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바덴극장

Hessisches Staatstheater Wiesbaden

by 박인식

비스바덴은 독일 중서부 프랑크푸르트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인구 60만 정도의 아담한 도시입니다. 프랑크푸르트가 속한 헤센주의 주도(州都)이기도 하지요. 프랑크푸르트ㆍ다름슈타트ㆍ마인츠와 묶어서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 지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헤센주는 인구가 600만 정도로 독일 연방 16개주 중에서 비교적 큰 편에 속합니다.


‘비스바덴’이라는 이름은 ‘강가 낮은 풀밭에 있는 온천(meadow baths)’이라는 뜻인데 실제로도 도시 옆에 라인강이 흐르고 시내 곳곳에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온천이 아직도 많습니다. 한때는 이 지역에 온천이 스물여섯 곳이나 있었고 지금까지 문을 여는 온천도 열네 곳이나 됩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온천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남녀혼탕으로 이름이 났지요. 목욕하러 갔다가 잔뜩 긴장한 채 들어오는 한국청년들과 마주친 일도 있습니다. 민망해 할까봐 입 꼭 다물고 있었습니다. 기후도 온화해서 ‘북쪽의 니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유한 은퇴자들이 많이 살아 문화에 대한 수요도 아주 높습니다. 이분들이 베이스 박영두가 소속되어 있는 비스바덴극장의 주요 관객이 되어주고 계시는 것이지요. 이곳에 있는 카지노도 바덴바덴이나 모나코와 함께 유럽 유수의 카지노로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카지노는 프러시아시대인 1872년에 폐쇄되었다가 1949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니 그 역사도 만만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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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바덴극장은 오페라 뿐 아니라 뮤지컬ㆍ발레ㆍ연극 공연이 이루어지는 복합 공연장으로, 휘하에 오페라단ㆍ오케스트라ㆍ합창단ㆍ발레단ㆍ극단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체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비스바덴극장은 이곳 온천을 즐겨 찾았던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명령으로 건축되었고, 1894년 10월 황제가 임석한 가운데 개막공연이 열렸습니다. 바로크 형식의 건물이 전체적으로도 아름답지만 역시 빌헬름 2세의 명령으로 1902년에 증축된 건물 내부의 홀(foyer)은 오히려 대극장의 아름다움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지난달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이 홀을 빌려 ‘오페라 갈라’ 스트리밍 서비스를 할 정도로 그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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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827.JPG <Foyer>
Wiesbaden Opera House 02.jpg <Met Opera Gala>

https://www.facebook.com/MetOpera/videos/511519096671093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에 극장의 북쪽부분이 폭격으로 심하게 파괴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복원되기는 했지만 단순하게 처리되는 통에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었지요. 대극장보다 오히려 아름다웠던 홀은 카지노로 바뀌었다가 1956년이 되어서야 원래의 기능을 되찾습니다. 극장을 찾을 때마다 극장 정문인 북쪽 출입구가 유독 건물과 어울리지 않게 밋밋해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Staatstheater_Wiesbaden_Lobby.jpg <극장 건물 북쪽의 로비>


이 극장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프러시아국립극장으로 불리다가 1932년부터 비스바덴 시(city)가 관장하게 된 후 지금까지 헤센주 비스바덴 국립극장(Hessisches Staatstheater Wiesbaden, Hessian State Theater Wiesbaden)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극장의 명칭에 대해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낫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장충동에 유일한 국립극장(National Theater)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립극장이라면 국가가 운영하는 극장이라는 말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독일은 공연예술이 상당히 앞서있으니 국립극장이 몇 곳 되지 않을까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독일의 국립극장(Staatstheater, State Theater)은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State)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립극장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절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국립극장으로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이런 혼선은 우리가 연방제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요. 우리도 지방자치제를 실시하지만 큰 틀에서는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각 주는 별개의 나라에 더 가깝습니다. 여러 나라(State)가 연방을 구성해 외교나 국방은 연방에 맡기고 문화예술을 포함한 나머지는 각 주정부에서 관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마다 각부 장관이 다 따로 있습니다. 미국의 주(State) 역시 이와 마찬가지여서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실제로 state의 뜻을 찾아보면 ‘나라’라는 뜻과 ‘주’라는 뜻이 같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립극장과 같은 개념의 극장이라면 독일에서는 연방극장이 되어야 하는데, 연방에 그런 권한이 이양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런 극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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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atstheater_Wiesbaden_Zuschauersaa012.JPG <대극장>


