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라면서 노래 부르는 걸 본 일이 없었습니다. 교회 유치부부터 성가대에서 노래하기는 했지만, 그맘때 아이들이면 누구나 하는 일이어서 특별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었지요.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모임에서 가족들과 놀러간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장기자랑을 하는데 나와서 노래 부르는 걸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어서 사람 많은데 나서는 게 영 뜻밖이었습니다. 박자 음정 틀리지 않고 큰 소리로 부르더군요. 그게 전부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여름이었습니다. 뜬금없이 성악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집안에 예체능 쪽으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없고 쉬운 길도 아니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내 생각을 모를 아이도 아니어서 왜 성악을 하고 싶은지 물으니 자기는 노래가 좋아서 아이들 노래 가르치며 살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유명한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했으면 아마 두 번 묻지도 않고 안 된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음악선생님을 하고 싶다니 그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연합고사를 앞두고 있던 때여서 시험이나 마치고 한 번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마침 저희 내외가 속해있던 성가대 지휘자께서 성악을 전공하시는 분이었는데 시험 끝나면 한 번 봐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연합고사를 본 날 저녁, 처음 오디션이라는 걸 봤습니다. 사실 오디션이라 할 것도 없지요. 아무튼 그날 저녁 한 학기만 레슨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해 첫 학기이니 레슨 시간이 크게 부담되지도 않고, 만약 그만둔다고 해도 어차피 교회 성가대를 계속할 것이니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 학기를 마치고 따로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본인이나 선생님이나 저희 모두 그걸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레슨을 시작하고, 대학 성악과를 가고, 유학을 하고, 지금 오페라극장 단원으로 연주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이가 성악을 하겠다는데 왜 앞날이 걱정되지 않았겠습니까. 과연 경쟁을 뚫고 대학에 갈 수는 있을지, 생각한 대로 교사의 길에 들어설 수는 있을지, 그것이 아이의 미래로 확정하는 게 옳은 일인지 생각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진로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알게 된 일입니다만, 음악교사 되는 게 음대교수 되는 것보다 어렵더군요. 우선 음악교사가 되려면 성악과에 들어간 후 교직과목을 이수해야 합니다. 음악 전공자 대부분이 교사를 희망하기 때문에 교직 이수 자체의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제 아들의 경우 성악과 한 학년에 세 명만 그 자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음악교사 자격을 얻는다 해도 음악교사가 되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아시겠지만 음악대학에는 성악과 외에도 피아노과ㆍ기악과ㆍ작곡과가 있습니다. 그 모두 음악과목이지요. 하지만 임용고사에서 음악교사의 정원이 매우 적습니다. 그리고 한 학교에 음악교사가 많아봐야 한두 명을 넘지 않습니다. 사립학교 같은 경우엔 정년퇴직이나 해야 자리가 납니다. 수도권만 해도 음악대학이 부지기수로 많고, 한 음악대학에 정원이 백 명은 훌쩍 넘으니 대상자는 수천 명이 되는 셈입니다. 그걸 알았을 때는 이미 성악과에 들어간 이후여서 내색은 못하고 속앓이만 했습니다.
제 아들은 꿈꾸었던 대로 오페라극장의 단원으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성악을 전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노래하는 직업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고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성악을 공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폭넓습니다.
아들에게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성악과 선배가 있었습니다. 간혹 보여주는 걸 보면 감각이 남달랐습니다. 그 선배는 지금 연주전문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많습니다. 사진이라는 건 피사체의 특징과 감각을 잘 살려야 제대로 의미를 갖게 되는데, 사진을 잘 찍는 것과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일이어서 연주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사진작가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좋은 사진작가를 확보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 선배는 자기가 연주자로 무대에 서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연주자의 감정과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타이밍에 예민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평생 설계ㆍ컨설팅을 하며 살았습니다. 발주처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업을 기술제안방식으로 발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사업수행방법 뿐 아니라 인력과 경험이 월등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제안서 작성에 사활을 걸지요. 처음에는 제안서 내용만 신경 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심사위원이 한눈에 회사의 주장과 강점을 알아볼 수 있도록 꾸미는데 치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내용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정리하는 작가, 복잡한 내용을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미적 감각을 살려 제안서를 디자인하는 에디터, 거기에 영상에 쓰일 음악을 고르는 전문가까지 동원했습니다. 이제는 과거와 같이 도식적인 방법으로 종사할 분야를 나누는 시대가 이미 지났다는 말입니다.
