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ook Review

사우디아라비아의 형성과 발전

by 박인식

홍미정, 최영철 외

애틀러스

2013년 2월 25일


사우디에 부임하고 나서 놀란 것 중 하나가 한국 언론의 특파원이 사우디에 주재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우디 정부가 특파원 허가에 인색한 걸 이유로 꼽기는 한다. 학계도 다르지 않았다. 사우디 관련 학술서나 논문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귀국하고 나서 비로소 학술서나 논문이 발간된 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작심하고 찾아 나선 사람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라면 없는 것과 뭐 다를 게 있겠나.


학술서나 논문이 없었던 게 학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관심이 없으니 수요가 없고, 수요가 없으니 지원도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가운데에도 고군분투하며 연구의 끈을 놓지 않은 학자들이 있었다. 중동 각국의 헌법을 번역한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가 그렇고, 최근에 알게 된 건국대 중동연구소가 그렇다.


2009년 인문한국(HK) 유망연구소로 선정된 건국대 중동연구소는 2010년 <현대 중동 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필두로 2011년 쿠웨이트와 카타르, 2012년 오만, 2012년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연구서로 발간했다. <현대 중동 국가의 형성과 발전>은 작년 이맘때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해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일련의 연구 성과물인지는 미처 몰랐다. 알았다 해도 서울교육청 산하 23개 도서관 중 이를 비치하고 있는 곳은 <현대 중동 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비치한 4곳과 <오만의 형성과 발전>을 비치한 도봉도서관 한 곳뿐이었으니 구할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연구하고 있는 단국대 홍미정 교수의 저서를 읽어나가다가 이 책의 존재를 알았다. 하지만 어느 도서관도 비치하고 있지 않아서 우여곡절 끝에 공동 저자이신 최영철 교수께 부탁드려 한 부 얻었다. 이 책은 1부에서 사우디 건국사를, 2부에서는 정치구조를, 3부에서는 문화와 일상생활을, 4부에서는 경제와 비즈니스를 다루고 있다. 3부와 4부는 직접 경험하고 자료도 적지 않게 갖고 있어 1부와 2부를 집중해 읽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전제왕정국가이다. 사우디의 헌법에 준하는 통치기본법 제5조에는 이를 명시하고 있고, 통치권은 사우디 왕국을 세운 압둘아지즈 국왕과 그의 아들들에게 계승된다고 못 박고 있다. 물론 국왕이 있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들은 대개 군림하지만 통치하지는 않거나, 왕권을 행사한다 해도 형식으로나마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하지만 사우디는 왕권을 견제할 장치도 없고, 그런 절차도 없다. 예전에는 유력 왕자들 사이에 권력 분점이라도 되어 있어 중요한 국정을 국왕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2017년 리츠칼튼 호텔 사건 때 유력 왕자들이 모두 거세되어 이제는 국왕을 견제할 세력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사우디 왕국은 제1왕국(1744-1818), 제2왕국(1824-1891)을 거쳐 1932년에 건국된 제3왕국으로, 아직 건국 백 년이 되지 않았다. 사우디가 심혈을 기울여 1930년까지 비전 2030을 완성하고 그때를 전후에 세계의 굵직한 행사를 유치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건국 100주년이다.


