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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Review

위험한 숫자들

by 박인식

사너 블라우

노태복 옮김

길벗

2022년 3월 31일


평생 숫자로 대표되는 양(量, Quantity)과 씨름했다. 지반조사 결과에서 설계자가 필요한 것은 지반정수(地盤定數, Geotechnical Property)이지 지반조사 결과에 관한 서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원전 조사계획을 세우면서 경험이 없는 외국 기술자들에게 내내 설명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성적(定性的, Qualitative)인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누구나 동일하게 상태를 표시할 수 있는 정량적(定量的, Quantitative)인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누누이 설명했다.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일해오다 보니 사고방식도 그렇고, 글도 그런 모양이 되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지만, 그래서 내 글은 다른 이에 비해 형용사와 부사가 적은 편이다. 숫자를 다룬 책을 즐겨 읽는 것도 숫자에 예민한 일을 해온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숫자를 다룬 책은 숫자의 유익보다는 숫자의 허상이나 숫자의 부작용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대부분이다. (찾아보니 숫자의 유익에 관한 책은 읽은 기록이 없다) 이번에 읽은 책도 <위험한 숫자들>이라는 제목부터 그렇다.


저자는 숫자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숫자의 한계가 어디 한두 개일까마는 그중 첫 번째로 꼽을 만한 것이 바로 “숫자가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숫자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숫자가 전체일 것이라는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참으로 옳다.


나는 지반조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지금까지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어떤 지역이 계획한 시설의 입지로서 적정한지 평가하는 일도 하지만, 그보다는 시설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지반정수를 결정하는 일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모든 조사가 그렇듯 부분을 확인해서 전체를 추정하는 것이니, 결국 조사의 성패는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느냐에 달렸다. 그런 생각이 조사계획을 세울 때까지는 잘 지켜지는데, 막상 일이 시작되어 조사 결과에 매달리다 보면 그런 한계는 까마득하게 잊고 그것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되고 땅이 파헤쳐지면 예측이 어긋난 게 드러나고, 그럴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염려는 마시라. 그런 한계를 고려해 설계에 늘 안전율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토목 구조물은 대체로 안전율을 3으로 적용한다. 땅이 30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면 그 위에 올리는 구조물의 최대치는 10을 넘지 않는다는 말이다.)


셜록 홈스가 등장하는 소설에 ‘짖지 않은 개’가 종종 등장한다. 범죄가 일어났을 때 짖어야 할 개가 짖지 않았다면 범인이 면식범일 것이라는. 하지만 ‘사납게 짖은 개’를 의식하기는 쉬워도 ‘짖지 않은 개’를 의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숫자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숨어 있는 이면이 있다는 점, 그것이 오히려 더 결정적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숫자에 집착하다가 맞는 한계 중 또 하나는 “숫자에 ‘가치판단’이 들어있다는 걸 놓친다”는 점이다. 예컨대 “흑인의 지능이 백인보다 떨어진다”는 명제의 경우 (물론 이 명제는 틀렸다) 흑인과 백인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도 카멜라 해리스가 흑인인가 아닌가를 놓고 시비가 걸리지 않았나. 결국 정량화하려면 먼저 명확한 정의(定意, Definition)가 있어야 하지만, 흑인과 백인을 가르는 것처럼 정의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저자는 이런 지적에 이어 “경제처럼 복잡한 무언가를 하나의 숫자로 표현하려면 반드시 무언가를 배제해야 한다. 예컨대 GDP는 돈으로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걸 배제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숫자는 모든 것을 셀 수 없고, 숫자로 알려주지 못하는 사실도 아주 많고, 숫자는 진리가 아니며, 단지 진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많은 걸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것이 저자 주장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GDP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더. 지금은 국가 경제력의 척도로 자리 잡은 GDP는 당초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전쟁이 계속되어 전쟁 지출로 국민소득이 감소하는 걸 곤란하게 여긴 미국 정부가 1942년 국방비 지출을 포함할 수 있는 GDP를 개발했다. 의미나 목적이나 결과와 관계없이 무기를 포함한 모든 생산을 다 합산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깨끗한 환경에서 사는 사회가 오염된 환경을 정화해 사는 사회보다 지표가 떨어지는 결과가 생긴다.