비스바덴극장에는 공연장이 네 곳이 있습니다. 극장 건물 안에 대극장(1,041석)ㆍ소극장(328석)ㆍ스튜디오(89석)가 있고, 연극을 주로 공연하는 발트부르크 극장(154석)은 여기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페라를 예술로만 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산업에 가깝습니다. 언젠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갔다가 극장투어에 참가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무대와 연습실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뒤편으로 들어가니 무대장치며 의상이며 소품을 만드는 공장의 규모가 상상을 넘어섰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창고에 있는 것을 컨테이너로 실어오기까지 하더군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은 객석이 3천8백 석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오페라극장인데, 극장의 전체 크기가 관객의 시야에 들어오는 전면 무대와 관객석을 다 합친 것의 다섯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비스바덴극장도 객석이 1천 석에 불과하지만 극장 전체 면적 역시 전면 무대와 관객석을 합친 것의 서너 배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스바덴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ㆍ연극ㆍ발레 작품 중에서 새로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 매년 25편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 공연을 감당하려면 인원도 만만치 않게 필요하겠지요. 출연자 뿐 아니라 스태프, 무대장치ㆍ의상ㆍ소품 제작자, 시설관리자에 이르기까지 6백 명이 넘는답니다. 이 중 연주자는 상주단원만 헤아린 것일 테고, 작품에 따라 출연하는 객원연주자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오페라 관련 상주단원으로는 앙상블 멤버(독창자)ㆍ합창단ㆍ오케스트라를 들 수 있습니다. 극장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을 보면 오케스트라가 90여명, 합창단이 60여명에 이릅니다. 독창자들도 80여명 올라와 있기는 하지만, 객원연주자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고 상주단원은 그 중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주단원이라고 해도 각자가 극장과 독립적으로 출연계약을 맺기 때문에 본인이 밝히지 않으면 누가 상주단원인지 누가 객원연주자인지 알 수가 없다는 군요. 오페라에 중에는 밝고 경쾌한 오페라가 있는가하면 무겁고 진중한 오페라가 있고 그에 따라 독창자의 음색도 달라집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다른 유형의 오페라를 하는 독창자들은 함께 공연할 기회가 거의 없어 같은 극장에 소속된 줄도 모르고 지내기도 한답니다. 우리 같으면 한 직장에서 일하니 소속감이나 동료로서 연대감 같은 게 있을 법도 한데 이곳에서는 그런 경우를 기대하지도 않고 찾아보기도 어려운가 봅니다. 그래서 극장에 소속된 독창자 스스로도 극장 전체 독창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비스바덴에는 극장이 지어지기도 전인 1873년에 출범한 ‘온천 오케스트라’가 있었고 1894년 극장 개관과 더불어 오페라ㆍ발레 공연을 위한 ‘Staatskapelle’가 출범했습니다. 이 두 오케스트라는 1950년대 말에 독일 지휘자 볼프강 자발리쉬의 주도로 통합되어 현재와 같은 형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온천 오케스트라’에는 브람스ㆍ클라라 슈만ㆍ요아힘ㆍ생상ㆍ사라사테 같은 불세출의 음악가들이 객원지휘를 맡기도 했습니다. Staatskapelle도 이에 뒤질세라 영국 최고의 지휘자로 손꼽히는 토머스 비첨이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지휘대에 세웠습니다. 말하자면 ‘역사적 인물’의 반열에 오른 음악가들이 스쳐지나간 극장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에게 비스바덴극장을 소개하겠다고 이곳저곳에서 자료를 찾아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들여다볼수록 비스바덴극장의 역사와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결코 허투루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됩니다.


한국 성악가들의 기량이 뛰어난 것이야 어제 오늘이 아닙니다만, 이곳에서도 그런 위상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오페라 합창단 60여명 중에 한국 성악가가 열 명 가까이 됩니다. 비스바덴극장 뿐 아니라 독일에 있는 오페라극장 중에 한국 성악가가 없는 합창단은 아마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제가 교회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 하나도 프랑크푸르트 극장에서 합창단원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현재 극장을 책임지고 있는 우베 라우펜베르그 극장장은 2009년부터 쾰른극장 극장장으로 일한 분입니다. 베이스 박영두가 쾰른 오페라스튜디오 단원으로 입단해서 정단원으로 오르는 과정을 지켜본 분이기도 하지요. 2012년 쾰른 주의회에서 쾰른극장 운영에 개입하는데 반발해 사표를 던지고 비스바덴극장으로 옮겨 지금까지 극장장으로 수고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무대에 데뷔한지 십 년이 넘어 중견을 향해 가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경험이 일천한 박영두를 높이 평가해 끝내 비스바덴극장으로 옮기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오페라스튜디오 단원으로 출연했던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황제의 자비>를 보러 갔을 때 저희 내외에게 가장 좋은 좌석을 마련해준 일이 있습니다. 배려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가 차 한 잔 대접받았지요. 저는 우베 극장장이 유머가 많은 분이라고 느꼈습니다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느낌이 다를 수 있겠지요. 왜 아니겠습니까.


비스바덴극장은 매년 5월에 <International May Festival Wiesbaden>을 개최합니다. 이 페스티벌은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자극을 받은 당시 비스바덴극장 극장장이 황제가 온천을 찾는 시기에 맞춰 열도록 기획한 것이지요. 그래서 첫 번째 페스티벌은 1896년 5월 6-19일에 황제와 황후가 임석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처음에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연주되는 바그너의 작품을 올렸습니다만, 이후 1900년에는 베버의 작품을 올렸고 지금도 꼭 바그너 작품만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비스바덴 5월 페스티벌>은 1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중단되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열린 첫 번째 페스티벌부터 국제적인 축제로 확대개편 되어 그 이후론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오페라 뿐 아니라 발레ㆍ뮤지컬ㆍ연극을 포함한 명실 공히 세계적인 종합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https://www.staatstheater-wiesbad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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