제1왕국은 74년 동안 4대에 걸쳐 아들 승계로 왕권이 이어져 왔다. 제3왕국은 건국 시조인 압둘아지즈와 그 아들들이 세운 나라인 만큼 압둘아지즈 국왕 사후 지금 7대 살만 국왕까지 모두 형제상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2왕국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왕권 승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제2왕국은 67년에 걸쳐 13대 국왕까지 이어졌지만 정작 국왕은 8명뿐이다. 두 번 재위한 국왕이 세 명이고 압둘라 빈 파이살 국왕은 세 번 재위했다. 그것만으로도 왕권 승계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우디 역사에 관한 외국 원서를 몇 권 읽었으면서도 제2왕국의 왕권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홍미정 교수가 집필한 이 책 1부에서는 제2왕국에 관한 설명도 그렇고, 제1왕국으로부터 현 제3왕국의 왕실까지 이어지는 계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고 있다.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사우디 제3왕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아라비아반도의 중앙부는 나즈드, 히자즈, 핫사로 분할 통치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같은 모습이었다. 거기에 남쪽으로 예멘 국경 근처의 있던 아시르, 북쪽으로 현 요르단과 시리아 국경 근처에 있던 라시드는 가야와 발해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시대의 선후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중 나즈드를 이끌었던 사우드 왕가가 지역을 통일해 사우디아라비아가 되었다. 우리로 말하자면 신라쯤 되는 셈이다. 이 책이 사우디의 형성과 발전을 다루고 있으니 나즈드에 대한 서술이 대부분인 게 자연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기왕 사우디 형성 과정을 정리한 것이라면 주변국에 대한 비중이 좀 더 커졌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더구나 히자즈는 나즈드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지녔는데 그에 관한 서술이 너무 적어 상당히 아쉽다. 사실 히자즈를 이끈 하심 가문은 비록 나즈드를 이끈 사우드 가문에 밀려 쫓겨나기는 했지만,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이후 현재 요르단 왕국, 이라크 왕국, 시리아 왕국의 왕실이 모두 메카 샤리프였던 후세인의 아들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오는 파이살 왕자가 사우디 3대 국왕인 파이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샤리프 후세인의 3남으로 짧게라도 이라크와 시리와 국왕을 지낸 사람이었다. 나는 사우디 역사를 조금 알 뿐 중동 전체를 아우르는 역사는 아는 게 없다. 그런 내 눈에는 중동 역사, 중동 정치 지형에 미친 영향은 사우드 가문보다는 샤리프 후세인을 배출한 하심 가문이 훨씬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아마 건국대 중동연구소에서 이 시리즈의 연구서를 계속 발간했다면 다음 차례는 요르단쯤이었을 것이고, 그 책의 중심에는 하심 가문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나즈드는 술탄국, 히자즈는 왕국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를 차지하고 있던 칼리드 가문의 핫사는 왕국으로 표시하지 않는다. 칼리드 가문을 왕가라고 하는 표현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 서술한 바에 따르면 이 지역은 고대로부터 발전된 지역으로, 오아시스가 발달해 물이 풍부하고 그 결과로 전문화된 농촌 지역이었다. 또한 바닷가에 위치해 항구를 통해 무역하는 상인 가문이 많았고, 외국 상인들도 이 지역을 주목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칼리드 가문이 붕괴한 이후 쿠웨이트, 사우디, 라시드, 오스만 제국, 영국 등 다양한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을 만큼 농산물이 풍부하고 무역망이 다양했던 곳이다. 바탕이 좋으면 그곳을 터전으로 삼는 세력이 생기게 마련인데, 왜 칼리드 가문은 그렇게 맥없이 붕괴했는지 의아하다.


20세기 이후의 사우디 현대사 중 주요 주제를 꼽으라면 오늘날 사우디 존재의 바탕이 된 석유의 발견, 개방으로 나아가던 사우디가 다시 보수 이슬람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게 만든 1979년 메카 점령 사건, 보수 이슬람의 첨병 노릇을 했던 종교경찰 무타와의 존재 정도가 아닐까 한다.


최영철 교수가 집필한 2부가 그 시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정치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석유가 사우디 중추가 된 과정이 빠졌다. 2부는 가까이는 2010년 아랍의 봄으로 대표되는 재스민 혁명까지 다루고 있는데 정작 현대 사우디의 변곡점인 1979년 메카 점령 사건은 아예 언급조차 찾을 수 없다. 나는 사우디 제3왕국을 둘로 나누라면 메카 점령 사건 이전과 이후의 사우디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셋으로 나누라면 살만 국왕이 즉위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등장한 2015년이 기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정도로 메카 점령 사건은 사우디 현대사에 큰 변화를 남겼는데, 그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언급이 되지 않은 건 의아한 면이 없지 않다.


사우디 현대사 중에서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뀐 기점은 현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가 무타와를 해체한 2016년이 아닐까 한다. 다행히 이에 관한 내용은 사회상을 담은 3부에서 간략하게 서술하기는 했지만, 해체 전후의 사회상 변화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건 아쉽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국내에서 발간된 책 중 거의 유일하게 사우디 왕조사와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건국대 중동연구소의 이 작업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사우디 형성 과정을 다룬 이 책을 끝으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수요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게 그 이유일 것 같기는 한데, 수요와 관심이라는 잣대로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중동학의 발판을 치워버린 것 같아 몹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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