GDP만큼이나 잘못 사용되는 척도가 IQ이다. 정작 이를 만들어낸 알프레드 비네는 “지능은 그런 척도로 측정되지 않는데, 지적인 자질이라는 게 서로 겹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음에도 마치 IQ가 지능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지능이 타고났다고 생각하지만, 저자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생활 여건에 따라 다르고 교육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기아에 허덕이던 인도 농부의 경우, 추수 후에 측정한 IQ가 추수 전에 비해서 13점이나 올랐다. 교육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측정 도구가 잘못되면 의도가 빗나가거나 오히려 악화하는 예도 적지 않다.


“지능검사와 마찬가지로 업무를 숫자로 평가하는 일은 그 자체로 잘못된 일은 아니다. 숫자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과 질이 혼동될 때가 문제다. 중요한 활동은 모두 무시되고 근시안적인 수치에만 초점이 맞춰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한다. 네덜란드 경찰에서 각자 발부한 벌금 액수로 업무 평가를 한 일이 있다. 그러자 전조등을 켜지 않고 자전거를 타거나 안전띠 미착용 같은 사소한 범법 행위 적발은 늘어났지만, 그것이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측정치가 목표가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좋은 측정치가 아니다. 그뿐 아니라 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숫자는 세상의 모습을 만드는 원인이자 동시에 결과이기도 하다, 숫자가 현실의 수동적 기록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숫자야말로 현실을 창조한다. 신용점수도 그렇다. 특정한 상황에 있는 사람일수록 대출받기가 어려운데, 그러면 더 빠르게 가난에 내몰리게 되어 대출받기가 더 어려워지고, 그 결과 가난이 가속화 한다. 이와 같은 알고리즘은 자기가 내놓은 예측을 자기가 실현하는 자기충족적 예언자가 되어버린다. 진실을 파악해야 하는 수가 진실을 바꾸어버리는 셈이다.”


숫자에 집착할 때 일어나는 오류 중 하나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요인이 일정한 관계를 갖고 변하는 것을 상관관계(相關關係, Correlation)라고 하고, 한 요인이 다른 요인이 변하는 원인이 된 것을 인과관계(因果關係, Causality)라고 한다.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가 아닌 경우도 허다하고, 인과관계에서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예컨대 “예일대학교 졸업생들이 대다수보다 부자라고 하더라도 그게 그가 예일대학교를 다녀서인가, 예일대학교에 부유한 가정 출신 학생이 많기 때문인가?”


이는 통계 해석에서 다룰 내용이기는 하지만 “오래 살펴보면 어떤 상관관계라도 나오게 마련”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폭소가 터져서 인용했다. 요즘 생각이 다른 상대를 원수로 여겨 헐뜯고 공격하는 이들이 보이는 행태가 퍼뜩 떠올라서 말이다.


언젠가부터 한발 물러서고 말 수를 줄이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 몇 마디 말로도 얼마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 있는지라 무엇보다 단정적인 언사를 쓰지 않으려고 각별히 유의한다. 그런 내게 “확신이 강한 사람은 호기심이 부족하다”는 저자의 말이 크게 위로가 되었다. 확신이 강하면 단정적인 언사를 쓰고, 그러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마련이 아닌가. 다행히 호기심은 누구에게 빠지지 않을 만큼 많은 편이니 그러면 확신이 강한 편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아무래도 호기심도 많고 확신도 강한 것 같은데 말이다.


봄이 성큼 다가오나 했는데 갑자기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엊그제 담벼락에 늘어진 개나리가 꽃을 피우기 시작해 곧 만발하겠거니 했더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개나리가 딱 거기서 얼어붙었다. 거실 창밖으로 짙어지던 연두색이 오늘은 환한 햇빛과 주먹만 한 눈송이와 어우러졌다. 그래도 봄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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