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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Nov 11. 2020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일상에 대한 경제사적 분석

김두얼

생각의 힘

2020년 06월


경제사라는 학문을 만나서


외국에 오래 살다보니 한국 방송을 보고 듣는 것이 큰 낙이다. 요즘은 인터넷 방송이 있어서 마치 한국에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만큼 현안에 익숙하다. 몇 년 전에 팟캐스트로 경제 방송을 듣게 되었다. 워낙 경제에는 아는 게 없지만 제목 그대로 ‘손에 잡히는 경제’ 방송에 이끌려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듣는 열혈 애청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본격 경제 팟캐스트 방송인 ‘신과 함께’를 만났고, 거기서 김두얼 교수의 경제사 강의를 듣게 되었다.


경제사라는 학문은 생소했지만 강의 내용이 평소에 궁금했던 것인데다가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데 끌려 두 시즌에 걸친 서른 네 번의 강의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챙겨들었다. 당시에 몇 시간 떨어져 있는 곳에 자주 갈 일이 있었는데, 그 길을 말동무 삼아 아내와 같이 다니면서 이 강의 대부분을 함께 들었다. 그때부터 아내가 경제방송을 듣기 시작해 이젠 아내와 나눌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 요즘은 김두얼 교수와 페이스북 친구까지 되어 실시간으로 현안에 대한 견해도 듣고, 네이버 지식라이브 강의까지 따라 들어 나름 경제에 대해 눈을 떠가고 있다. 새삼 눈 떠서 뭐에 쓰려는지 모르겠지만.


방송에서 했던 강의 중 특히 ‘역사적 사실에서 당시 경제 상황을 추정하고 그것이 지닌 의미를 찾아나가는’ 내용은 정말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번에 펴낸 책에 <경제, 역사, 제도에 대한 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만 보고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즉시 전자책 발간 알림서비스를 신청하고, 알림서비스가 오자마자 책을 사고, 그동안 읽고 있었던 책을 덮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재난이 인간의 생애에 미치는 영향


저자의 방송 중에 1918년 창궐한 스페인 독감의 후유증이 당시 태어난 아이들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 매우 인상 깊었다. 충격적인 내용이었지만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직접 간접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 할 때 태어난 아우는 형제 중 몸이 가장 약하다. 이미 환갑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아우를 보면서 안타까워하신다. 언젠가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문제로 소란스러웠을 때 이것이 후대에 들어갈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설명을 듣고 반대했던 생각을 접었던 일도 있다. 먹지 못해 생긴 피해가 결국 북한 주민의 회복할 수 없는 건강 악화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송을 들으며 경제사라는 학문이 무엇을 연구하는 것이며 어떤 가치가 있는지 비로소 인식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의 제3부에 나오는 ‘재난의 경제학’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악명이 높았던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 걸쳐 수천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이때 태어난 사람들이 다른 때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교육도 덜 받고, 소득ㆍ학업성취ㆍ건강 등 모든 영역에서 뒤떨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당시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기근이나 한국전쟁, 미국 남북전쟁으로 재난을 입은 당사자나 퇴역군인 또한 신체적ㆍ정신적 상해를 입은 것 말고도 평생에 걸쳐 소득이나 건강상태가 일반인에 비해 뒤졌다고 설명한다.


방송을 들을 때 워낙 인상 깊은 내용이어서 이 책에서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이 장을 펼쳤지만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이 없어 매우 아쉬웠다. 기회가 된다면 이 사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산업화사회와 민주화사회


이십 년도 넘은 일이다. 퇴근길에 즐겨듣는 시사프로에 심상정에 대한 집중인터뷰가 방송되었다. 패널 세 명이 쏟아내는 날카롭고 거북할 수 있는 질문에도 막힘없이 자기 생각을 밝혔고, 그것이 생각과 달리 상당히 합리적이어서 놀랐다. (거기에는 내 편견이 작동했을 것이다.)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과거와 현재를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으로 해석한다고 했다. 지금은 민주화가 가장 큰 가치이지만 당시는 산업화가 무엇보다 큰 가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다만 사회가 달라졌는데도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된 산업화에 매달리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아마 그 방송을 계기로 그에 대한, 그리고 진보주의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은 학자들이 과거를 일방적으로 비판하고 매도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그것을 양식 있는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전후세대로 비록 전쟁의 참화는 겪지 않았지만 전쟁의 여파와 이후 산업화의 결실을 체득하며 살아왔다. 하루 세 끼를 다 챙겨먹는 것이 사치인 시절을 살았으나 차츰 살림이 나아져 자가용을 몰고 자식을 유학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당시에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사회가, 그리고 내가 이룬 모든 성취가 매도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늘 의문을 가져왔다.


