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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Review

이진우의 다시 만난 경제

by 박인식

이진우

페이지2북스

2025년 1월 31일


평생 월급쟁이로 살았다. 결혼하고 분가하면서 얻어 나온 작은 전셋집 하나에 시원치 않은 월급으로 출발한 생활이라 투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동생들하고 함께 살아야 했으니 월급으로 한달 한달 살아가기 바빴다. 하지만 같은 형편에서 출발한 동료들은 열세 평 아파트에서 출발해 조금씩 평수를 늘려갔고 어느 날 서른두 평형의 번듯한 아파트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회사에서 분양하면서 내부용으로 몇 개 남겨놓은 목동 아파트가 내게까지 차례가 왔다. 문제는 보름 안에 거금을 마련해야 했던 것. 방법이 있을 수 없는 나로서는 그 좋은 기회를 뻔히 보면서 흘려보내야 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되팔기만 해도 일 년 월급을 훌쩍 넘겨 벌 수 있는 일이었는데, 당시로서는 빚을 내서 뭔가를 해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워낙 빈손으로 출발하신 부모님이 평생 빚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사시는 것을 지켜본 결과였을 것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것이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러다 보니 빚을 얻는 게 두렵고 더구나 빚내어 투자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 정주영 회장이 청년과 대담하는 방송에서 부채가 왜 자본인 줄 아느냐고 묻는 걸 보았다. 부채는 신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채에 대해 잠깐 달리 생각할 기회였는데, 그러고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빚 없이 살게 된 건 결혼하고도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을 것이다.


우리에게 빚은 결코 좋은 것으로 포장할 수 없는 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빚’이라는 부채를 아예 다른 시각으로 볼 것을 권한다.


“부채는 경제시스템의 엔진이다. 빚이 없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고, 따라서 나라가 발전하지 않는다. 부채가 없다면 아무도 예금할 이유가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돈은 누군가의 부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량한 경제 주체가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면 그 부채는 아무리 많아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부채가 유용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크니 권장할 만하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부채의 효용을 강조한다.


“부채는 결국 시간을 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먼 미래에 해야 할 투자를 빚을 이용해서 오늘부터 하는 것이다. 빚은 기본적으로 나쁜 것이지만 신중하게 쓰면 괜찮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빚은 기본적으로 좋은 것이거나 필수적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빚 없이 사는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다. 언젠가 빚을 다 갚은 날 어머니와 함께 만세를 불렀던 기억도 새롭다. 설령 내가 부채를 빚으로만 여겨 형편이 더 나아질 수 있었던 기회를 차버렸다 해도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다. 경제 기자인 저자의 눈에는 딱하기 짝이 없는 부류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문득 저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졌다.


저자는 십수 년 동안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해오면서 경제 전반에 대해 넓고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 현안을 청취자들에게 쉬운 말로 적절한 비유를 들어가며 전달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부동산에 관해서는 탁월한 식견을 보인다. 주식투자도 역시 그의 주 종목인데, 그는 부동산과 주식투자의 같으면서 다른 점을 이렇게 설명하곤 한다.


