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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Jul 14. 2024

인생미션: 억지로라도 행복하기

<나태주의 행복수업> 김지수

나태주 시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그의 유명한 시를 보며, 대중 감성의 상업적 시인이라고만 여겼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작품들을 썼는지 들여다보지도 않고서.


그래서 김지수 작가가 <나태주의 행복수업>이라는 인터뷰 책을 냈다고 해서 처음엔 의아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이어령의 마지막수업>을 통해 삶의 깊이 있는 통찰을 발견하고 전해주었던 작가의 경력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 자신의 졸렬함을 반성했다. 시인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심판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의 시는 정말 옳다. 누구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게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나태주    




인생은 어렵다. 우리는 서툴고 연약하기에


2023년 봄, 김지수 작가가 공주에 있는 나태주 시인을 4개월 간 정기적으로 찾아가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나태주의 행복수업>은 시인이 살아온 삶의 여정과 배움, 그리고 철학이 봄꽃처럼 아름답게 피어 있는 글이다.


나태주 시인이 말하는 인생의 본질은 서투름이고 어려움이다. 쉬운 인생이란 없다. 작고 연약하고 서투른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삶은 편안해진다. 별볼 일 없는 ‘나’를 알기에, 대단한 성취를 이뤄낼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아갈 때 삶이 더 좋아질 뿐이다.


“인생은 본질이 서투른 거예요. 서투른 걸 편안하게, 담담하게 받는 거죠. 서로를 서투르게 봐줘야 웃길 틈이 생깁니다. 유재석이 사회 보는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도 나는 대본 없이 촬영해요. 큐시트를 줘도 안 받아. 왜? 서투른 데 생명이 있거든요.”

“즉석에서 새롭게 돌리면 훨씬 싱싱해요. 오답을 낼 수도 있습니다. NG 자체도 연기예요. 실수 자체도 그냥 인생입니다. 불행 그 자체를 손들어 환영할 건 아니지만, 불행한 사고나 ‘이불킥’ 하고 싶은 실수는 반드시 그 뒤에 더 좋은 걸 가져다줍니다.”

“산다는 건…… 말이지요. 매우 비참한 가운데 명랑한 거예요.”


시인의 삶도 그랬다. 그는 43년간 교직생활을 하며 묵묵히 성실하게 시를 써왔다. 대단한 성취와 명예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은퇴 후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에 ‘풀꽃’이 올라오면서 그의 시는 역주행하며, 국민 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하루하루 축적된 성실함이 꽃으로 피었다.

    

가장 사랑받은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 (출처: 경향신문)



억지로라도, 행복하라


삶 자체는 고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시인은 행복을 학습하고 노력해서 억지로, 억지로라도 행복해지라고 한다.


“배고프기에 밥을 찾고 목마르기에 물을 찾지요. 인생 그 자체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행복을 찾는 거예요. 예수 시대에는 긍휼矜恤이 없었고 석가 시대에는 자비慈悲가 없었고, 공자 시대에는 인仁이 없었어요. 없기에 찾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잊을까, 계속 얘기해요. 억지로라도 행복해지라고.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이 ‘사랑이 학습’이라고 한 것처럼 행복도 학습이에요. 노력해서 억지로, 한 번에 안 돼도 또 한 번 억지로, 행복해질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작은 기쁨들로 큰 고통을 메우다 보면 조금씩 살 만해지고 평안해지는 것, 그게 우리가 부르는 행복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행복의 비결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려운 환경이라도 내가 즐거운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희한하죠? 생명의 저력은 풍요보다 결핍에서 나온다는 게. 가난한 흥부네 집에 자식이 많듯이, 나도 가난하고 부족해서 시를 많이 썼어요. 늦도록 시들지 않고 시 열매가 달린 거죠. 결핍이 없는 사람은 느슨해져. 결핍과 기쁨을 감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결핍과 기쁨은 반대 같지만, 꼭 반대는 아니에요. 결핍이 있기에 노력하고, 노력에서 몰입이 나오죠. 몰입은 기쁨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시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만 나옵니다.”


