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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식 Dec 29. 2020

과학의 품격

까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강양구

사이언스북스

2020년 4월


이슈 파이터


오래 전에 환경벤처기업과 협업했던 일이 있다. 어느 날 회의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는 나누는데 황우석의 줄기세포 사진이 조작되었다고 했다. 대학에서 함께 연구하던 이들이 세운 회사였고 업무도 그의 연장선에 있는 일이어서 줄기세포는 그들에게 낯선 주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걸 밝혀낸 이들의 동료이기도 했다. 설마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니 photoshop에서 사진을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두 사진이 같다는 걸 보여줬다. 아니라고 할 수가 없었다.


당시 이를 제대로 보도한 곳은 ‘프레시안’이라는 낯선 이름의 온라인신문 뿐이었다. 나 역시 줄기세포 개발의 업적에 상기되어 있었던 터이라 (황우석에 대한 괘씸함과 ‘프레시안’에 대한 원망으로) 매일 ‘프레시안’에 올라오는 기사를 챙겨 읽었다. 특히 기사에 자주 언급되기도 하고 직접 이와 관련한 글을 여러 편 발표한 피츠버그대학의 이형기 교수 글에 상당한 관심을 쏟았다. 그래도 그 기사를 쓴 이가 강양구 기자인 줄은 몰랐다.


저자인 강양구 기자는 4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첫 장을 온전히 2005년에 일어난 황우석 사태의 전말을 전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상당히 관심을 가졌던 일이어서 기억을 떠올릴 겸 모처럼 ‘프레시안’에 들어가 당시 기사를 검색했다.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기사가 1천 개로 한정되어 있어서 몇 번이나 기간을 변경해가며 백여 편 넘는 당시 기사를 살펴봤다.


문득 이형기 교수와 김선종 연구원이 같은 피츠버그대학에 적을 두고 있었다는 게 생각나 잠시 의아했는데, 기사를 따라가다 보니 황우석과 공동연구를 하다 도중에 갈라선 새튼 교수가 연결고리였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형기 교수는 동료인 새튼 교수와 연관된 일이어서 목소리를 내었다고 했고, 김선종 연구원은 황우석과 새튼 교수의 인연으로 그곳에 가게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결과를 확인하다가 진중권 교수가 황우석 지지자에게 봉변을 당했다는 기사도 읽었고, 윤태곤 시사평론가가 당시 ‘프레시안’ 기자로 올린 ‘현 정부와 언론은 황우석 신드롬의 공범’이라는 기사도 읽었다. 웃음도 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조국흑서’의 공동저자로서 인연이 이때 시작되었나 싶었고, 이들의 까칠한 비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성향이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태곤 기자가 강양구 기자와 한솥밥을 먹던 식구라는 것도 신기했고.


저자는 예나 지금이나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모습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영웅을 범죄자로 전락시키고 자기가 진보주의자이면서 (소위) ‘진보의 수장’을 (결과적으로) 엿 먹이는 일에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의 발언을 줄탁동시(啐啄同時)의 탁(啄)에 해당한다고 높이 평가하는 이도 있기는 하더라만, 나 또한 그를 까칠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으니 저자로서는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겠다. 오죽하면 기자를 꿈꾸는 대학생이 “그렇게 살면 외롭지 않나요?” 물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비극인 것은 왜곡된 기사를 쓰고 이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기자를 그만두고, 권력에 빌붙어 희희낙락하던 이들은 여전히 활보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때 진실의 편에 섰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서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태생이 바른 말 하지 않고는 못 사는 사람이면 평생 그렇게 살아야지. 줄기세포연구가 생명윤리를 위반했다는 지적의 결과로 받은 ‘엠네스티 보도상’이 그런 수고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기대할 뿐.


서평 삼수


이 책의 서평을 쓰다가 두 번을 접었다. 양이 만만치 않으니 다루는 폭이 넓었고, 그것을 관통하는 저자의 의도가 뭔지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 많은 주제에 대한 생각을 쓸 수도 없는 일이었고. 저자는 2017년에서 2019년 사이에 발표한 100여 편의 기사 중에서 처지는 것을 버리고 나머지를 현 시점에 맞춰 수정하고 보완했다고 한다. 100여 편 중에서 70편에 가까운 글을 골라냈다니, 역시 글 쓰는 전문가로서의 역량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오래 전에 환갑을 맞으면서 그동안 써놓은 글을 묶어 어쭙잖은 책을 하나 냈는데, 쓸 만한 글이 채 10%에도 미치지 않더라.


저자는 과학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이로서 얻을 수 있는 이점과 아울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가 그렇게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3부와 4부에서 과학기술을 소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2부에서는 저자의 시각을 좀 더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글의 첫머리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30%의 법칙’을 올려놓은 것은 실망스러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여기서 ‘죄수의 딜레마’를 비롯한 여러 실험에서 사람들 모두가 매번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설명한다. 실험 결과 30%는 남이 보지 않아도 상대를 배려하고, 30%는 남이 보지 않는다면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그들도 남의 눈에 띌 경우 덜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까칠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기자이다. 바른 말 하는데 망설이지 않는다는 뜻이니 기자로서 이런 평가는 덕목이 될지언정 흠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가 있는 일에 조금도 관용을 베풀지 않기는 하지만, 그런 그도 그런 역할을 감당하는 게 매번 즐겁기만 한 건 아닐 것이다. 저자의 첫 번째 글에서 그런 고단함을 느꼈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그렇기는 해도 그가 이끌어가는, 혹은 출연하는 팟캐스트 방송을 들어보면 늘 까칠한 것만은 아니더라.