이미 세상은 음악이 하나의 큰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연주자가 제대로 연주하자면 공연계획을 만들고, 함께 연주할 사람을 섭외하고, 홍보를 하고, 마케팅을 하고, 공연장을 관리하고, 공연 자체를 이끌어갈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외국 연주자를 초청하거나 외국에 나가 연주하려면 외국기업을 섭외하고 협상해야 하는 전문가도 필요합니다. 음악방송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젠 어떤 행사이던 음악을 빼고 생각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상업광고에 쓸 불과 몇 초 되지 않는 음악을 고르기 위해 수 천 곡, 때로는 만 곡 넘는 음악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도 있습니다. K팝이 유발하는 경제효과 하나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합니다.
물론 그 모든 일을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음악적 이해와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과정에서 한 발 앞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앞서 예를 든 연주전문 사진작가처럼 말이지요.
아이가 성악을 시작하고 나서 한동안 발성만 연습했습니다. 변성기*가 지나기는 했어도 온전히 자기 목소리가 자리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고, 기초를 튼튼하게 쌓아야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입시를 눈앞에 두고 성악을 시작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저는 이 방식을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아마 여섯 달쯤 지나서 처음 노래를 불렀을 겁니다.
남학생은 변성기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대체로 변성기가 지난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쯤 성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학생은 그렇지 않아서 초등학교 때 합창단으로 시작하고 계속 이어서 노래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교회학교에서 가르친 학생들 중에 지금도 성악가로 활동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하나 같이 그때쯤 시작했습니다.
저희야 아는 게 없으니 레슨 선생님께서 결정하시는 대로 따랐습니다. 하긴 기초를 든든하게 쌓아야 한다는 말에 뭐 다른 이유를 달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을 전폭 신뢰했고 그래서 조바심 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발성도 하지 않고 근처 학교로 데리고 가서 내내 달리기만 시킨 일도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대학 입학할 때까지 아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아이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레슨 선생님을 바꾸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방식이 결코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바뀔 수 있다면 선생님으로서는 성과를 보여야 하고, 성과를 보이기 위해서는 기초를 닦는데 시간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희 내외는 레슨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선생님과 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만, 사실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하고, 그 선생님의 결정을 온전히 신뢰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대학 입학하고 나서 지도교수님 뿐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한결같이 나쁜 버릇이 들지 않았다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지루하기는 했지만 반 년 가까이 오직 발성에만 치중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악을 시작하면 콩쿠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지금 어느 정도 실력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쟁심이나 허영심이 불을 지르기도 합니다. 대나무가 속이 비었는데도 그렇게 높이 자랄 수 있는 건 매듭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저는 콩쿠르를 매듭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 공부하고 나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정도로 여긴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마치 경쟁 그 자체로 여겨 매달리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고등학교 때 콩쿠르 입상경력이 대학 들어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자기 대학에서 개최하는 콩쿠르에 입상할 경우 입학 자격을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했는데, 실제로 그런 경우를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콩쿠르 입상 경력에 가점을 부여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제가 모든 경우를 다 아는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때 콩쿠르에서 날리던 학생들이 끝내 좋은 성악가로 활동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콩쿠르 무용론을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우선 대학입시가 큰 관문이니 그러기 위해 자기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평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콩쿠르가 큰 도움이 됩니다. 콩쿠르 몇 번 나가보니 어느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정도는 쉽게 판단할 수 있더군요.
물론 콩쿠르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단계 성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입상에 매달리다 보면 기초보다는 당장 연주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데 치중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기초가 흔들리거나 심하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시작했다면 2학년과 3학년에 각각 한두 번 정도 나가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음악전공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음악선생님들께서 자청해서 전공자들이 설 수 있는 무대도 마련하시고 이런저런 조언 들을 기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때 음악선생님께서 예체능으로 대학을 가려면 학업을 포기하라는 말씀을 하셔서 매우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놀랍기는 했지만 까닭을 들어보니 상당히 설득력 있었습니다.