다른 하나는 예뻐하는 마음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이든 나무든 꽃이든 예뻐해야 해요. 예뻐하면 대상에게만 이로울 것 같지만, 나한테 가장 이로워요. 사랑이 없으면 내 마음이 지옥이잖아요. 예쁘다, 예쁘다…… 말하는 게 씨를 뿌리고 물 주는 행위예요. 꽃이 피면 공기가 열리죠. 봉오리만 한 천국이 같이 오는 거예요.”

“선생님. 더 넓은 집으로 옮기거나 더 좋은 차를 사는 것 말고, 인생이 좋아지는 비밀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알려주세요.”

어깨를 으쓱하며 태주가 말을 이었다.

“음…… 그건 말입니다. 당장은 조금 손해 보며 사는 겁니다. 적당히 손해 보고 넘어가야 큰 손해를 안 봅니다. 손해 보는 것이 멀리 보면 득을 보는 거예요. (중략) 인생이 진짜 좋아지려면 남한테 잘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요. 시가 아니면 밥으로도. 밥이 아니면 돈으로도.”    


출처: TVN




그냥 살면 돼요


시인이 80년 인생 여정에서 배운 행복의 지혜는 낯설다. 주식과 부동산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는 삶,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삶… 넉넉한 소유와 노동하지 않는 삶을 행복으로 연결 지으려는 우리의 욕망을 비켜간다.


시인은 인간 존재가 가진 한계를 쿨하게 인정한다. 노동의 피로와 생존의 불안은 인생의 본질이며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니 겁낼 것도 없다. 그냥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면 된다. 억지로라도 행복의 순간들을 찾으며 살다 보면 삶은 조금씩 더 나아진다. 시인의 인생 고백이다.


“젊은 친구들한테 내내 하는 이야기가 그거예요. 인생, 편하게 가려고 하지 마라. 절대로 안 편할 테니까. 오히려 ‘인생, 절대 안 편하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더 편해집니다. 살 만해지죠."

“혹 부양의 의무가 영혼을 짓누른 적은 없었습니까?”

“무겁죠. 부양의 의무는. 경제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것이든, 어떤 의미이든 가장의 역할을 맡으면 힘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대학원 다니며 논문 쓸 때, 아침마다 회식비를 빌려서 마련해갈 때, 그때 한 시절은 혼자 부양의 책임을 진다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중략)  엄청난 등짐을 지고 까마득하게 펼쳐진 사막을 건너야 할 것 같은 막막한 기분. 그런데 하다 보면 다 하게 됩니다. 인생이 그래요. 몰라서 지나갈 수 있어요. 미리 알고 겁먹으면 더 힘들죠.”


“악을 쓰고 살지 않아도 될까요?”

“그럼요. 그냥 살면 됩니다. 너무 잘 먹고 잘살려고 하지도 말고 너무 겁먹고 도망가듯 살지도 마세요.”

태주가 미소 지었다.

“가다 보면 오아시스나 우물도 만나고 목도 축일 수 있어요. 그냥 살아도 크게 억울하지 않습니다.”   


출처: 조선일보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나태주의 행복수업>을 읽다 보니, 나를 오랫동안 붙잡고 쪼이던 나사가 조금 풀어졌다. 잠시 걸음을 멈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 쉰 기분이랄까. 마음에 작은 여유 공간이 생겼다. 나를 비롯해 누군가의 목을 축여주는 시인의 언어가 고마웠다. 이것이 시의 진짜 쓸모였구나!


시인과의 대화 속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김지수 작가의 이야기들도 공감이 되었다. 그가 쓴 많은 콘텐츠와 책을 읽었지만 그의 인생 여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평범한 한 인간, 그리고 부모로서 그가 가진 상처와 아픔이 시인의 습윤한 언어를 통해 회복되는 과정이 나를 포함한 다른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작고 연약하고 졸렬한 인간들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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