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리스크 공시·헤지 인센티브·분배 완충의 설계
요즘 원·달러가 1,380~1,400원 언저리에서 숨을 고른다. 지난 일주일만 놓고 봐도 고점 1,392.9원, 저점 1,375.8원 사이에서 움직였다. 급등도 급락도 아닌, 고지에서의 호흡이다. 계엄 직후의 1,400원대가 사건이 만든 파고였다면, 지금의 1,400원대는 구조가 선택한 고도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50%로 동결한 채 완화적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고, 이는 원화 강세를 서두르지 않는 신호다. 반면 미국은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며 ‘초강달러’의 김이 조금 빠졌다. 금은 사상 고점권에서 버티며 안전자산 선호를 말한다. 8월 중순 현물 가격은 온스당 3,300달러대다. 숫자들을 이어보면 지금의 환율은 놀랄 일도, 방심할 일도 아니다.
실물의 체온도 살펴본다. 7월 무역수지는 66억 달러 흑자다. 반도체·자동차가 전체 수출을 받친 덕분이다. 다만 8월 초(1~10일) 수출은 기저효과와 조업일 영향, 통관 타이밍 탓에 일시 꺾였다. 이런 들숨날숨이 반복되는 와중에도 큰 흐름은 흑자 기조다. 7월 수출 증가율은 5.9%로 7개월래 가장 빨랐는데, 미국발 관세 인상 시한을 앞둔 선적 당김 효과가 겹쳤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구조와 이벤트가 한 화면에 포개지는 순간이다.
달러의 변동이 경제를 흔드는 사례는 어렵지 않다. 경제의 궤적은 금융시장의 변화와 촘촘히 맞물린다. 가장 분명한 교과서는 대공황이다. 은행이 멈추면 신용이 마르고, 신용이 마르면 교역이 식고, 교역이 식으면 장바구니가 가벼워진다. 거리 모퉁이에 길게 늘어선 ‘빵 줄’ 사진은 그 연쇄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한 장의 기록이 수치들 사이의 인과를 묶는다. 환율은 표정이고, 표정 뒤에는 사정이 있다.
지금의 세계 무역 질서도 그 사정을 넓힌다.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50%로 상향된 데다, 소액 직구 면세(디 미니미스) 유예 폐지 같은 조치가 공급망 비용의 마찰을 키운다. 비용은 가격으로, 가격은 심리로 번진다. 그 충격은 곧 원자재·중간재를 달러로 사오는 한국의 체질에 닿는다.그러니 환율을 단독 변수로 다루기보다, 관세·물류·결제·금융비용이 얽힌 ‘총비용 환율’을 봐야 한다.
처방은 두 축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첫째, 시장이 스스로 길을 찾게 설계한다. 외환시장 미세조정의 원칙과 개입 범위를 더 투명하게 공개해 정보 비대칭을 줄인다. 기업의 환리스크 공시를 표준화하고 적정 헤지에 세제·수수료 인센티브를 붙인다. 수출 결제 통화와 에너지·원자재 조달선을 다변화해 단일 리스크를 낮춘다. 관세·공급망 재편으로 비용이 오를 때는 가격을 눌러 왜곡하기보다, 원가 구조와 전가 경로를 공개해 경쟁이 작동하도록 만든다. 가격 신호를 살리면 균형은 따라온다.
1933둘째, 충격의 분배를 관리한다. 에너지세·부가세의 탄력 운용으로 급등 구간의 체감물가를 완충한다. 취약가구 바우처와 영세사업장 한시 비용 완화로 파고가 임금·고용·판매가로 직행하는 속도를 늦춘다. 금융 쪽에서는 유동성 창구와 회사채·기업어음 백스톱을 상시화하고, 가계부채의 질 관리를 강화해 신용의 두께를 지킨다. 금값이 고점권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불안의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현금과 금으로 시간을 산다. 정책은 그 본성을 꾸짖지 않고 질서를 부여한다.
여기에 하나를 더 얹는다. ‘총비용 환율’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발 관세 확대는 단순한 수출 차질이 아니라 납기·보험·재고·환헤지 비용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7월 수출 호조 속에 선적 당김이 관측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 분기에는 반작용이 올 수 있다. 관세 수입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내러티브가 바뀌는 사이, 기업은 투자 결정을 늦추고, 소비자는 지갑을 조심스레 닫는다. 숫자 하나가 바뀌면 문장 전체가 달라진다.
결론은 단순하다. 지금의 1,400원대는 공포가 반사적으로 밀어 올린 숫자가 아니라, 금리·무역·공급망 비용이 만든 구조적 표정이다. 공포의 파고는 급히 올라 급히 내려오지만, 구조의 고지는 오래 머문다. 그러니 처방도 달라야 한다. 시장엔 투명한 제도, 생활엔 공정한 완충이 필요하다. 숫자는 안도와 경고를 함께 말한다.
지금은 노란불이다. 빨간불로 굳힐지, 파란불로 넘길지는 우리의 태도다.
원칙을 지키면 우리는 건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