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깡과 표절논문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전공이 수학이었던 탓에 비교적 동양인이 많은 학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했다.
실력의 부족함으로 중퇴를 하게 되면서 유일하게 나의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당시 여러 이야기를 했던 일본 친구였다. 이유도 단순히 일본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이유였고 서로 향수병에 우울증에 비참한 생활을 하던 터라 더없이 의지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하면 제법 공부를 잘했고 나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점수는 늘 안 좋았다)
한국의 김치를 이야기하고 우매보시를 이야기하고 낫또를 이야기하면서 중국인 교수의 험담과 주말 보충수업을 하는 조교 누나의 지적인 우월함과 풍만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그렇게 가까워졌다.
그런데 그렇게 잘 어울리는 사이였음에도 이견이 있었던 것은 새우깡의 원조가 한국이냐 일본이냐였다.
어릴 적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에 있어서의 오리지널리티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나 보다. 양 국의 제품 생산에 대한 오리지널리티를 논하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하게 된 이 두 과자는 외모도 심지어 포장지도 똑같다. (유사품으로는 한국의 빼빼로와 일본의 폿키가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카르비에서 나온 캅빠 에비센이 우리나라의 새우깡 보다 먼저였다.
캅빠 에비센은 1964년, 새우깡은 1971년에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새우깡이나 빼빼로가 표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을 표절이라 하든 전파라 하든 하나의 문화 권력이 발생하면 그것이 생명력을 가지고 퍼져나간다는 사실은 당연한 일이다. 세계문화를 주도하는 국가가 아니라면 후발 국가는 결국 인용이든 표절이든 베껴 쓰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특히 의(衣) 식(食) 주(酒!!!! 住 말고 酒!!)가 (歌) 무 (舞)를 근간으로 퍼져나가는 문화활동은 더욱 그러하리라.
몇 년 전 유희열 씨의 표절 건으로 우리나라는 한바탕 엄청난 폭풍이 일었다. 결국 10년을 넘게 한 자신의 방송에서 하차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몇 소절 이상 같으면 표절이니 하는 아주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암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에게 이게 표절이니 묻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투병 중이라 아무것도 신경 쓰기 싫은 와중에 누가 내 음악 표절했으니 고소라도 하라는 건지 의도는 불문명하나 다행히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은 표절은 아니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작권 대출과 투자를 업으로 하고 있는 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저작권 표절과 도용의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개념은 극히 자본주의 적인 개념으로 이를 통해 어떤 이득을 얻게 되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18세기 이후의 개념으로 베른협약이 체결된 것도 1886년의 일이다.
한편 국가 간의 최초를 따지는 문제에 있어서는 단순히 이익 문제를 떠나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있는가 하는 다분히 민족적인 측면에서의 싸움이다. 하지만 모든 화성학이 바로크 시대의 바흐가 추구한 화성학의 범위를 넘어서기 어려운 것처럼 국가 간의 우위를 논하는 것보다는 이를 잘 이해하고 현실에 응용하여 많은 이득을 얻는 것이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사건이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학술과 학문은 그 뿌리가 깊고 정통성을 지니며 새로운 탐구와 발견을 위한 엄격한 기준이 있다.
에술가의 자율의지와 자본주의의 돈, 이익과는 별개로 명확한 기준과 원칙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숭고한 일이며, 표절과 인용, 참고 등의 단어에 대하여 세계적으로 동일한 수준의 기준과 원칙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트릭이 있을 경우 우리는 이를 비난하게 된다.
최근 새로운 학교 총장이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표절 논문에 대한 이슈는 식지 않고 있다.
인용(이라고 쓰고 표절이라고 읽는) 했다는 단어로 학위와 논문을 덮어버린 김건희 여사와 이를 옹호한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진의 일은 단순히 음악가의 표절과 동일시되는 사안이 아닌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