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졸업하고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월급쟁이로 천수를 누리는 셈이다. 특별히 비결이라고 할 것은 없고. 젊었을 때 집에 와서도 회사 일 때문에 머리 싸매고 있는 걸 보면 아내가 고생을 사서한다고 타박하곤 했는데, 아마 그 덕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이야기하면 설명이 되어 상대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지만 문제가 일어나면 변명이 되어 양해를 구하기도 어렵고 내 신뢰마저 잃는다.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굳이 먼저 이야기해서 문제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감추는 게 적을수록 자신을 보호하는 힘이 세지더라. 살아보니 긁어 부스럼이 될망정 그게 낫더라는 말이다.
고등학교 때 몸이 아파 한 학기를 휴학한 일이 있습니다. 한창 예민할 나이이니 복학해서 한 해 후배들과 친구로 지내는 일이 쉬울 리 없었고, 그래서 두 해 내내 쉬는 시간에도 꼼짝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지요. 그때 두 해 동안 짝이 되어 함께 자리를 지켜준 친구가 있습니다. 같은 대학 같은 과로 진학했습니다. 그 친구나 저나 전공했던 분야에서 일했으니 은퇴할 때까지 같은 업계에서 밥을 먹고 산 셈이지요. 1972년 짝으로 만나 오십 년을 지척에서 지낸 친구가 오늘 아침에 별이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공부 못한다고 저를 꽤나 구박했습니다. 너는 그렇게 공부를 잘 해서 같은 과에 들어왔냐고 면박을 주기는 했지만, 대학에서도 그는 저보다 성적이 훨씬 좋았습니다. 제가 학점이 모자라 한 학기를 더 다니는 동안 그는 교수의 총애를 받으며 대학원 공부를 했고, 공기업에 들어가 중역으로 은퇴할 때까지 성실의 표본으로 살았습니다. 공부와는 담쌓고 놀기 좋아하던 저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직장인이 되고 어쩌다 보니 업계에서 조금씩 인정받게 되었는데, 그런 제 모습을 누구보다 기뻐한 게 그였습니다. 그렇기는 했어도 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공부도 지지리 못하던 게”라는 말로 시작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지요. 심지어 제 앞에서도.
대학입시 보기 며칠 전 그가 맹장수술을 해서 시험 당일 내내 부축하고 다녀야 했습니다. 수험번호도 바로 제 뒷번이었습니다. 그가 결혼할 때 함도 제가 지고 갔습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데 이골 난 악동들이었지만 한복 곱게 차려입은 새색씨에게 쪽도 못쓰고 끌려들어갔지요. 놀려 먹겠다고 노래 시켰다가 판소리 춘향가 한 대목인 ‘갈까보다’를 읊는 모습에 입만 벌리고 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작년 이맘때 항암치료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시경 검사가 귀찮아 이리저리 미루다 사단이 났답니다. 한 주 걸러 한 번씩, 그렇게 열두 번을 치료 받아야 한 사이클이 끝난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가 병원 가는 날짜를 적어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치료 끝날 때쯤 전화해 안부를 묻곤 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는 언제나 씩씩했고 밝았습니다. 증상을 느껴서 알 정도였으니 병이 이미 깊어진 것이지만, 그라면 잘 이겨낼 줄 알았습니다. 한참 쉬었다가 두 번째 사이클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졌습니다. 얼마 후 두 번째 사이클을 시작은 했지만 마치지를 못했습니다. 몸이 이기지 못하니 기력 먼저 회복해야 한다고 중단했답니다.
아픈 사람에겐 전화도 짐이 될까 싶어 한 달에 두 번 날을 정해놓고 전화를 했습니다. 지난달에 전화하니 받지를 않더군요. 몇 시간 지난 후 치료 받느라고 전화를 못 받았다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호흡이 어렵다고 뭔가 몸에 부착했다던 그게 탈이 났던 모양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잠깐 병원에 간 줄 알았더니 아예 입원을 한 거라고 했습니다. 전화를 마치고 돌이켜보니 언제부턴가 그의 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고통 없이 마지막을 잘 견뎌내기를 기도하고 있었더군요. 아마 항암 치료를 중단했을 그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엊그제 문자를 보내니 대답이 없었습니다. 몇 시간 기다리다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이 문자를 보내왔더군요. 제게서 전화가 왔다니 그냥 두라고 하더랍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 나기를 기다리고 있노라고 했습니다. 고통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별 고통 없이 편안하게 떠났다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 친구 이름으로.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는군요. 엊그제 통화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가도 힘들게 하지 않기를 잘했다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오래 전 새색씨가 짓궂은 함진아비들에게 불러줬던 춘향가 한 대목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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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까보다 갈까보네 임을 따라서 갈까보다
천리라도 따라가고 만리라도 따라 나는 가지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는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모두 다 쉬어 넘는 동설령 고개
우리 님이 왔다하면 나는 발 벗고 아니 쉬어 넘으련만
어찌하여 못 가는고
하늘의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년 일도 보건만은
우리 님 계신 곳은 무슨 물이 막혔건 데 이다지도 못 오시는가
사우디로 이사 올 때 책과 음반이 이삿짐 반을 넘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책을 뭉텅이로 버렸는데도 아직 그대로여서 귀국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큰 숙제로 남아있다. 천 장이 훌쩍 넘는 LP는 가져갈 일도 큰일일 뿐더러 가져가봐야 층간소음 때문에 마음 놓고 듣기도 어렵겠다. 그렇다고 평생 손때가 묻은 걸 버리고 갈 수도 없는 일이고.
