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는 것도 있다.

연극을 하면서 깨달은 것

by 이슬노트

역할의 문제일까.

나의 문제일까.

극중 공연연습 장면의 이상한 캐릭터는 결국 로봇같은 설정으로 변했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쓸데없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본대로라면 유일하게 우스운 캐릭터였지만 모두가 우스꽝스러운 광대가 되어 연기하게 된 이상 더더욱 그 필요가 사라진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릿 5 대사는 다 빼도 되지 않을까요? "

라는 질문을 했다.

빼더라도 12월 되서 뺄거니 우선은 하라고 한다.

12월에 뺄 가능성도 있는거라면 어쨌는 빼도 무방한 정말 쓸데 없는 역할이라는 답변을 얻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 나는 역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요한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쓸데 없는 역할이어서는 안되는 거다.

그런역할을 하고 있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즐겁지가 않다. 엇보다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다. 꾸 힘이 빠진다.


나 정말 이거 계속해야 할까...

내 대사가 있는 두 장면 중 하나는 없어져도 되는 역할, 또 하나는 극중극 왕비의 두줄짜리 대사로 다른 햄릿들 중 누가 해도 겹치지 않는다.

햄릿들 단체장면에서는 당연히 없어도 되고(이 부분 역시 핸드팬 연주자가 되면서 알게 되었고), 가장 아쉬움이 남는 핸드팬 연주는 이제 한곡만 연주하면 되므로 누군가 한달쯤 연습하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잘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나는 이 연극에 필요하지 않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스트레스 받아가며 보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연극을 통해 얻고 싶었던 건 무대에 오르는 것보다도 다른 캐릭터를 통해 나를 만나며 내 존재감을 확인하고 알을 깨고 나오고 싶었던 건데, 이 역할로 존재감 없는 나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나는 어쩜 굳이 알을 깰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 생각,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어가는 연극에 도전해보며 얻은 것이 있다.

내게는 연극이라는 장르가 몸에 맞지 않다는 것.

핸드팬이라는 악기를 만나게 된 것.

짧은 기간 연극에 도전해보며 3년정도 아역배우 활동을 했던 아이의 고충도 조금 더 이해가 되었다.


이로써 나는 이 연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이미 얻었고, 더 이상 자존심에 상처입는 상황에 나를 집어넣고 싶지 않다. 업으로 삼을 일도 아니면서 내 돈과 시간을 들이면서 이렇게나 괴로울 일인가 싶다.


연극은 이런 것이다.

내가 원치 않는 역할을 해야 하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도 버텨내야 하는 것. 어쩜 인생도 연극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버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을 필요는 없다.

내게 잘 맞는 편한 옷을 입고 넘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굳이 불편한 옷을 입고 괴로움을 감내하면서까지 나를 갉아먹을 필요가 있을까...


결국 오늘 아침에 장문의 카톡메세지로 하차의사를 밝히고 이 연극의 막을 스스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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