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by 박인식

전문가 (2021.08.01)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어느 일이든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쉽게 설명할 수 없으니 말이다. 거기에 알아듣기 쉬운 비유로 이해를 돕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그것은 타고난 재주라기보다는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매사에 넓고 깊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적절한 비유를 찾아내기 어렵고, 매사에 넓고 깊게 관심을 갖는다는 건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질 인 (2021.08.02)


아이가 평생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살면 좋겠다 싶어 이름을 혜인이라고 지었다. 아이에게 어질다는 뜻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려고 적절한 독일 말을 찾다보니 ‘관대하다, 친절하다’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제대로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에게는 어질다는 개념이 없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웃을 위한 기도 (2021.08.03)


병으로 고생하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다가 병 낫기를 구하는 것보다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경험하기를 구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 같아 멈칫했다. 물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는 해도 그것이 병 낫기를 구하는 것보다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버릇 (2021.08.05)


이가 시원치 않아서 한동안 음식을 먹을 때 오른쪽으로만 씹었다. 아이들에게 갔다가 이웃에 한국인 치과의사가 계셔서 잘 치료했다. 치료 마치고 보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왼쪽으로만 씹는다. 의도적으로 오른쪽으로 씹으려고 하는데도 잘 안 된다. 불과 몇 달 동안 생긴 버릇 하나 고치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



목표 (2021.08.05)


생명을 허락하시는 동안 건강을 잘 지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데 쓰리라.



평가 (2021.08.09)


삶은 걷는 속도나 걸은 거리가 아니라 걸어간 방향으로 평가된다.



책임 (2021.08.11)


한 번은 준공 단계에서 실적 정산으로 사업비가 감액되었다. 발주처조차 부인할 수 없는 불합리한 제도였지만 다행히 준비한 자료와 방어논리가 받아들여져서 감액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준공하고 사업 결산을 하는데 회계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액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그래서 예상했던 것보다 얼마나 감액 폭을 줄였는지 설명했음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언성이 높아졌고 급기야는 서로 얼굴을 붉히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상대의 비수와 같은 한 마디에 우리 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적자가 누적되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면 그건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정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백신 접종률은 계획을 훨씬 밑돈다. 하루 확진자가 이천 명을 넘어섰는데도 아직도 정점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는 암담한 전망마저 나온다. 나는 백신 접종에 간여한 모든 이들이 최선을 다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고 접종률이 계획에 미달하는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관계자 모두의 분발을 기대한다.



새 날 (2021.08.12)


아쉬움이 남는 어제를 산 사람들에게 새로운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는 건 크게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숙제 (2021.08.12)


일주일에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사흘을 정해놓고 운동을 하고 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하루쯤 당기거나 밀어서라도 꼭 정한만큼은 지킨다. 어제 운동을 했어야 했는데 만사가 귀찮아 오늘로 미뤘다. 미루니 숙제가 되었다. 오늘은 워낙 운동을 하지 않는 날인데 운동을 하려니 군일 같아서 퇴근하는 내내 망설였다. 결국 이번 주는 한 번 건너뛰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숙제는 미루면 안 된다.



쓰기 나름 (2021.08.16)


코로나에 대해서도 그렇더니 이번 아프간 사태 역시 마찬가지로 매스컴보다 페북에서 훨씬 빠르고 깊이 있는 글을 접한다. 심지어 궁금하거나 이해가 가지 않으면 직접 물어볼 수도 있다. 페북의 폐해를 지적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매사가 그렇듯 쓰기 나름 아닌가.



이슬람의 틀 (2021.08.18)


사우디는 몇 년 전부터 여성을 옥죄던 각종 억압정책을 하나씩 풀고 있다. 여성 운전을 허용했고, 대의기관인 슈라 위원회에 여성 의원이 선출되었으며, 각종 공직에 여성이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여성의 스포츠 관람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 엊그제 일인데 작년에 24팀으로 이루어진 여성 프로축구리그가 출범하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이슬람 가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여성 활동을 억압하던 사우디 정부가 “쿠란(이슬람 경전)에 그런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각종 억압정책을 풀었다는 사실이다.


카불에 입성한 탈레반 대변인이 어제 ‘이슬람의 틀 안에서(within the framework of Islam)’ 여성 활동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우디 정부의 조치를 십년 넘게 지켜본 내겐 이 말이 여성의 사회적인 활동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허용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저런 조건을 전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치병 환우 돕기 (2021.08.20)


오래 전에 교회에서 난치병 환우 돕기 음악회를 개최한 일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함께 걱정하는 일이니 반응은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회성 행사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이를 위해 청년부원들과 함께 정부의 각종 지원제도를 확인하고 각 사회단체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았다.


