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6년 만에 본사에 출근하고 한 달을 보냈다. 체코 출장 간 사이에 사무실이 옆 건물로 이사했다. 임시로 마련했던 자리가 제자리를 찾았고 사무실 분위기에도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적응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낯선 게 하나둘이 아니다. 얼마가 되었던, 익숙해져야 할 일이다.
그동안 외출의 출발점은 지하철 3호선 홍제역이었다. 홍제역에는 노인 행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홍제역 중심으로 병원이 족히 백 곳은 될 듯하고, 병원마다 노인 환자들로 가득하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에는 늘 노인들이 늘어서 있다. 얼마 전에 점검 때문인지 수리 때문인지 며칠 엘리베이터가 다니지 않았는데, 그때 구청 담당자들 귀깨나 간지러웠을 것이다. 길가에 슈퍼나 어물전도 여러 곳 있고, 찬거리나 과일을 파는 좌판도 발에 차일 만큼 많고, 당연히 그곳을 이용하는 이도 많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이젠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으로 바뀌었다. 지하철역만 바뀐 게 아니다. 이곳은 내가 이방인이라고 느낄 만큼 젊은이들 천지이다. 행인 숫자로도 홍제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거리 모습도 다르고, 다루는 상품도 다르고, 음식점 메뉴도 천지 차이다. 무엇보다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출근 시간에는 뛰다시피 해야 다른 행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다닌 지 이제 한 달 남짓한데 그렇게 휩쓸리다 보니 벌써 내 소속이 홍제역에서 홍대입구역으로 바뀐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본사가 있는 구로 디지털단지도 홍대입구역의 연장쯤 된다. 하루 종일 주변에서 내 나이대의 사람을 보기 어렵다. 육십 대도 드물어 보인다. 요즘 젊은이들이 그런 걸 아랑곳이나 하겠는가마는, 가끔 혼자서 뻘쭘해하기도 한다.
이곳은 직장인을 상대로 하는 구내식당이 여러 곳 있다. 식권을 사고 각자가 식판에 덜어 먹는. 여러모로 젊은이들 취향에 맞겠다. 누구 눈치 볼 일도 없고, 밥값 낼 때 고민할 필요도 없고. 나 역시 그렇기는 하지만 아직 매사에 서툴다. 식권 사느라 허겁지겁, 줄 서서 음식 담는 것도. 식사를 무척 빨리한다고 생각했는데, 음식 맛을 음미하기는커녕 그냥 입안에 밀어 넣기나 해야 동료들을 기다리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출퇴근 풍경이 상당히 달라졌다. 일이십 분 늦는 건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5분 10분 기다리는 게 일상이니 그럴 수 있기는 한데, 지각을 상상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살았던 사람 눈엔 그 모습이 아직은 어색하다. 어제는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해서 20분쯤 늦게 퇴근했다. 내가 마지막 퇴근자가 아니었을까. 아직도 당연한 일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 보니 적응이 좀 더 필요하겠다.
생활방식이야 적응이 더 필요하겠지만 기술적인 것은 뭐 달라졌을까 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있나. 당장 업데이트해야 할 게 하나 둘이 아니다. 빡세기는 한데 그만큼 기대도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