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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Review

빛, 색깔, 공기

죽음을 사이에 둔 두 신학자의 대화

by 박인식

김동건 영남신학대 교수

대한기독교서회

2002.10.25 초판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이미 여든을 훌쩍 넘겼지만 건강 수명은 이보다 열 살 가까이 적다고 한다. 예전보다 오래 살기는 하지만 늘어난 수명보다 오히려 더 오랜 시간을 병상에서 보낸다는 말이다. 최근에 우리 국민 백 명 중 일흔여섯 명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렇듯 나 또한 병상에서 죽음을 맞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나도 어느덧 삶의 끝자락에서 병과 마주했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를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평생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으니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데, 죽음을 어떻게 맞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될지, 그러기 위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하는 것이 당면한 문제가 되었다.


문득 오래 전에 읽은 이 책이 생각났다. 채 오십도 되기 전이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교범과 같은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삶과 죽음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익숙해 있는’ 신학자이자 목사인 아버지가 넉 달 시한부 간암 선고를 받으면서 그 가족이 느낀 당혹감과 이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현직 신학 교수이자 목사인 아들이 담담하게 풀어냈었다. 아울러 죽음의 문턱에 서있는 아버지와 산 자로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이 넉 달 동안 고통에 대해, 죽음에 대해, 인간에 대해, 부활과 종말에 대해 나눈 대화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었다.


십 수 년 만에 책장에서 다시 꺼내 들었다. 문고판 보다 약간 큰 규격에 이백 쪽 남짓한 작은 분량이었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처음 읽었을 때도 감명 깊었지만 그때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서인지 구구절절이 공감이 되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신학자이자 목사인 아버지와 두 아들을 둔 가정에서도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그럼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어쩌면 평신도로서 위안이 되는 말일 수 있겠다.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이 시련을 어떻게 맞이하고 이겨내는지 시험대에 올랐다”는 고백은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훌륭한 지침이 되겠다.


가족 중에 누가 암에 걸렸을 때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 그 사실을 본인에게 알려야 하는지, 알린다면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가족 중에 멀리 떨어져 있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이를 알려야 하는지 하는 것도 결정 내리기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병세에 대한 이야기나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은지 피해야 하는 것인지도 암 환자를 둔 가족에게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인데, 그에 대해서도 저자 가족이 겪은 혼란함과 혼란함 끝에 얻은 결과를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서 독자의 판단을 돕고 있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니 믿음이 깊다고 고통이 덜한 것도, 덜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버지 김치영 목사는 그 힘든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신학적으로 고통의 유형을 나누고 자신의 고통이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살핀다. 그러면서 그 중에 가장 바람직한 유형의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아울러 병과 고통은 죄 때문인지 살피고, 마지막 생일날 가족과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에 대해 설교한다. 장례 예배 때 일체의 조사나 약력 소개를 하지 말 뿐 아니라 매우 단순하고 은혜 넘치는 예배 외에는 어느 것도 추가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장례 예배 설교를 직접 마무리하고 성찬을 나누는 것으로 삶을 마무리한다.


평신도로서 병과 고통, 죽음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이 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성찬을 나누는 일은 참으로 의미 깊은 일이니 쉽지는 않지만 부탁은 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아내와 나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기로 서약하면서 아울러 시신 기증도 약속했다. 당연히 산소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죽은 자가 그렇지 않아도 좁은 산 자의 땅을 차지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치영 목사께서는 장례 예배 때 단순하고 은혜 넘치는 예배 외에는 어느 것도 추가하지 말기를 원했는데, 나는 그 마저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자식이 시신을 기증하는 것으로 내 마지막을 마무리해줬으면 좋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죽음을 생각할 나이에 이른 사람이라면 꼭 읽기를 추천할만한 책이다. 내가 이 책에서 얻었던 깨달음과 위로를 함께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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