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게 생존하라』김호
서른 후반을 지나며 많은 직장인들이 비슷한 감각을 경험한다. 일은 여전히 바쁘고, 가정도 꾸려가고 있으며, 겉으로 보기엔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삶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허무와 불안이 고개를 든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질문이 어느 순간부터 반복해서 떠오른다.
『쿨하게 생존하라』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조직의 위기관리 전문가였던 저자는, 서른 후반에 이르러 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삶의 방향을 잃었다고 느꼈던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조직에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으면서도, 정작 개인의 삶에는 그런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위기 관리를 위해 필요한 여섯 가지 ‘서바이벌 키트’를 정리했다.
저자가 제시하는 여섯 가지 서바이벌 키트는 삶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삶이 흔들릴 때,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점검하게 만드는 질문들에 가깝다.
서바이벌 키트는 나침반입니다.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할지, 일하는 업종을 바꿔야 할지, 창업을 해야 할지, 배우자나 친구,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 훌륭한 길잡이가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체크리스트를 떠올리게 되었다.
1. 직업: 나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넘어, 회사 밖에서도 설명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있는가?
2. 경험: 머릿속의 계획이 아니라, 실제로 “했다(I Did)”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가?
3. 관계: 내게는 행복을 위한 친구, 성공을 위한 지인들이 있는가? 또한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인가?
4. 배드 뉴스: 배드 뉴스를 실패가 아니라, 삶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5. 역사: 미래를 목표로만 상상하지 않고, 언젠가 뒤돌아볼 구체적인 과거로서 그려본 적이 있는가?
6. 균형: 일에 몰입하는 시간, 나를 충전하는 놀이, 멈춰 서서 돌아보는 시간 사이의 균형을 잡고 있는가?
여섯 가지 질문 가운데 몇 개나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대답이 불편할수록, 지금의 삶에 더 절실한 질문일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섯 가지 키트 가운데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은 경험이다. 직업도, 관계도, 균형도 모두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가 시도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반복해서 ‘할 수 있다’는 말보다 ‘했다(I Did)’라는 말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무엇이 필요한지도, 어떤 방향이 나은지도 대개는 알고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공개 약속, 자기 결박 계약, 리추얼, 기록의 힘 같은 방법들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향한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누구나 길은 안다. 하지만 소수만이 그 길을 걷는다.
저자가 말하는 경험은 거창한 성공담이 아니다. 매일 조금씩, 실제로 해본 흔적이다. 삶의 방향은 깨달음의 총합이 아니라, 경험의 누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 책은 끈질기게 상기시킨다.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레시피로 균형을 꼽는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균형은 흔히 이야기하는 워라밸과는 다르다. 그는 삶을 세 개의 정거장, GPS (Go / Play / Stop)로 설명한다.
삶의 세 가지 정거장인 고, 플레이, 스톱의 앞 글자를 따면 GPS인데요. 이 세 가지 정거장은 내 삶이 어디쯤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위치를 잡는 데 도움을 줍니다.
Go는 직업적 몰입의 시간이다. 좋아하는 일에 미쳐본 경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해본 시기다. Play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충전의 시간이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즐기는 놀이에 가깝다. Stop은 멈춰 서서 삶을 줌아웃하는 시간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선택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고독한 시간이다.
저자가 말하는 균형은 이 세 정거장을 고르게 배분하는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시기마다 불균형을 통과하며, 다시 균형을 재구성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젊은 시절에는 직업을 갖추기 위해 Go에 치우칠 수밖에 없고, 역설적으로 그 불균형이 쌓여 나중에 Play와 Stop이 가능해진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느 정거장에 서 있는지를 자각하는 일이다.
진정한 균형이란 직장과 가정이 아닌 자신의 직업과 놀이, 그리고 멈춤 사이에 존재합니다. 직업에서 자신의 분야를 찾아내어 전문성을 쌓고(고), 그런 일을 오래하기 위해 놀이로 충전하며(플레이), 삶의 여정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지도를 펼쳐보는 시간(스톱)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첫 독립출판 책 『서른아홉 행복가능보고서』를 썼던 시간을 떠올렸다. 그 시기의 나는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방향을 점검할 여유는 없었다. Go는 있었지만 Stop이 없었고, Play는 늘 뒤로 밀려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실패라기보다, 삶의 구조를 다시 짜야 했던 전환점에 가까웠다. 이 책이 말하는 경험과 균형은, 바로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쿨하게 생존하라』는 삶을 멋지게 바꾸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여섯 가지 서바이벌 키트 중 무엇이 비어 있는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가 경험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멈춰 설 시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한다.
삶이 허무하거나 불안하게 느껴지는 35–45세 직장인들에게, 이 책은 꽤 정직한 코치가 되어준다. 정답을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삶의 좌표를 다시 찍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