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구를 따라하는 것이 나쁜걸까?

아비뇽의 처녀들과 알제의 여인들에게 보여지는 평범한 그림자

by Purity and humility

주말 운동을 마치고 잠깐 들른 책방에서 '알제의 여인들'이라는 그림을 보게 되었다.


이 그림은 많은 작가들이 모방해 왔기 때문에 미디어에서도 자주 소개되는 작품이다. 내가 본 책은 미술작품의 기술적인 면을 다룬 책이었지만, 나는 그보다 두 그림을 보며 내 현재 상황과 겹쳐지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이 그림은 많은 작가들이 모방해 왔기 때문에 미디어에서도 자주 소개되는 작품이다. 내가 본 책은 미술작품의 기술적인 면을 다룬 책이었지만, 나는 그보다 두 그림을 보며 내 현재 상황과 겹쳐지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미술사에서 높은 가격을 기록한 '알제의 여인들'은 사실 19세기 낭만주의 화가인 외젠 들라크루아의 같은 이름의 작품을 모방한 것이다.


또한 피카소의 유명한 '아비뇽의 처녀들'도 프랑스 화가 폴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을 모방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들 작품을 보면, 같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같은 주제와 대상을 다루었지만, 각자의 삶의 경험과 철학,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의 차이가 감정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리라


내가 처음 '암'이라는 병을 진단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쳤을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별일 아니야. 아직 중증은 아니니 괜찮아.'

끊임없이 생각했다.


' 지금처럼 일상을 보내며 치료를 받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돼.'

마음을 다독여 보았지만,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도대체 왜?'라는 의문은 계속해서 떠올랐다.


사실 거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 남들과 같은 집, 같은 차, 같은 직장을 갖고 싶었다. '남들처럼'이라는 모방을 목표로 삼았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꼈지만, 그마저도 쉽게 허락되지 않아 더 아등바등 살았던 것 같다.


남들처럼 사는 삶.

남의 흉내를 내더라도 그냥 남들과 같아지는 꿈.

그냥 남의 삶을 모방하더라도 난 그냥 그들과 같은 선에서 같이 살아 숨 쉬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차피 아등바등 살 바에는 조금 더 높은 목표를 가졌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모방하는 삶도 나름대로 어렵고 힘든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 결코 남들과 같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억울하고 우울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우울감의 극복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난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고 벗어나고자 발버둥 처도 결국 현실은 다시 되돌아온다.


그냥 이렇게 살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라는 작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이런 작은 몸부림에 대한 기록뿐일 것이다.


나의 작은 삶의 흔적이 비록 누군가의 모방이라도 보는 이에게 다른 느낌과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알고 있는 정보가 다르면 다른 선택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