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와 웃음의 이면에 숨겨진 진짜 마음
단단한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늘 비슷한 생각에 잠긴다.
저 단단함은 얼마나 많은 아픔을 통과한 끝에 세워진 것일까.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누구보다 단단해 보이는 사람은, 누구보다 깊이 부서져 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단단하다는 건 아프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맞고 갈라지고, 다시 이어 붙은 흔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흉터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질겨진 마음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래서 착각한다. 강해 보이니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그 사람은, 사실 누구보다 많은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른 내면의 진실을 그리는 화가는 Zeng Fanzhi 과 John Zurier가 대표적이다.
Zeng Fanzhi의 Mask Series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우리를 찌른다. 가면 같은 웃음을 쓴 얼굴들. 너무 괴롭고 힘든데 웃고 있다. 웃음은 보호색이고, 미소는 방패다. 표면은 웃고 있지만 내면은 피투성이인 현대인의 초상이다.
겉으로는 사회적 역할과 기대를 감당하느라 익숙한 표정을 짓지만, 속은 무너져 내리고 있는 얼굴들. Zeng Fanzhi의 가면들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John Zurier의 그림은 단단하면서도 유연하다. 강하고 짙은 색이 화면을 지배하지만, 흰색과 연한 색이 결코 잃지 않는 여백을 남겨둔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묘하게 긴장하면서도 풀어지는 이중의 감각을 선사한다. 견고한 벽 같지만 동시에 부드러운 바람이 스며드는 창문이기도 하다.
Zurier의 그림이 ‘단단해지는 과정의 흔적’을 말한다면, Zeng의 그림은 ‘버티기 위한 위장’을 고발한다. 두 세계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결국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얼마나 단단해졌고, 또 얼마나 가면을 쓰고 있는가.
단단해지는 건 상처의 증거이고, 웃는 얼굴은 살아내기 위한 마지막 방어다. 그렇게 우리는 두드려지고, 갈라지고, 다시 봉합되며 매일의 가면을 쓴다. 누군가는 단단해 보이고, 누군가는 웃고 있지만, 그 뒤에는 누구도 쉽게 말하지 못한 내면의 고통이 있다.그래서 중요한 건 착각하지 않는 일이다.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 웃는 얼굴을 한 사람에게, “괜찮아 보인다”는 말 대신 “힘들지 않냐”는 질문을 건네는 것. 그 한마디가 단단한 벽을 여는 문이 되고, 웃는 가면을 벗기는 손길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진짜 얼굴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