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씨 표류기'
우주에서 떨어뜨린 깃털이 지구 땅 위 어딘가에 세워놓은 바늘에 꽂힐 확률. 이 계산도 안되는 엄청난 확률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기적처럼 맺어진다. 우리가 살면서 스치는 수많은 인연이 모두 그렇다. 그런데 하물며 무인도에 갇힌 남자와 자신의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 여자가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자신의 채무액을 확인하고는 비로소 용기를 내어 한강에 몸을 던졌건만 ‘남자 김씨(정재영)’는 그만 더럽기 짝이 없는 어느 강변에 걸쳐졌다.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자신을 탓하며 한강 한복판의 무인도에서 탈출을 시도하나 여의치가 않다. 이렇게 ‘남자 김씨’의 약 6개월 동안 한강 밤섬 표류기가 처절하게 펼쳐진다.
똑 같은 시간에 깨어 똑 같은 메뉴로 끼니를 때우고 하루 만보 걷기로 체력관리도 나름 철저하게 하는 ‘여자 김씨(정려원)’는 3년 동안 방 밖으로 나오지 않은 히키코모리다. 달 사진 찍기, 미니홈피 관리하기가 그녀의 유일한 취미생활. 성능 좋은 렌즈를 통해 창 밖 세상을 구경하던 어느 날, ‘여자 김씨’의 눈에 ‘남자 김씨’, 아니 외계생물체의 모습이 들어온다.
이렇게 해서 ‘여자 김씨’는 ‘남자 김씨’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여자 김씨’가 첫 인사를 담은 와인병을 힘껏 던짐으로써 ‘남자 김씨’를 향해 깃털 하나를 떨어뜨렸다. 각 김씨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다가 인연의 끈 하나를 부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인연의 끈은 고작 ‘Hello’니, ‘How are you’니 같은 딱딱한 한 마디 인사말(그나마 한글이 아니고 영어로 쓴다)로 위태롭게 유지된다. 멀쩡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그들은 이미 절망에 익숙해졌고 혼자에 익숙해졌다. 망설이는 두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건 다름 아닌 ‘자장면’이다.
‘처음 맡아보는 희망의 냄새’, 자장면은 표류 중인 이 두 김씨에게 등대가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표류기가 종지부를 찍는 지점은 이들이 통성명을 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그 많은 망설임과 두려움, 절망을 이기고 죽는 것보다 더한 용기를 가진 후에야 이뤄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기적 같은 순간이라고 영화는 찬미한다. (2009년 5월 작성)
제목 : 김씨 표류기 (2009,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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