할머니와 사는 초등학교 아이가 백혈병에 걸렸는데 형편이 어려워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는 이혼한 후 집을 나가 연락이 닿지 않고, 할머니가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형편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지만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백혈병은 정부에서 난치병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로 인정되면 치료비 거의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동사무소 복지담당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럴 경우 몇 가지 절차를 거쳐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까다롭기는 했지만 청년부원들이 백방으로 뛰어 결국은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받고 난치병 치료비 지원도 확보했다. 안타깝게도 그 사이에 아이는 혈소판 공여자가 나타나지 않은 채 병세가 악화되어 별이 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이런 제도적인 지원정책 말고도 각종 기업이나 사회단체에 제공하는 지원 프로그램도 상당히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런 지원정책을 알아보는 일도 쉽지 않고, 필요한 자료를 갖춰 신청하는 일이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지원 프로그램의 경우 상황을 설득력 있게 잘 정리해 심사에 통과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런 건 청년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 후로도 청년부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돕고는 싶은데 가진 것이 없어서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도 가능한 일이 적지 않다. 평생 엔지니어로 살다보니 지금까지 손에서 실무를 놓지 않고 있다. 은퇴하고 나면 씀씀이는 줄어들겠지만 시간은 주체하지 못할 만큼 많아질 것이고 다행히 아직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으니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의도와 책임 (2021.08.21)


내 행동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면 그 행동이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라 해도 내 책임이 면해지는 건 아니다.



사람 보는 눈 (2021.08.21)


비록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심성 하나는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다.



나이가 벼슬 (2021.08.24)


나이가 벼슬이냐는 비난은 옳지 않다. 나이는 벼슬이 맞다. 그것만큼 지혜를 얻게 만드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욕을 보여서 그렇지.



도랑 치고 가재 잡고 (2021.08.29)


세 들어 살던 분이 이사 가서 집을 내놓으려다 보니 임차권이 걸렸다. 언제 한국에 돌아갈지 모르는데 세를 놓으면 2년은 집을 비워달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이웃 한 분이 몇 달만 말미를 주면 계약기간에 상관없이 비워줄 테니 대신 월세로 빌려달라고 했다. 출석하는 교회에서 코로나 때문에 갑작스럽게 귀국하는 선교사들의 숙소가 마땅치 않아서 걱정하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양해를 해준다고 해도 계약기간 중에 비워달랄 수는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집을 비워둘 수도 없는 일이어서 그냥 사용하고 우리가 필요할 때 비워달라고 했다. 얼마 후 그 교회에서 세간이며 부엌살림을 들여놓고 잠시 귀국한 선교사들께서 언제든 맨 몸으로 들어와 머물 수 있게 만들었다면서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그러면서 언제든 한국에 다니러 오면 부담 없이 숙소로 쓰라고 했다.


아내가 갑자기 병원에 가야할 일이 생겨서 서울에 가게 되었다. 아우들은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하는데, 하루 이틀이면 모를까 한 달씩이나 바쁜 사람들 폐를 끼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숙소를 알아보았다. 그러다가 혹시 집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보니 마침 한 달 정도는 빈다고 했다.


어제 아내가 집에 들어가니 세간은 물론 쌀도 가득하고 양념까지 다 준비되어 있어서 장만 봐오면 내 집처럼 편안하게 쓸 수 있게 되어 있더라고 했다. 형수가 온다고 걱정돼서 잔뜩 싸들고 온 아우들도 모두들 놀랐더란다. 요즘 세간 갖춘 오피스텔 한 달 빌리려면 비용이 적지 않다는데, 덕분에 돈 걱정 하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생색은 생색대로 내고 실속도 차렸으니,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고.



밀라논나 (2021.08.29)


칠순의 노인 밀라논나는 자기 몸을 끔찍이도 아낀다. 하지만 약은 어지간하면 먹지 않는다. 콜레스테롤이 높다고 하면 약 먹는 대신 한 시간 걷고, 비타민 D가 부족하다고 하면 햇볕을 충분히 쬔다. 왜 그렇게 유별난지 물으니 “내 몸이 아니잖아요. 죽으면 드려야 하니까.”라고 대답한다. 훗날 자신의 장기를 기증받을 사람을 생각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아내와 함께 장기를 기증했지만, 나이 들어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건강관리를 위해 기를 쓰고 운동하지만, 장기를 잘 넘겨줄 수 있도록 건강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이제 몸을 건강하게 간수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고수 (2021.08.31)


오래 전부터 말 수를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두 번 말하지 않는 건 물론 가급적 묻는 말에만 대답하되 그것도 가능한 짧게 말하려고 한다. 어느 분이 자기는 두 번 물어야 대답한다는 글을 올렸다. 한 번은 예의로 묻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무릎을 쳤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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