학자들이 그 시대를 비판하는 내용은 우리가 이룬 산업화는 어차피 이룰 수 있는 것이었지 정부의 정책과는 무관했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룬다. 그들은 원조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한국경제가 발전은 했지만 원조가 소비재 중심이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경제구조를 왜곡시켰고, 중화학공업 과잉투자ㆍ지나치게 높은 대외 의존도ㆍ과도한 외채 등으로 인해 오히려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런 주장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근거를 들어 이러한 해석이 사실과 동떨어진 것임을 밝힌다.


“1950년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하지만 1954-1960년 동안 한국경제는 연평균 5.3% 성장했다. 이것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이러한 성장이 다른 나라보다 원조를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론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1960년대 이후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이 받은 원조 중 우리나라가 받은 것은 20위 수준이었으며, 인당 수령액이나 GDP 대비 수령액은 원조 수령국의 중간 수준이니 다른 나라보다 많이 받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개발도상국과는 달리 한국은 원조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잘 활용했다. 불행히도 동시대 언론보도나 이후 연구들은 이 시기를 대부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원조가 소비재 중심이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소비재 지원으로 물가가 낮아지고 경제가 안정된 것은 외면하고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고 산업구조를 왜곡했다고 문제 삼는다. 소득 수준이 낮아서 생기는 많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경제성장으로 인해 상황이 개선되고 있음은 주목하지 않는다.”


“1964년 1억 달러이던 수출은 1970년에 10억 달러, 1977년에 100억 달러에 도달했고, 이와 같은 급속한 수출증대로 연평균 10%라는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195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이 20년 후인 1980년경에 1인당 평균소득이 세계 평균에 도달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시기 한국 경제에 대한 당대의 글이나 평가 역시 인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중화학공업 과잉투자, 지나치게 높은 대외 의존도, 과도한 외채 등으로 인해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다는 진단이 주류였다. 하지만 동시대 많은 개발도상국들에 비해 한국은 외채규모가 비교적 적었다. 중화학공업 투자가 많은 문제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자동차 조선 석유 등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들이 이 시기에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평가는 어용으로 매도되고 무시되었다.”


“2018년 우리나라는 1인당 GDP 3만 달러를 달성했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국가들이 최근까지 경기침체를 겪는 와중에도 한국경제는 3-4% 수준의 성장을 유지했다. 이것은 OECD 국가 중 가장 뛰어난 성과였다. 하지만 3만 달러 달성 소식을 전하는 언론들의 논조는 어두웠다. 3만 달러 달성이라는 사실을 간단히 언급한 뒤 소득불평등 확대, 세계적인 무역전쟁과 수출 감소 등 어두운 현상을 열거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했다. 낮은 경제성장률이 3만 달러 달성이라는 성취를 압도했다.”


그렇다고 저자가 이런 폄하 자체를 문제 삼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문제점을 과도하게 부각시키고 과제에만 집착하다가 조급하고 지나친 대책을 내놓게 되고, 임기 내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구하겠다고 특단의 조치를 남발하다 경제구조를 왜곡시키고 경제성장을 오히려 가로막는 것을 염려할 뿐이다.


이민정책이 인구문제 대책으로 적절한가?


오래 전부터 인구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인구변화가 경제나 산업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그것을 살피지 않고는 경영전략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구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 중 그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중요한 문제인데 그에 대해 사회가 너무 무심해서 오히려 놀라울 정도이다.


인구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여럿 있겠지만 이민정책이 그 중 빠르고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인구증가율이 급격하게 낮아지는 건 선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개발도상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인구증가율이 지금과 같이 변화된다면 조만간 100억 명 수준에 도달한 뒤 더는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민정책도 일시적인 처방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 아닌가.


