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유규진
북랩
2020년 3월 20일
며칠 전 자살은 극단적 ‘선택’일 수 없다는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조교수의 책을 읽었다. 그는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살 생각을 떠올리고 나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평균 1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10분만 견디면 자살의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10분을 견디지 못할 경우 누군가 10분을 견디게 만들면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어서 그는 어떤 조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언젠가 정부에서 자살을 예방한다면서 번개탄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그것은 실제로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효과가 입증된 강력한 자살예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농약 판매를 까다롭게 하고나서 농촌 자살률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 책을 읽는 중에 ‘SNS 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이라는 이에 대한 보도를 접했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을 하면서 퇴근 후에 고군분투하며 1인 시민단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가 지난 14년 동안 각종 SNS에 올라온 글 중에서 자살 징후를 포착해 구조한 이가 수천 명에 이른다.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구조 활동을 벌였다는데, 대상을 청소년으로 한정한 것은 아니고 청소년의 SNS 사용빈도가 높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동안 그가 벌여온 구조 활동을 정리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청소년의 자살 실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구조 활동 내용과 활동을 해오면서 알게 된 자살 징후와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자살 징후를 보인다고 해서 모두가 자살을 시도하는 게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할 경우 자칫 경찰력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기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공간에 자살 사이트가 상당수 운영되고 있으며, 개중에는 단속을 피해 해외 서버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자살 사이트에서는 자살 방법에 대한 정보를 얻고 동반 자살할 사람을 찾기도 한다.
저자는 자살 사이트뿐 아니라 각종 SNS에 접속해 자살 징후를 보이는 글을 찾는 것으로 구조작업을 시작한다. 계정명이나 대화명, 해시태그에서부터 자살 징후를 찾아내고 글의 내용이나 함께 올려놓은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서도 자살 징후 뿐 아니라 실행 가능성까지 판단한다. 글을 올리는 시간도 놓치지 않고 챙겨본다. 대체로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올라오는 글이 많은데, 밝기 전에 모두 지우거나 비공개로 돌리기 때문에 누구도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없으며, 그래서 저자는 그 시간에도 잠들지 못한다.
이렇게 자살 의심자가 발견되면 그와 관련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그 의도를 파악한다. 사이버 친구가 많으면 실행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해시태그를 많이 사용하면 자신의 계획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이고, 죽음에 대한 글을 과거부터 반복해서 올리면 실행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방식으로 실행 가능성이 어느 정도 높은지 분류하고, 자살이 임박한 상황인지 실행 시기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인지 또는 자살 결심이 번복될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한다. 그런 후에 댓글이나 메시지로 글을 올린 이와 접촉을 시작해 자살을 실행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면 그 시기가 임박한 것인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지, 번복할 가능성은 없는지 살핀다. 실행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면 바로 신고하지 못한다. 경찰이 출동해도 징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이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 달리 손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저자가 신고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제삼자가 직접 본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 자살을 시도하려 한다고 신고했다면 누구든 그 진위 여부나 의도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경찰에서 저자를 이상하게 여겨 신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저자 혼자 실질적으로 모든 일을 감당하고 있으면서도 ‘SNS 자살예방감시단’이라는 시민단체로 등록했다고 한다.
자살 징후를 보이는 이를 확인하면 저자가 즉각 그와 관련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살이 임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그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 할지 특정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 자살을 시도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열 명 중 아홉 명은 어떤 형태로든 경고신호를 보낸다. 그렇다고 경고신호를 보내는 이들이 모두 자살을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죽는다는 내용의 글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이 올라오는데, 저자는 그 중 상당수가 죽을 마음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 준비를 했고, 어떤 도구를 준비했는지, 왜 자살하려 하는지, 언제 죽으려 하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경찰에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차근차근 주변을 정리하는 사람은 실행에까지 시간이 있을 뿐 아니라 정리 과정에서 심리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고, 실행 가능성은 높은데 주변정리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실행이 임박한 것이므로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저자는 자살을 실행하기 전에 이런저런 형태의 암시를 남기는 건 살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는 말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니 대신 연락을 취해달라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대화부족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과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래서 친구에게 털어놓지만 그런 형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친구는 그저 힘내라는 말만 하고 부모나 학교에 알리지 않는다. 학교나 부모에게 알리는 게 오히려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런 형편에서 내일도 똑같은 일상을 맞는 것이 괴롭고, 그럴 바에야 하루라도 빨리 편안해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청소년이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로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이 으뜸으로 꼽힌다. 가족 사이의 갈등이나, 학교나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부당한 차별대우가 뒤를 잇는다. 가난하다는 것도 이유에 들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학교마다 반드시 자살예방을 위한 상담실이 만들어져야 하고 사회에도 그런 상담 기관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놀라운 것은 학교폭력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 역시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학교폭력예방법에 가해자 관리방안도 아울러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모두가 그런 이들의 아픔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앞서 인용한 나종호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의 저서에서도 저자는 ‘동정’을 뜻하는 sympathy는 감정(pathy)을 함께(sym) 느끼는 것이지만, ‘공감’을 뜻하는 empathy는 감정을 타인의 안에(em) 들어가서 느끼는 것이며, 그래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동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인 유규진 단장의 기사를 소개한 어떤 이는 이 책은 그저 관심 있는 독자가 읽을 책에 그쳐서는 안 되고 자살상담 기관에 비치해놓고 상담가이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럴 정도로 저자는 이 책에서 실제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내내 안타까웠던 것은 이제 마흔 넷인 저자가 지난 14년 동안 (서른이라는 이른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다) 급여가 수입의 전부인 상태에서 이 일을 온전히 사비로 꾸려왔으며 그로 인해 셋돈을 담보로 소액 대출을 받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저자의 이런 행동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최후의 10분을 견디게 만드는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의 행동으로 살려낸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른다지 않는가.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야 말로 ‘사람을 갈아 넣어’ 급한 불을 꺼왔다. 하지만 그런 희생을 바탕으로 꾸려나가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서있지 않은가. 저자의 값있는 수고와 헌신이 저자의 생활을 염려하게 만들지 않게 되기를 희망한다.
글을 쓰고 나서 보니 저자의 신고가 어떻게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미진했다. 저자는 자살이 임박한 사람이 확인되는 대로 서울경찰청 112 상황실에 신고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저자가 특정한 위치로 출동해 자살하려는 사람을 제지하고 가족에게 돌려보낸다. 저자의 헌신과 경찰의 노고가 수천의 목숨을 구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