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 아이의 아비가 된 자식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입니다. 자식이 학교에서 잠시 어려움을 겪었고 그것 때문에 담임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식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요. 깨닫기는 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더군요. 궁리 끝에 자식에게 남겨줄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써놓은 글을 이해하려면 스물은 되어야겠다 싶어 스무 살 생일날 책으로 엮어 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교회에서 청년들과 지내면서 자식에게 주려고 써놓았던 글을 청년들과 나누게 되었습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여의도 서신’이라는 이름으로 15년 넘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세상을 먼저 살아온 선배로서 의무감 같은 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작년 초, 아내가 “나이 먹을수록 말 수를 줄이라고 했다”면서 이 정도에서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권하더군요. 1415호를 마지막으로 접었습니다. 섭섭하기는 했는데 돌아보니 그게 옳았다 싶습니다.
마르첼로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진이며 글이 흘려보내기 너무 아깝다 싶었는데 얼마 전 책으로 엮어 하나를 보냈더군요. 책을 받고 보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 가져왔던, 하지만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해진 오랜 꿈이 생각났습니다. 지금이라도 책으로 묶어보면 어떨까 싶었지요. 을미년에 태어나 다시 을미년을 맞으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자식에게 주자고 쓴 글이니 자식을 주는 게 옳겠다, 뭐 이런 이유도 있었고 마르첼로의 권유도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쓴 글은 아닙니다. 그저 살아오면서 순간순간 깨달은 걸 적어놓은 것이지요. 실패에서 깨달은 게 대부분이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삶의 흔적이라고나 할까요? 서른아홉이던 1993년부터 올해까지 22년간의 기록입니다. 써놓은 글을 살피다 보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하는 방향이나 폭이 모두 달라지더군요. 그래서 굳이 글을 쓴 날짜를 적어놓았습니다.
저는 신일학교를 다녔습니다. 신일중고등학교를 모두 졸업한 첫 졸업생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좋은 선생님들의 가르침으로 지금까지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올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에 신일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릅니다. 신일학교의 교훈은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입니다. 초대 교장이셨던 장윤철 선생님께서 교훈을 설명하는 글에서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인간의 올바른 자세는 세 가지 관계에 있어서 믿음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신앙), 인간에 대한 믿음(신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신념)이다.”
써놓은 글을 어떻게 펼쳐나갈까 생각하다가 문득 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관점에서 보니 결국은 제 글도 세 가지 관계, 세 가지 믿음에 대한 이야기더군요. 제 자부심이 신일학교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을미년 생일날
박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