1800년 당시 10억 명 수준이던 인구가 현재 77억 명까지 늘었고 그것이 조만간 100억 명에 이른 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면,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구증가율 변화 양상을 사회적ㆍ경제적 관점에서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인구증가율이 높았던 이유를 되살릴 방법은 없는지, 인구증가율이 낮아진 이유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말이다.


경제사 연구 방법론


저자는 제2부 ‘빈곤과 풍요’에서 인류의 신장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고고학자ㆍ인류학자ㆍ경제학자들이 유골을 이용해 생활수준 변화를 연구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사회란 변수도 많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서 어느 한 학문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한 가지 학문으로 사회현상을 해석하려다 보니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와 같이 여러 학문이 힘을 합쳐 연구하는 것이 참 좋아 보인다. 어쩌면 사회에 나와 참여했던 첫 번째 사업에서 얻은 기억이 매우 강렬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졸업하고 국책연구소에 들어가 첫 번째로 참여한 일이 원자력발전소 부지평가 사업이었다. 부지평가의 핵심은 지진에 대한 평가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05년에야 비로소 지진관측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지진기록은 역사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멀리 삼국사기로부터 시작해 조선왕조실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록을 찾아내고, 거기서 찾아낸 한두 가지 현상만 언급한 기록을 바탕으로 지진의 크기를 결정해야 했다. 역사ㆍ사회ㆍ건축ㆍ토목ㆍ지질ㆍ지진 관련 전문가들이 협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처 주도로 수년에 걸친 연구 끝에 1980년 초에 ‘한반도 역사지진 평가보고서’가 발간되었고, 그 이후로 정량적인 지진평가가 가능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참여해온 사업 대부분이 그랬고, 지금은 이런 연구방식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작업을 마치고 났을 때 성취감을 더 크게 느꼈던 듯하다. 은퇴를 하면 더 이상 그런 성취감을 맛볼 기회가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아쉽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언급이 있다. 저자는 박희진 박사가 오랫동안 수집한 양반가 여성의 행장자료 2만여 편을 면밀하게 검토해 173편의 출산관련 자료를 얻었다고 했다. 엄청난 시간을 들여 검토한 자료 중에 인용할 수 있는 자료가 1%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연구는 이런 것이다. 연구실에 고상하게 앉아 고뇌하고 쓰고 검토하는 일은 마무리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은 이와 같은 막노동에 가까운 작업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문장이었다. 문득 검토한 자료 중에 건질 게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불평했던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일상에 대한 경제사적 해석


저자는 문학작품에서, TV프로그램에서,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서 경제적인 요소를 찾아내고 분석함으로서 경제학은 결코 학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저자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5일장의 메커니즘에 대해, 염상섭의 <두 파산>으로부터 비롯된 파산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 대해, <나는 가수다>와 같은 경연프로그램에서 순번이 순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전통적인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사회에서 누리는 후광효과에 대해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또한 담뱃세 인상이 흡연율을 줄일 수 있는지, 소송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과 법원 인력은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인지, 과도한 형벌이 범죄발생률을 억제하는지, 우리 사법체계에서 규정하는 양형기준이 범죄 형태에 따라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묻고 이 또한 같은 관점으로 접근한다.


이렇게 보니 우리 일상에서 경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아니 과연 있기는 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방송도 워낙 흥미진진하게 들었지만, 네이버 지식 라이브 강의 역시 그렇게 들었다. 신문기고 또한 그렇고, 페이스북에서도 현안에 대해 경제사학자로서 저자의 견해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모두 무상으로 공개되는 것이니 궁금하시면 한 번 찾아보시라.


궁금증을 더하기 위해 위에 언급한 결과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나는 가수다>와 같은 경연에서 순번에 따라 경연 결과가 1.7등 달라질 수 있고, 전통적인 명문 고등학교 출신은 다른 사람보다 임금이 12~18% 정도 높으며, 담뱃세를 인상한다고 흡연율이 낮아지지는 않고, 과도한 형벌은 오히려 형의 실효성을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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