶은 대사를 연습하고, 그들 앞에서 단호하게 말하는 이미지 트레이닝도 해보자. 빌런의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면 함께 대처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피할 수 없는 빌런이라면 용기를 내어 나의 소중한 삶을 지켜내자.
*커버사진 출처: Unsplash의 Ember Navar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