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읽는 성경 - 로마서(1)
나의 성공과 행복, 즐거움이 최고의 가치가 된 자아숭배 시대. 이 시대를 살면서 기독교의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자아분열적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하고, SNS는 나의 욕망을 예배하라고 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든, 자신을 예배하든 우리 삶은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사도 바울이 살던 때도 다양한 신학과 철학들이 혼재했고 그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복음’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로마 교회 사람들에게 편지로 전했다. 덕분에 우리도 우리가 믿는 복음의 정수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복음이란 무엇이며, 이 시대에도 복음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동시에,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는 선하고 성숙한 존재로 살아가길 바랐다. 하지만 태초의 인간인 아담부터 그 바람은 실패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따르기 보다 자신의 욕망을 따랐고, 하나님과의 평화로운 관계는 깨어졌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예배하는 삶,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질이다.
이것은 성악설, 성선설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연약함'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선(善)을 쫓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욕망 앞에 쉽게 무너지는 존재이다.
[롬 1:28-31, 새번역]
28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게, 타락한 마음 자리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29 사람들은 온갖 불의와 악행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차 있으며, 시기와 살의와 분쟁과 사기와 적의로 가득 차 있으며, 수군거리는 자요, 30 중상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불손한 자요, 오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꾸미는 모략꾼이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신의가 없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입니다.
[롬 3:10-12, 새번역]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이하 모든 성경의 원문은 '표준새번역본'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자녀처럼 사랑하셨고, 심판하기를 오랫동안 참으셨으며, 결국 용서하기로 결정하셨다. 다만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기에 인간의 죄에 대한 벌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당신이 직접 예수를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 죽게함으로 죄의 댓가를 치렀다. 사람이 하나님의 제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위하여 제물이 되었다!
하나님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기로 하셨다는 것. 이 말도 안되는 사건이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다.
[롬 3:23-25]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24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습니다. 25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사람에게 속죄제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피를 믿으면 속죄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 주심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신실한 사랑의 이야기를 믿을 때, 우리의 죄는 깨끗하여 지고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가 회복된다. 마치 나의 잘못으로 관계가 틀어졌던 부모님이 마음을 풀고 나를 향해 다시 웃어주실 때, 그 용서의 메시지를 믿고 달려가 안기는 아이의 모습과 같다. 사랑하는 부모의 품 안에서 느끼는 평안과 행복이 곧 ‘구원’이다.
[롬 5:1-2]
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왔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예수를 부활시키신 것처럼 우리도 새롭게 부활시키신다. 죄를 따르는 죽음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움을 따라사는 생명의 삶을 주신다.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평생을 죄와 싸워야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승리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롬 8:1-4]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여러분 각자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육신이 연약하므로, 율법이 할 수 없던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육신에다 죄를 정하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완성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롬 8:36-39]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초하이테크 시대에 “인간을 사랑하는 우주의 창조주”를 인정할 수 있을까?
자아숭배 시대에 “나의 욕망에 집중하는 것이 죄”라고 여길 수 있을까?
돈이 구원이라고 믿는 시대에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구원”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사실 불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기술이 계속 발달한다고 해서 우주와 삶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해결될까?
나의 욕망에만 집중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돈만 있으면 인생의 모든 불안과 고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불가능할 것 같다. 인간은 우주의 무한함과 난해함에 비하면, 지극히 유한하며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이 많고 똑똑해도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쉽게 해결할 수 없다. 나의 행복을 열심히 쫓는다고 해서 행복이 손에 쥐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바꾸라고 한다. 나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라고 한다. 그것이 구원이며 생명의 길이라고. 어린 아이가 부모의 품 안에서 가장 평안한 것처럼, 험난한 인생을 사는 인간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품 안에서만 완전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복음이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