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망령 쫓다가 제풀에 쓰러진 '7년의 밤'

영화 '7년의 밤'

by 무덤덤

2011년 책 '7년의 밤'이 나왔을 때 모르긴 몰라도 영화업계가 조금은 술렁였을 것 같다.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유독 많은 영상·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드는 강렬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의 기억도 지금까지 꽤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무엇보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영상이 있다. 물론 책은 영상을 제공하지 않지만 당시 이 책을 읽었던 필자의 머릿속에서는 분명히 영상이 떠올랐다. 그 머릿속 영상이란 바로 소설 속 주요 공간인 세령댐 호수에 수몰된 옛 마을을 잠수해 들어가 살펴보는 장면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안승환은 뛰어난 잠수 실력으로 호수 밑 마을 위를 천천히 유영하며 관찰한다. 마치 고대 신화 속 아틀란티스를 발견한 탐험가처럼.



크랭크인 한 지 3년여만에 드디어 공개된 영화 '7년의 밤'은 우연찮게도 바로 이 세령호 밑 잠수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실제 스크린에서 재생되는 영상은 필자가 책을 읽었을 당시 머릿속에 떠올랐던 영상과 대체로 일치했다. 영화의 인트로로서 기능적으로 소비된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원작을 아끼던 독자로서는 영화의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이후 거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원작의 '성실한 스릴러'를 구현하기 위해 영화도 못지 않게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진행된다. 특히 원작에서 등장인물만큼 중요하게 다뤄지는 공간 '세령마을'은 거의 그대로 재현됐다고 봐도 될 만큼 원작에 충실했다. 무엇보다 수몰 마을을 품고 있는 세령호에 늘 피어있는 물안개와 최현수(류승룡)가 죄의식에 사로잡혀 헤매곤 하는 몽환의 수수밭은 이야기의 긴장감을 내내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그래도 역시 이야기의 긴장을 가장 팽팽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요인은 오영제(장동건)와 최현수, 두 남자다. 오영제는 등장부터 퇴장까지 영화 속의 질기고 지독한 갈등의 원흉 그 자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영제식 사랑과 복수. 그 끔찍하고 끈질긴 서사가 집요하게 이어진다.



아버지에 대한 최현수의 죄책감 역시 지속적으로 최현수를 괴롭히고 파괴한다. 결국 최현수는 아들 최서원(고경표) 하나만은 무조건 지키기 위해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을 일으킨다. 두 남자, 혹은 두 아버지의 비틀린 애정과 불안한 영혼은 세령마을을 그야말로 집어삼켰다. 특정한 공간과 그 안에 살던 적지 않은 사람들을 파괴한 무시무시한 집착. 그렇게 오세령(이레)은 죽고 유령이 되어 떠돈다.


영화는 원작에서 그 어떤 공포물보다 더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 이 끔찍한 스릴러를 어떻게든 충실하게 재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추창민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은 원작이었다. 그간 개봉을 계속 미뤄온 것도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원작의 명성에 짓눌린 탓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 '7년의 밤'은 내내 원작의 치밀하고 방대하며 지독한 이야기의 뒤꽁무니를 좇다가 지쳐 제 풀에 쓰러져 막을 내린다. 두 남자가 괴물이 되가는 '현상'은 제법 긴장감 있게 다루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관객을 설득하지는 못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에 비해 2시간 가량의 영상으로 모든 이야기를 소화해야 하는 영화라는 장르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영화 '7년의 밤'은 두 남자의 피폐해지는 '상태'만를 집요하게 쫓는다.


오영제와 최현수의 파멸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쉬이 지친다. 원작의 미스터리한 스토리가 꽤 흥미로웠지만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는 꽤 덜어내고 두 주인공의 왜곡된 심리에 집중했다. 어쩔 수 없이 원작을 압축해야 하는 영화 감독 입장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이 인과에 대한 충분한 감흥 없이 두 남자의 망상을 무작정 쫓자니 시간이 흐를수록 기운이 빠진다.



'7년의 밤'은 오영제로 분한 장동건의 파격적인 변신을 비롯해 주요 배우들의 연기가 충분히 훌륭하고 영화에 감도는 음울한 분위기와 공간에 머물렀던 눅진한 기운이 생생했던 인상적인 작품이다. 영화 '7년의 밤'은 원작을 최선을 다해 구현했지만 그러나 원작의 거대한 아우라에 억눌려 기를 못 펴고 말았다. 활자의 힘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것을 소설 '7년의 밤'으로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2018년 4월 작성)


제목 : 7년의 밤 (2018년, 대한민국)

OTT :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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