당시 학력고사가 400점 만점이었습니다. 대학입시 때 1,000점 만점에 필기가 300점 실기가 700점이었습니다. 학력고사 400점이 대학입시에 300점으로 반영되는 것이니 학력고사에서 100점을 올려봐야 대학입시에서는 75점만 올라갑니다. 사실 학력고사에서 100점을 올린다는 게 얼마나 어렵습니까. 미친 듯이 공부해서 200점을 올려도 대학입시에서는 고작 150점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기에서는 200~300점, 혹은 그 이상을 올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학업을 포기하고 실기에 매달리는 게 현명한 판단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하나있습니다. 피아노인데요. 피아노는 워낙 전공자가 많고 실력도 출중한 학생들이 많아 오히려 실기가 아니라 필기시험에서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피아노 전공자들은 필기 점수도 상당히 높습니다. 교회학교에서 가르친 제자 하나가 피아노과에 떨어졌는데 다음 해에 상위권 대학 문과계열에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가 단지 대학 들어가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조언해주신 선생님 말씀을 따랐습니다. 그 대신 고등학교 졸업생으로 그리고 사회인으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지식은 갖추도록 해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국어ㆍ영어ㆍ수학 교과서만 공부시켰습니다. 국어와 영어는 한 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읽을 때까지 연습시켰습니다. 문제도 교과서에 있는 것만 풀게 했습니다. 언어가 입에 붙으면 그 나머지 내용은 따라오게 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그런 성과를 얻었습니다. 수학은 교과서 내용만 익히고 거기에 실린 문제만 반복하며 풀게 했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문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사회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도는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성적으로는 볼품없었을지 몰라도 지금 사회인으로 살아가는데 부족하지 않을 만큼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그렇게 독특한 방식으로 가르쳐줄 선생님을 만나는 일도 또한 그 비용도 감당할 수 없어서 제가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 사이가 더 나빠질 수 없을 만큼 나빠졌습니다. 회복하기까지 적지 않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많기는 해도 목표로 삼을만한 성악과는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학교마다 시험 요강이 달라서 준비하는 방법도 달라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즈음에는 목표로 삼을 학교가 결정되어 있어야 하지요.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전에는 여름방학 때쯤 실기시험 요강이 발표되었습니다. 자유곡 한 곡만 부르도록 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독일 가곡ㆍ이탈리아 가곡ㆍ오페라 아리아 이런 식으로 지정곡을 부르도록 하기도 하고, 성악 외에 피아노 실기시험을 보는 곳도 있습니다. 입시곡은 최소한 몇 달은 준비해야 하니 이런 까닭으로 일찌감치 학교를 정하지 않으면 입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학교를 정하고 나면 한 곳이 되었든 두 곳이 되었든 그 학교에 가보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그곳에서 공부하는 선배들을 보는 것이 같을 수가 없지요. 저는 그게 동기부여 하는데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재학생과 관계를 갖도록 해서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고 노래하는지 보여주는 걸 권할 만합니다. 레슨 선생님이 당시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고 음악대학 학생으로 이루어진 선교합창단 지휘를 맡아 수고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학교를 가보기도 하고 그곳에서 레슨을 받기도 했습니다. 재학생들과 자주 만나게 되니 마치 학생이 된 것 같은 생각도 들었을 겁니다.
실기시험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년을 준비한 것을 불과 몇 분 안에 보여줘야 하는 일입니다. 그럴 때 익숙한 장소에서 노래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장소에 익숙해있거나 평소에 그곳에서 노래를 불러본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길면 수년 짧아도 몇 달 준비한 결과를 불과 몇 분 안에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한 번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가 없으니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준비한 만큼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장소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준비한 곡을 흔들림 없이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입시를 얼마 앞두고 레슨 선생님께서 입시곡을 바꾸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의 음색과 기량을 더 잘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곡을 찾았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제가 반대했습니다. 제가 음악에 대해 뭘 안다고 반대했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년 준비한 것을 실수 한 번으로 물거품을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합격할 수준은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시까지 준비된 것을 실수 없이 잘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췄던 겁니다. 언제 어디서 시켜도 준비한 만큼 부를 수 있도록 하자고 말씀드렸고 선생님께서도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공교롭게도 시험 당일 아이는 실기시험에 가장 치명적인 감기에 걸려 시험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누워있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삼 년 동안 불렀던 곡을 무난히 준비한 만큼 부를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준비한 기량을 단지 몇 분 안에 평가받는다는 건 어불성설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도가 그렇다면 이에 전략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저는 그 경우에 부모로서 의견을 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낼만한 의견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최악의 상황에서도 제대로 기량을 펼칠 수 있을 것인지 정도는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아들에 대한 글을 시작하자 어느 분께서 아이가 성악을 하고 싶어 한다면서 질문해 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몇 가지 말씀을 드리기는 했는데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 말고도 혹시 그런 상황에 있는 분이 있다면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곁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점을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아들이 이미 가정을 이루고 나름 성악가로 자리를 잡을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연히 예전에 입시를 준비하던 상황과 지금이 같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개념 자체는 특별히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글을 남겨주십시오. 적절한 답을 드리도록 애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