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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외롭다

『사춘기 마음을 통역해 드립니다』 김현수

by 재희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해가 갈수록 생각하는 방식이나 말투가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아직 소극적이긴 하지만, 부모 말에 ‘논리적인 반론’을 제기할 때가 많아졌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으론 ‘얘가 진짜 많이 컸구나’ 싶기도 하고, ‘사춘기 오면 말다툼이 더 심해지겠는데…’ 싶어서 걱정도 된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연히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발견했고, 저자의 이름을 보고 반가웠다. 김현수 교수님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해 헌신해 온 분이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메시지는 따뜻하고 진정성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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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외롭습니다. 정말 정말 외롭습니다. 그들의 외로움을 어른인 우리가 이해해 주고, 잘 돌봐 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춘기 마음을 통역해 드립니다』는 말 그대로 아이들의 마음을 ‘통역’해주는 책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부모에게 설명해준다. 이 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아이들이 외로운 이유는 결국, 이해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부모의 넘치는 기대와 결핍된 이해


자녀를 적게 낳는 요즘, 때로는 부모와 자녀가 지나치게 의존적 관계가 되기도 한다. “너밖에 없다”는 말은 사랑처럼 들리지만, 아이에게는 무거운 기대와 집착으로 느껴질 수 있다. 부모의 관심은 아이의 감정보다는 성적과 성공에 쏠려 있고, 아이는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간다.


부모는 자신의 기대만큼 자녀가 노력하지 않으면 답답해하고 실망한다. 반면 아이는 부모가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부모를 원망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정서를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빈곤 탈출이나 계층 이동을 꿈꾸던 부모 세대에게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인내심이 중요한 덕목일 수 있었지만 자기실현과 재미있고 행복한 인생이 목표인 지금 세대에게는 흥미, 의미가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흥미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돕지 않으면서 인내심을 발휘하라고 하면 동기 부여가 안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고통스러운 과업을 부과하는 부모가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핸드폰을 사 주는 것이 부모가 나를 얼마나 존중하느냐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세대입니다. 좋은 핸드폰을 사 주지 않는 부모는 자신을 생각해 주지 않아서, 심지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이렇게 세대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서로 미워하고 안 통하고 힘든 것이 ‘선과 악’의 프레임이 아닌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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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녀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지금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와의 문화적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서로 더 멀어지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집에서는 ‘왕자’ 학교에서는 ‘엑스트라’


집에서는 늘 ‘왕자’처럼 인정받으며 살다가, 학교에서는 ‘엑스트라’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다.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아이들에게 상을 준다.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존감을 세워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성적에 따라 줄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 변화 속에서 아이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중학생이 되어서 크게 달라지는 것 중 하나가 초등학교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석차가 뚜렷한 성적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의 구별이 확연해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아이가 되지 않으면 익명의 존재로 자신의 운명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점차 알게 됩니다. 상위 그룹에 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오는 상실과 슬픔은 큰 아픔입니다. 아이들이 겪는 열다섯 살의 자기애적 손상, 나는 잘하는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잘하는 아이들의 집단에 속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되는 아픔으로 연결됩니다.


내 아이가 이런 상황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말을 여전히 반복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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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되면 냉혹한 현실 앞에서 자신감이 떨어져 위축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많은 아이들이 특별한 아이가 되고 싶어 합니다. 탁월한 성과를 내는 것에 대한 동경, 즉 폼이 났으면 하는 열망이 굉장히 큽니다. 김연아 선수나 손흥민 선수 혹은 10대에 성공한 연예인들처럼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큰데, 아이들은 그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하고 어려운 과정을 견뎌 왔는지는 잘 모릅니다.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처럼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노력과 고통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인플루언서처럼 멋져 보이는 삶 뒤에는 수많은 시간과 인내가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할 수 있도록, 부모는 '조언자'이자 '응원자'가 되어야 한다.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필요해요


사춘기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가는 시기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그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


부모님의 자리가 컸기에 아이들의 마음도 텅 빈 것처럼 쓸쓸해집니다. 처음으로 혼자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부모와의 밀착에서 떨어져 나와 광야 앞에서 홀로 된 기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렇게 잘난 척하고 떠들고 허세를 부리다가도 아이들이 간혹 보이는 침울함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혼자 있고 싶어 하고 우울해 하는 그런 순간에 아이의 독립과 성숙을 위한 과정이 진행됩니다. 우리는 잘 기다려 주면 그만입니다. 부모라도 그 작업을 대신 해 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제 부모의 자리는 점점 또래 친구나 멘토 같은 다른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친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에게 훨씬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좋은 친구를 사귀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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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자신을 동일시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대상, 즉 내면세계에서의 동일시 대상을 엄마 아빠에서 다른 누군가로 바꾸어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이 시기부터 또래와 멘토가 그들의 새로운 동일시 대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부모라는 대상이 위치하던 그 자리에 또래 부모, 멘토 부모, 위인 부모, 선배 부모, 선생님 부모가 세워지게 됩니다.
사춘기 시기에 친구는 사회적 자아의 탄생을 알리는 필수적 대상이라는 것을 부모님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그러므로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것이 아닙 니다. 친구 때문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잔소리는 인생에 대해 정 말 모르는 부모들이나 할 소리입니다. 친구는 정말 소중한 것이고 내 아이에게 아주 중요한 대상이며, 아이들에게 새로운 소속감과 정체감을 가져다 주는 정말 필요한 환경 중 하나입니다.





솔직히 내 사춘기 시절이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부모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었던 마음, 치열한 성적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이나 같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새 그런 마음을 잊은 채, 아이들에게는 더 열심히, 더 잘하라고만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고 싶다면, 우리가 바랐던 것들을 다시 꺼내어 아이들에게 전해 주면 된다. 더 따뜻하게, 더 느긋하게, 더 믿어주면서.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아이들의 의욕을 꺾는 일입니다. 세상은 “살아 볼 만하고 따뜻하고 너를 받아 줄 만한 곳이고 네가 꿈을 펼쳐 볼 만한 곳”이라고 해야 아이들이 세상에서 신나게 살아갈 텐데, 이렇게 겁부터 주면서 아이들이 의욕적으로 도전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따뜻한 것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우리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는지, 또 우리의 실수에 대해 관용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우리가 불안하게 살지 않고 편안하게 살기를 얼마나 바랐는지를 알고 있다면 자녀들에게 똑같은 불행을 이식시켜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해 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내용은 책에 담긴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사춘기 자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거나,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부모로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된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분명 자녀를 지금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사춘기 자녀와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혹시 요즘 들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드시나요?

당신이 느끼는 ‘아이와의 거리’, 그 마음을 들려주셔도 좋습니다.

우리 함께,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해보면 어떨까요?

댓글로,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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