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서울시민연극 17기를 그만둔 지 일주일이 지났다.
내가 늦을수록 연습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기에... 정기수업이 있는 지난주 월요일 아침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계속했다면 앞으로 한 달여 기간 동안 주 3일을 세종문화회관에 가야 했을 것이다.
퇴근 후 어딘가에 가서 몇 시간을 보내고 온다는 것은 꽤나 부담되는 일이었다.
평소의 루틴을 깨는 일이기도 했고, 실제로 집안일이며, 아이들의 일상에도 변화를 주는 일이었다.
다시 평소의 루틴으로 돌아와 일상을 보내보니,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했다.
저녁을 함께 먹고 내 시간을 가진 것이긴 했지만, 원래 여유가 있었더라면 가졌을 엄마와 함께 할 수다타임도 줄고, 역마살 남자는 여전히 다른 곳에 있기에 저녁시간 집안에 어른이 있어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도 줄었을 거다.
고등학생이 된 후 이미 수면시간이 많이 늦어진 첫째는 그렇다 쳐도, 내가 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던 둘째를 생각하면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때 예체능만 주야장천 하느라 아직 공부습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중1 둘째와 저녁공부시간을 가지던 것이 바빠진 나 때문에 흐지부지 되어버렸었다.
주말에 늘 나와 함께 하던 둘째가 중학생이 되면서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처럼 뚝 떨어져 나가 버렸다. 심심해진 주말에 뭐라도 배워야지 하고 택했던 사진수업까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 진행되고 있었으니, 너무 욕심을 냈던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직은 주중에 긴 시간 어딜 다니는 것은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무리였던 걸로 판명이 났다.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발로 차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문득문득 버텨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바보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그날의 그 불편함과 주목받는 몇몇 사람 뒤에 주변인처럼 서있는 내 모습이 마치 내 진짜 모습 같기만 해서 마음에 생채기를 내던 그 순간을 다시 견딜 자신은 없다.
연극을 막상 그만두고 보니,
일상루틴이 편안한 것처럼 이토록 편할 수가 없다.
확실히 내 몸에 맞지 않았던 옷이었던 것이다.
다른 역할이라면 좀 달랐을 수도 있지만, 그 역할을 받았던 것부터, 어쩜 운명은 나에게 이건 아니라고 알려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몸에 맞지 않는 역할을 맡고 고전해 보니, 나를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완벽주의자였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매번 바뀌는 상황을 불편해했다.
유연한 P성향이 강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J스러웠던 내 모습.
게다가 여전히 나는 소심하고 주변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이었다. 쭈뼛대던 내 모습.ㅡㅡ;
연극은 나 같은 사람은 하는 게 아니라 관람하는 것이란 큰 교훈도 얻었고,
이런 나를 인정하고, 연극 말고 다른 것을 통해 진짜 나를 만나겠다는 다짐도 했다.
진짜 연극은 내 인생이란 무대에서 이미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미 나는 주인공으로 이 각본 없는 연극을 수많은 조연들과 함께,
때로는 내가 조연으로, 그림자 같은 역할로 극을 이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민연극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 연극배우에 대한 도전은 내 삶이라는 연극의 한 부분을 차지할 극 중 극의 한 장면으로 자리 잡았고,
나는 앞으로도 전체 막이 내릴 때까지 내가 주인공인 이 극에서 대본 없이 나를 연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