읽고 난 책을 다시 읽는 일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매우 드문 것이 사실이고, 음반은 유튜브나 음원 파일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사방에 널렸다. 곰곰 생각하다가 아끼는 CD와 DVD 몇 백 장만 추리고 LP와 책, 나머지 음반은 모두 버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에 책이며 음반을 살펴보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담담했다. 진작 털어버릴 수도 있는 짐이었는데, 친구는 엊그제 별이 되었는데 나는 여태 이깟 것에 묶여 살았구나 싶어서.
아침마다 오늘도 가치 있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서 삶이 더 가치 있어진 것 같지는 않고 다만 부끄러운 일은 줄일 수 있었다. 유익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 다짐이 강박이 되어 나를 옭아매었다. 오늘부터는 내게 허락하신 분복을 마음껏 누리고 살겠다는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할까 한다.
약속 장소로 가는데 갑자기 지하철이 멈춰 섰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 때문에 한 곳에서 지하철이 멈췄고 그 여파가 전체 노선에 미친 것이다. 언제 운행이 재개될지 모르겠으니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라는 방송에 정거장을 나왔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길래 택시를 타려는데 앱으로 부른다는 소리만 들었지 해본 일이 없어서 길에서 허우적대다 간신히 약속 시간에 댈 수 있었다.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이해할 수는 있었다. 택시 기사와 이야기 끝에 장애인 시위 때문에 지하철이 멈췄더라 하니 대번에 비난이 쏟아졌다.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줬는데 뭘 더 하라고 그러느냐고 했다. 곧 내려야할 상황이라서 입을 닫고 말았다.
내가 조금씩 그들을 이해해가고 있어서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에 움찔했다. 그러면서 이 상황이 해결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하나 바뀌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스스로 교회를 지켰다는 이들이 있다. 교회를 위한 헌신이 아름답고 주인의식도 칭찬받을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 대부분은 주인의식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주인인 줄 착각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손님으로 여겨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반갑게 맞으실 그들을 구박하고 내치기까지 한다. 후환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 건지.
이전에도 배달을 시켜봤지만 지난번 다녀가고 두 해 사이에 그 양상이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이제는 일상 어느 것도 이와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어려워졌다. 아내가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걸 보니 없는 게 없고 값도 쌀 뿐 아니라 배달비도 따로 받지 않는다. 밤늦게 주문했는데 아침에 문 열어보니 이미 바깥에 놓여있었다. 주문하는 건 또 얼마나 쉬운지 그저 손가락 몇 번 까딱하는 것이 전부이다. 곧 중독될 거라는 친구의 충고가 빈 말이 아닌 모양이다. 절제가 필요하겠다.
엊저녁에 주문한 책을 아침에 받았다. 역자를 만나보기 전에 읽을 생각이었는데 깜빡 잊고 있다가 약속을 잡고서야 생각이 난 것이다. 주문하는데 예전에 없던 메뉴가 보였다. 배송 날짜를 고르라는 것이다. 빨리 받아볼 생각으로 ‘익일 아침 7시 이전’을 선택했다. 낱권으로 주문하는데다가 빠른 배송을 신청했으니 당연히 추가 금액이 붙을 줄 알았다. 그런데 덜렁 책값만 결제하란다.
놀라울 정도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지만 한 편으로는 지나치다 싶기도 하다. 채 이만 원도 되지 않는 책 한 권을 배송비도 받지 않고 주문한 다음날 새벽에 배송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고 예전보다 책값이 오른 것도 아닌데. 급하게 책을 받아야 할 경우가 있기는 하겠다. 하지만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데 누군들 다음날 배송을 마다할까. 그런 서비스가 책을 만드는 사람에게 비용 부담을 더하고 누군가 새벽을 가르고 뛰어다니게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배송업체야 반가워할 일이겠지만.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권리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은 누구의 권리도 침해하거나 제한하지 않습니다. 차별이 권리일 수 없는데 차별금지법이 어떻게 권리를 침해하고 제한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