“자산의 적정 가격을 알기 위해 다양하게 분석하지만, 자산 가격은 오로지 투자자의 마음에 달렸다. 금값이 왜 오를까? 그것은 사람들이 금값이 오를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느낌 때문에 금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 때문에 금값이 오르는 것이다. 이렇게 자산의 적정 가격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과 심리는 매일, 매시간 바뀐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마음이 자산 가격에 반영되는 과정이다. 주식은 매도 버튼만 누르면 즉시 팔 수도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주식 가격은 사람들의 심리가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하지만 아파트는 팔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금방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을 파는 데 3개월이 걸릴 수도 있고 1년 넘게 걸릴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 마음이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주식은 어느 주식을 사느냐보다는 언제 사느냐가 중요하고 아파트는 언제 사느냐보다는 어떤 아파트를 사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동안 방송을 들으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게 자산의 가치라는 것이 그 자산의 실질 가치가 아니라 가치가 오르거나 내릴 걸 기대하는 수요자의 심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나는 자산 투자에 뛰어들 여력도 없지만, 그보다는 평생 논리를 따지면 살아온 사람으로 자산 투자가 자산의 실질 가치가 아닌 수요자의 기대심리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도 자산 투자에 관심을 가질 생각이 없다. 더구나 심리라는 것이 정량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자산 투자의 본질이 저자가 설명한 대로라면 그건 투자라기보다는 투기로 여기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부동산과 관련해 저자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공급이 줄어들어 조만간 집값이 또 올라가겠구나” 집값이 오른다는 소식이 들리면 패닉에 빠질 게 아니라 “아파트 공급이 조만간 늘어나겠구나, 그러면 집값이 다시 안정되겠구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장의 움직임을 읽는 식견은 투자에 여력도 관심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 어느 직업도 시장의 움직임에서 분리될 수 없으니 말이다. 결국 이는 단순한 경제이론이 아니라 삶의 지혜이며, 경제 또한 삶의 지혜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방송에서 패널이 새로운 정책을 소개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만약 어떤 정책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왜 이제야 그 제도를 만들었으며, 그동안 수많은 선진국이 그런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는지 질문한다. 패널을 곤경에 몰아넣자는 게 아니라 그렇게 정책 하나로 해결하기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나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월세나 전세를 일정 비율 이하로만 올릴 수 있도록 강제하거나 세입자가 원하면 언제까지라도 거주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정책도 이미 여러 선진국에 시도했다가 실패한 정책이다. 세입자를 보호하면 보호할수록 그들에게 집을 빌려주는 집주인들은 불편해지고, 그 보호가 강력할수록 그 불편도 강력해진다. 집을 빌려주는 불편함이 커지면 집주인들은 집을 사서 임대하려는 결정을 주저하게 된다. 결국 장기적으로 아파트 공급 감소로 이루어진다.”


결국 빛을 가지려면 그림자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에 대한 그의 해법은 이렇다. 그는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어렵지만 공급을 꾸준히 늘리는 것밖에 없으며, 그 이외의 모든 정책은 장기적으로는 공급을 부족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방법(빛)이 부작용(그림자)을 수반한다고 강조한 그였으니 공급을 꾸준히 늘리는 것 또한 그림자가 있을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앞선 저서와는 달리 이번 책은 읽으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주식에 대해 저자는 “특정 종목이 아니라 주식 시장 전체를 보면 주가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 하지만 특정 종목의 주가는 아주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하락한다. 100년 가는 기업은 드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하루나 일주일, 한 달, 1년 주가는 예상하기 어려우므로 아예 예상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말고 그냥 긴 시간을 꾸준히 보유해야 한다. 주식은 오래 보유하는 것이지 오를 때 사고 내릴 때 파는 묘기를 부려서 돈을 불리는 게 아니라는 걸 빨리 깨달아야 한다. 장기 수익률은 오로지 긴 보유기간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특정 종목의 주가는 아주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하락한다면서 긴 보유기간에서만 장기 수익률이 나온다고 하면, 결국 망하지 않는 기업의 주식을 사서 장기 보유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건 어떻게 판별하는가? 하긴 그걸 판별하는 방법을 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마는.


그는 주가가 우상향하는 것이 “시중의 돈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 돈은 주식 시장에 유입되고, 기업들은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면서 이익이 늘어나고, 주가도 따라서 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시중의 유동성이 늘어나면 돈 가치가 떨어지면서 기업은 가격을 올리고, 이것이 이익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또다시 주가 상승을 견인한다는데, 돈 가치가 떨어진 상태에서 주가 상승으로 올리는 수익이 의미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긴 어차피 돈 가치는 떨어지게 마련이니 그렇게 해서 최대한 만회하는 게 정답이기는 하겠다.


나는 시의적절한 비유로 경제 현안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그에게 매료되어 경제방송을 듣게 됐고, 덕분에 경제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경제라는 창을 통해서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다. 이번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구절 역시 그렇다.


“경제 공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다. 삶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수록 그 세상과 마주하는 하루하루 일상이 더 재미있고 의미가 있다.”


또한 선택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선택이라는 행위 앞에서 갈등하고 힘들어하는 건 둘 중에 더 나은 걸 골라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이라는 게임의 본질은 더 좋은 걸 골라내는 게 아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환경에서 우리가 어떻게 늘 좋은 걸 골라낼 수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것이 선택되더라도 그건 행운의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하는 선택이라는 게임의 본질은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선택의 결과물이 나에게 최선의 결과가 되도록 사후에 노력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의 탁월한 해석을 곁들인 경제방송을 계속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 자신의 탁견에 힘입어 큰 투자수익을 거두고 어느 날 훌훌 방송을 떠나버릴까 살짝 걱정되기는 하다 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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