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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숫자쟁이 Sep 22. 2022

밖으로 향하는 노력

Something's gotto give

  나는 늘 더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부족한 점이 늘 보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좋은 영화를 찾아보며 교양을 쌓아보려고 했고, 운동이나 패션을 통해서 외적인 모습을 가꿔보려고 했다. 특히 내 직업이나 커리어의 발전을 위해서도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혼자 생각을 하는 시간이 정말 많았는데 그 시간에는 내가 얻지 못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히 생각하곤 했다. 가끔은 나만의 성장 노하우라고 부를법한 좋은 방법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순간에도 채워진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려웠다. 뭐가 달라지긴 했긴 했겠지만 뭐가 채워지긴 했던걸까? 정말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한 주, 한 달, 일 년이 지나왔지만 어느 순간 이런 방법으로는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아마도 가지고 있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더 빨리 채워지길 바랬던 마음이었다.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이사이로 사람들을 관찰하곤 하는데 카페에 오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일까 상상해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대화를 할 때 눈을 쳐다보면서 잘 이야기 하지 못하는데 사람들이 눈을 쳐다보면서 공감하며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볼 때 상당한 몰입감이 느껴져서 신기할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걸 보면 나는 종종 진정으로 듣고 있지 못하는게 아닐까? 진정으로 듣질 못하니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는게 아닐까.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는 관계를 쌓아간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한다는 감정을 표현할 때도 그 사람에게 어떤 울림을 주거나 공명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나의 마음과 나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훨씬 더 컸다.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이 말을 한다면 분명히 감동을 받을 거야.'라고 생각한다던지 '그 사람이 예전에 나와 대화를 하며 말했던 그 향수를 사준다면 분명히 '내가 이렇게 사소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알아주겠지.' 와 같은 식으로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내 딴에는 생각하고 공을 들여 한 행동들이지만 막상 상대방은 고백이나 선물 자체를 원하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그것은 오직 나만의 유희에 가까웠던 거다. 나의 일방적인 행동들이 진정으로 두 사람 사이의 공감으로 이어졌던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늘 내가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그대로의 말이 왜 전달되지 않을까라고 늘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과 늘 어긋난 이유는 그 모든 노력의 방향이 상대방이 아니라 나를 향했던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늘 자신에게 투자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나는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이뤄낸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디가 끝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상태가 되면 나는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커리어 실력 쌓기. 미래 성장을 위해서 자기 관리에 더더욱 엄격해지기. 교양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면 가질법한 젠틀한 매너 연습하기. 이런 것들이 좋은 것이라고, 아니 이런 것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나만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산이 늘어나면 더 많은 인정을 받고 더 많은 애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혼자 지내는 시간에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많이 만나거나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나 대화를 멀리 하려고 했고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한 노력은 줄어들게 되었다. 내가 노력을 해서 얻고 싶었던 것은 관계였는데 모순적이게도 관계를 위한 노력보다 를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마치 관계라는 것은 성취에 대한 보상으로 따라오는 부산물처럼.


  노력의 방향이 자신만을 향하는 것도 얼마든지 옳은 방향일 수 있다. 나의 성장이나 몰입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당연하게도 그 노력을 자신에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관계 속에서 행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시켜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노력이 자신의 안 쪽이 아니라 밖으로 향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같은 시간을 가지고 있고 그 시간을 어떤 방향으로 사용할지를 결정할 때 자신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노력의 방향이 자신을 향한다는 말은 이기적이라는 말과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사고가 자기중심적일지라도 타인에게는 굉장히 배려심이 깊고 양보하는 미덕을 갖춘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깊이 이해해서 나온 것이라기보단 교양의 영역과 비슷하다. 모든 사람에게 선을 넘지 않고 무난하게 대할 수 있는 예절이라는 게 있고, 예절이 정교해지면 굉장히 매너 있고 품위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보편적인 미덕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모든 관점이 자신을 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려심이 많다는 것과 관계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바깥으로 향하는 노력을 한다는 것은 관계를 위한 시간을 쓰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결국은 자신을 향하는 감각보다는 바깥으로 향하는 감각으로 계발되어 가는 과정이다.


관계에서 나라는 건 결정 변수가 아니다. 상대방이 결정 변수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온 취미나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낼 때 '이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음악이야,  힘들 때 나에게 힘을 줬던 음악이야.' 라던지  '이곳은 내가 혼자서 생각이 많을 때 왔던 곳이야. 나는 이곳을 올 때 내 고민과 상처를 위로할 수 있었어.'라고 내심 힘주어 말하곤 한다. 나는 그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나를 알아보는 것은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상대에게 강조하는 것이다. 나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하고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고의 방향이 나를 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가 얼마나 순수한지, 내가 얼마나 성숙되었는지, 내가 하는 생각들과 마음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아보는 것과 호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 얼마나 관계가 있을까. 짧은 시간 동안 주고받는 말이 재미가 있고 대화를 끌어가는 힘이 들지 않는 대화를 티키타카가 잘 맞는다고 한다. 그런데 티키타카 대화라는 건 나-중심의 대화가 아니라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는 대화여야 한다. 사람들이 이런 대화를 좋아하는 것은 늘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반응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관점이 나를 향해 있어서 상대방에겐 잘 들리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티키타카가 잘 될 수 없다.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알게 되서가 아니라 관계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다. 관계에 있어서 '나'라는 건 결정 변수가 아니다. 그 사람이 결정 변수다. 


  그래서 모든 삶의 에너지를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데 별 소용이 없다. 더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결국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준이고 그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도 오직 나 자신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킨다고 해서 내가 기대했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말이다. 나는 관계를 만들고 싶고,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다. 그러려면 더 이상 나를 향하는 노력이 아니라 상대를 향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건 무엇을 얻거나 잃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편안한 방향으로의 지향일 뿐이다. 나는 더 이상 카페에서 연인이나 남녀를 바라보며 어떤 사람들일지 왜 그들이 내가 가지지 못했던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단지 두 사람이 그 자신들의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의 상대를 향해서 노력했을 뿐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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