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 못 죽이는 놈의 스트레스로 지옥까지 폭주한다

영화 '아수라'

by 무덤덤
"나는 인간들이 싫어요"


영화는 피로가 잔뜩 얹어진 한도경의 이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약 20년 전 '비트'의 이민은 "나에겐 꿈이 없었다"라고 맥 없이 이야기하며 영화를 시작했다. 19살의 이민은 20년이 지나 한도경이 된 것일까. 이민이나 한도경이나, 그가 사는 세상은 왜 이리 힘들기만 할까. 세상은 악귀 아수라가 판 치는 지옥과 다름이 아니니…



안남시 개발 사업에 인생을 건 박성배 시장의 악행에 행동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건 형사 한도경이다. 나름의 사정이 있어 이 '더러운 일'을 도맡고 있으나 일이 진행될수록 사람들이 자꾸 죽어나가고 일이 꼬이니, 한도경의 환멸은 날이 갈수록 더하다. 그렇지만 한도경은 멈추지 못한다.


멈추지 못하는 건 한도경뿐만이 아니다. 주요 등장인물 모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본인이 저지르는 일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멋대로 뻗쳐 나가는데도 중단이 없다. 영화 속 상황은 인물들의 멱살을 잡고 시뻘건 지옥으로 계속 끌고 간다. 동인(動因)은 각자의 어떤 '욕구'다.


영화 속 인물들의 '욕구'는 사실 그렇게 거창해 보이지 않는다. 안남 시장님 박성배는 도시를 뒤엎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조금 빨리 벌고 싶었고, 김차인 검사는 전라도에 지방대 출신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부장검사가 한번 되보고 싶었던 것이다. 젊은 문선모는 그저 지금보다 약간 더 폼 나게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고, 도창학 계장 역시 상사에게 능력 있는 직원이어야 했겠으니 그 끔찍한 폭력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한도경은 죽어가는 아내를 세상에 붙들어놓고 싶어서 악행에 기꺼이 뛰어들었다.


지금보다는 조금만 더 나은 상황에서 살고 싶었을 뿐인 이 사람들이 결국엔 피칠갑이 된 채 한데 뒤엉켜 죽음을 맞아야 했을 정도로 그렇게 큰 걸 바랐던 것일까. 문제는 욕구가 아니다. 그들의 진짜 잘못은 멈추지 못했다는 것에 있다. 멈추지 못한 건, 참지 못해서다.



악인들의 전쟁터로 홍보되고 있는 영화 '아수라'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누가 더 센지를 계속 겨룬다. '직책', '돈', '약점', '욕설', '폭력', 겨룰 때 쓰는 무기도 가지각색이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누가 더 위인지를 끊임없이 가리느라 만날 때마다 '으르렁', 짐승 소리가 사방에서 난무한다.


이러한 상황이니 누구든 '지는 놈'이 생긴다. '지는 놈'은 그 스트레스와 분노를 못 이겨 어리석은 행동을 불사한다. 참지 못한 어리석음은 한도경과 문선모의 기싸움을 보면 잘 드러난다. 박성배 밑에 들어가 한도경을 제치고 그의 행동대장으로 요즘 '똥폼' 좀 잡고 있는 문선모. 한도경이 형이랍시고 이죽거리니까 태사장을 충동적으로 죽이는 무리수를 던진다.


또 한도경 역시 김차인의 지령을 받고 박성배에게 충성을 다 하는 수하 은충호를 뒤따라 갔다가 조선족 무리들과 싸움이 붙어 그 분노를 못 이겨 악귀가 돼버린다. 여기서 조선족 무리들을 쫓는 살벌한 카체이싱 장면이 탄생했다. 이 사건으로 은충호는 문선모에게 죽임을 당하는 등 상황은 점점 더 꼬인다.


제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서로 얽히고 얽힌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점점 폭주한다. 폭주는 강도를 더해 절정에 다다르고 마침내 은충호의 장례식장에서 피의 향연이 펼쳐진다. 다른 놈보다 우위에 서고야 말겠다는 수컷의 서열 투쟁은 끔찍한 폭력을 불렀고, 파멸로 이끌었다.


이토록 어리석은 다툼을 그린 영화 '아수라'는, 관객의 '멘탈'을 피폐하게 할 정도로 잔혹한 폭력을 묘사해주고 있다. 그러나 김성수 감독은 배우들의 기가 막힌 연기, 특히 배우 정우성의 수려한 '피규어'를 능숙하게 다루며 비장미가 넘쳐 흐르는 매끈한 상업영화로 '아수라'를 만들어냈다.



한국형 느와르가 즐겨 묘사하는 '비장한 죽음'. 물론 비극적이긴 하나 슬프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어리석은 건 어리석은 거다. 그리고 그 비슷한 이야기는 한국영화에서 이미 너무 많이 보여줬다. 이제 수컷들의 불필요한 서열 싸움이 슬슬 지겨워진다. 아무리 정우성이라도 말이다.


"나에겐 꿈이 없었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리운 것들이 너무 많아. 로미야, 보고 싶어"


젊디 젊은 '비트'의 이민은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렇게도 비장했던 이 내레이션은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면 순수한 '동시'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더 지옥 같아져서 일까. 하지만 '비트'를 만들었던 김성수 감독이 오랜 세월을 벼르고 별러 마침내 내놓은 영화 '아수라'는, 20년 전의 세상과 구별되는 그 어떤 의미를 남기지 못한 채 완성됐다. 그리고 한도경은 마지막 유언 같은 내레이션을 남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알면서도 어쩔 수 없네요"


제목 : 아수라 (2016, 대한민국)

OTT : 넷플릭스, 티빙, 왓챠, 웨이브, 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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