선한 의도를 구현하는 길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선한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한 의도만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차가운 이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즐겁게 물을 길을 수 있도록 플레이펌프를 고안했지만 결국은 그 짐은 여성에게로 돌아갔고, 공유경제는 당초 의도했던 선한 취지와는 달리 ‘우버’로 인해 교통체증이 오히려 증가하고 차량 대수도 늘었으며, ‘에어비앤비’로 인해 도시의 주택임대로가 올라 주민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현상을 지적한다.


세탁기 개발로 가사노동이 쉬워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여성의 노동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이를 크게 늘렸다는 것도 그렇고, 현대 과학기술의 총아로 자리 잡은, 어쩌면 이미 만능해결사로 여겨지는 인공지능이 오히려 인류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학습이 받쳐줘야 하는데, 그 학습 자료로 쓰이는 것이 기존의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결국 관행이 개선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인공지능에 국한될 일은 아니다. 이미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소셜미디어만 해도 그렇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구로 묶이고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 또한 그런 연결을 촉진하고 있으니, 시간이 갈수록 편향된 생각이 더욱 굳어지고 결국 사회가 양극단으로 나뉘어 서로를 할퀴는 지경에 이르렀다. 할퀴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싸움 때문에 정작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 오히려 뒤로 밀려 사방에서 문제가 터져 나온다.


저자는 <집단 지성인가 집단 바보인가?>에서 집단 지성은 집단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정답에 근접한 결과가 만들어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오히려 개인의 판단보다도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결국은 온라인으로 만들어진 ‘초연결사회’가 ‘집단 지성’을 ‘집단 바보’로 만들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지적은 진영논리에 몰입되어 있는 사회에 경종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가 노력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 책을 그런 목적으로 쓴 것도 아니고 이런 현상에 대해 한두 단락으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저자의 글은 많이 읽어봤지만 책은 처음이라 혹시 다른 책에서 그런 내용을 언급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런 책이 있다면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없다면 언젠가 그런 책을 한 번 써주시기를 기대한다.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고, 단지 궁금해서


저자는 프레시안 기자로 활동할 때 천성산 꼬리치레도롱뇽 관련한 기사를 여럿 발표했다. 당시 지질공학회에서 이에 대한 견해를 제출한 바 있고, 나 또한 이사로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의견도 내고, 상당한 분량의 의견서를 발표한 일도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이의가 없다. 다만 꼬리치레도롱뇽의 서식지가 파괴된 것이 터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같은 길이의 고속철도를 건설해야 한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성토노반보다 터널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저자는 <인간 없는 도시의 주인>에서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세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면 원자력발전소는 며칠 안에 폭주하고 이것이 폭발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저자가 원전의 폐쇄절차(shutdown procedure)를 모르고 있는 건 아닐 텐데, 운영자가 없다고 해서 폭발에 이를 것이라고 단정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저자는 <현대자동차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에서 “20개 선진국의 자동차 주행거리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이대로라면 우리도 조만간 주행거리가 정점을 찍고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며,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구매능력이 줄어들고, 소비여력이 없는 청년층이 자동차 구매를 기피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그렇다면 그건 현대자동차의 문제일 뿐 아니라 선진국 자동차회사의 공통적인 문제인데, 그런데도 그들이 (출구전략 없이) 신차개발과 판매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The Dark Side of the Moon>에서 “달 탐사는 한 편의 거대한 쇼”라고 일갈하며 “달에 태극기를 꽂으면 행복해질까?” 묻는다. 매사가 그렇듯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그리고 저자가 그림자를 언급한 것이었다는 점을 이해한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가 지금 일상에서 누리고 있는 많은 혜택이 우주과학의 산물인 점을 감안한다면 (아내는 인공관절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런 지식은 ‘나는 의사다’에서 배웠다.) 매도 일변도로 글을 맺는 건 아니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1980년 월성 원전 후속기 지반평가 사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고, 이런저런 형태로 우리나라에 건설되었거나 건설 중인 원전 32기 가운데 27기에 관여했으며 (5기는 졸업하기 전에 이미 가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사우디에서 원전 발주를 기다리고 있다. 탈원전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졌을 리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에 대해 유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전력을 안정적ㆍ경제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전원을 다양하게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 이의가 없다. 실제로 사우디에 부임하기 전에 태양광사업을 검토했고, 부임한 이후 풍력발전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런 배경이 있어서인지 <태양광 가짜 뉴스>라는 제목은 몹시 거슬린다. 저자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태양광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모두 ‘가짜 뉴스’인 것처럼 여길 수 있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전의 기초에 대해서 일한만큼 이해를 하고 있을 뿐 전원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그래도 관심은 있으니 신재생에너지의 취약점이 간헐성과 계통의 문제인 정도는 안다. 그런 눈으로 볼 때 ‘가짜 뉴스’에 초점을 맞추느라 신재생에너지의 취약점을 언급하지 않은 건 너무 야박하다. 다만, 터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혹은 가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저자가 에너지 저장장치(ESS)의 일환으로 ‘터널로 이루어진 양수발전’을 거론한 것으로 불편한 마음을 일부 달랠 수 있었다. (오독이라도 좋다. 어차피 자기 위안이니)


감사와 감탄, 그리고 질문


지난봄부터 논란이 되었던 마스크에 대해 시종일관 같은 목소리로 경각심을 일깨운 것에 대해, 그와 관련해 남긴 허접한 질문을 (짜증이 조금 섞인 투이기는 하지만) 상세하게 답변해 준 것에 대해, ‘책걸상’과 ‘나는 의사다’를 통해 여러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안내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전한다.


저자는 다방면으로 박학다식해 보인다. 그 바탕은 독서일 텐데, 그 바쁜 사람이 도대체 그 많은 책을 언제 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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