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기획자가 되자

프로젝트3. 힐링 리듬 게임 <발을 씻자> AI 제작기 (2)

by 재희



길을 모를 땐 네비게이션부터


혼자 게임을 만들기로 결심했지만, 솔직히 막막했습니다. 기획자인 저는 코딩은커녕 모든 용어가 낯설기만한 '개발 까막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무작정 덤비는 대신, AI에게 로드맵부터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마치 여행지에서 현지인에게 길을 묻듯이요.


"나 모바일 웹으로 리듬게임 만들고 싶은데, 코딩도 모르고 서버도 몰라. 근데 AI랑 대화하면서 기획부터 출시까지 다 하고 싶거든? 나한테 딱 맞는 AI 서비스 좀 추천해 줄래?”


그러자 AI는 제 수준(?)을 간파하고, 단계별로 필요한 도구들을 친절하게 리스팅해 주었습니다. 기획은 챗지피티(ChatGPT), 코딩은 클로드(Claude)나 커서(Cursor)… 들어본 것도 있고 생전 처음 보는 것도 있었지만, 적어도 어떤 장비를 챙겨야 이 모험을 떠날 수 있는지 알게 되니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지더군요.




내가 원하는 것을 뻔뻔하게


도구(AI)가 준비되었으니, 이제 '무엇을' 만들지 설명할 차례입니다. 여기서 기획자의 뻔뻔함이 필요했습니다. 기술적인 건 모르겠고, 내가 원하는 '재미'와 '감성'만큼은 확실하게 전달해야 했으니까요. 저는 챗지피티와 클로드에게 대략적인 컨셉을 담은 주문서를 넣었습니다.


[나의 기획 주문서]

-닌텐도 '리듬세상'이나 '불과 얼음의 춤' 같은 리듬 게임.
-제목은 '발을 씻자'. 배경은 화장실.
-타겟은 퇴근길 직장인.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싶은 사람들.
-발판 위에서 왼발, 오른발을 리듬에 맞춰 쓱싹쓱싹!
-잘 맞추면 거품이 보글보글, 못 맞추면 거품이 안 남.
-지역 기반 랭킹(동네 1등 도전!)
-게임 끝나면 오늘 하루 기분을 기록하고 나쁜 기억은 씻어내는 리추얼.


이게 과연 게임 기획서가 될까 싶었지만, AI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저의 간단한 요구를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게임 루프(Game Loop)", "점수 산정 로직", "UX 플로우" 같은 그럴듯한 용어를 써가며 번듯한 기획안을 뱉어냈거든요.




기획안은 완벽했지만, 느낌이 안 살아


AI가 짜준 기획안은 훌륭했습니다.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점수 시스템의 현실적인 구현 방안이나 비주얼 아이디어까지 제안해 주었죠. 개발 언어를 모르는 저에게 "아, 게임은 이런 구조로 설계되는구나"라는 감을 잡게 해주는 훌륭한 교과서였습니다.


하지만 AI가 뚝딱 만들어준 초기 프로토타입을 받아보았을 때는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어? 이게 아닌데?'


기능은 동작하는데, 제가 상상했던 그 감성과 손맛은 아니었습니다. AI는 논리적인 구조는 잘 짜지만, "상상했던 재미와 즐거움"까지 완벽하게 구현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AI가 제안한 것 중 덜어낼 건 과감히 덜어내고, 제 직관이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고집스럽게 추가했습니다.




결국 키를 쥔 건 '나'


이 과정에서 저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AI가 다 해주면 창작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정반대였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재미있는 이유는, 가장 나다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AI는 제 머릿속의 막연한 생각을 구체화해주고, 제가 못하는 코딩 기술을 지원해 주는 든든한 파트너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결정은 오직 저의 몫이죠.


만약 AI가 시키는 대로만 했다면 '발을 씻자'는 그저 그런 흔한 리듬게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주도권을 쥐고 AI와 끊임없이 "이건 좋아", "이건 아니야"를 티키타카 했기에, 제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 기획은 끝났습니다. 이제 이 뻔뻔한 기획서를 들고, 디자인과 음악이라는 옷을 입혀볼 차례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AI와 함께 어떻게 게임의 때깔(?)을 만들어갔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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