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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Review

그러니까 영국

영국 속살 들여다 보기

by 박인식

윤영호

두리반

2021년 7월 2일


내게 영국은 동화 속의 나라였다. 황금마차 타는 여왕이 계시고,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는 왕궁과 해자로 둘러싸인 고성이 있고, 메리 포핀스가 우산 타고 날아다니는 곳이었다. 출장길에 몇 번 들르고 아내와 여행으로 며칠 머무르기는 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아주 작은 부분을 보았을 뿐이다. 아내와 런던 여행을 계획하면서 안내 책자를 외우다시피 했어도 거기에서 영국의 속살을 볼 수는 없었다. 잠깐 잠깐 업무로 만난 영국인들에게서 받은 느낌이라고는 생각보다 영국식 영어가 쉽지 않았다는 정도. 딱히 특징이라고 할 만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윤영호 선생께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런던라이프>는 영국이 낯선 내게 영국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안내서가 되었다. 그냥 읽고 넘기기에는 아까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작년 여름에 책으로 나왔다. 아쉽게 전자책으로는 나오지 않아 이제야 읽게 되었다. 윤영호 선생께 언제 전자책이 나오느냐고 물어보니 시간이 좀 걸릴 거라면서 굳이 사우디까지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사우디 형편에 언제 배달될지도 모르겠고 책을 그냥 받아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어서 뜻만 감사히 받았다.


저자는 책을 발간하면서 제목을 <여왕은 위로하고 권력은 겸손하며 개인은 자유롭다>로 정할 생각이었다. 저자가 말한 대로 제목으로 쓰기엔 너무 길고 독자의 관심을 끌기도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왜 그런 제목을 생각했는지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것이 책의 골격이자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저자의 정의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카자흐스탄에서 법인을 운영했던 저자는 “길을 걷는 개인에게 불시에 신분증을 요구하는 카자흐스탄이 있고, 신분증 자체가 없는 영국이 있으며, 그 사이 어딘가 우리나라가 있다”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개인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을 이어나간다.


읽다 보니 ‘카자흐스탄과 영국의 중간 어디쯤 있다는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많은 카자흐스탄보다는 신분증이 아예 없다는 영국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신분증 없이 투표할 수 있다니! 신분증 없이 투표할 수 있는 나라라니 관공서 출입할 때도 항공기 탑승할 때도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는 건 오히려 당연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민주주의의 발상지라는 영국에서 ‘투표의 원칙’을 깨고 대리투표를 허용한다는 점이다. 가족은 인원수에 관계없이 대리 투표할 수 있고, 가족이 아닌 경우는 두 명까지 대리 투표가 가능하다. 이해하기 몹시 어렵지만 굳이 이해하자면 이는 자유의 차원이 아니라 신뢰와 존중의 차원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영국의 복지국가 모델은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요구하는 대신 정부에 요구하는 것도 최소화’하는 영국의 자유방임주의 정서에 배치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경제적 붕괴를 맞은 가정이 많아지면서 국민의료보험ㆍ연금ㆍ실업수당ㆍ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해 영국은 명실 공히 복지국가로 올라선다. 세월이 흘러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자 대처 수상은 복지국가 모델이 영국의 자유방임주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강력한 반대를 물리치고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는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으려면 정부에 요구하지 말라는 것인데, 내가 아는 한 대처 수상은 시종일관 이런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민주주의의 중심에 영국의 마그나카르타와 휘그당ㆍ토리당이 있었다. 지금은 보수당과 노동당 양대 정당이 영국 정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이 둘 사이의 간격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왕당파 귀족과 상류층으로 구성된 토리당(보수당)과 의회파 평민으로 구성된 휘그당(자유민주당)이 경쟁하다가 20세기 들어서면서 휘그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고 그 자리를 노동당이 채웠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1900년에 창당된 노동당은 1920년이 되어서야 보수당과 함께 양당으로 자리 잡았다. 기나긴 영국 민주주의 역사로 보자면 신생정당인 셈이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는 주류 정당만 해도 수십 개에 이르는데 말이다.


영국인들이 정치인의 추문을 대하는 태도는 그저 엄격하다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딱히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사생활에 지나지 않는 일로 사임하는 걸 보면 엄격한 게 맞는데, 꼼짝없이 사임하겠구나 싶은데도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넘어가는 걸 보면 기준이 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저자는 거짓말보다는 위선을 더 큰 수치로 여기는 영국인의 특성을 전한다. “거짓말에는 좋은 거짓말 필요한 거짓말이 있지만 위선에는 좋은 위선도 필요한 위선도 없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까다로우니 대중의 눈에 나지 않으려면 권력이 겸손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한동안 왕실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었는지 그런 뉴스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여왕을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많은 영국인들이 사랑한다기보다는 보고 싶다던가, 왕실을 볼 때마다 왠지 자기 자신이 격조와 품격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던가, 여왕과 왕실 때문에 국민이 통합되어있다고 대답한단다. 여왕이 없으면 외로울 것 같다거나, 여왕은 돈과 권력과 무례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왕실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통틀어 저자는 여왕을 ‘돈으로는 살 수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영국인들의 이런 시선은 ‘여왕’이기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닐까? 국왕이 남성이라면 ‘격조’와 ‘품격’과 ‘보호’를 느끼게 하는 대상으로는 어울리겠지만 ‘사랑’과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라고 하기는 조금 어색하지 않은가? 저자도 요즘 들어 왕실 폐지 여론이 잦아든 것 같다고는 하는데, 여왕이 떠나고 찰스 황태자나 윌리엄 왕자가 즉위해도 그런 정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일하던 현지법인에 인도 직원이 가장 많았고 파키스탄 직원이 뒤를 이었다. 두 나라가 상극이어서 함께 일하면 안 된다는 ‘상식’을 이미 직원들을 같은 현장에 보내놓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다행히 큰 마찰은 없었다. 사우디에는 한때 인도 사람이 이백만 명이 넘기도 했다. 인도 사람이 일하고 있지 않은 분야가 없다는 말이다. 그들에게서 뭔가 협조 받을 일이 있을 때 인도 직원들을 통해 접촉하려했지만 생판 남인 내가 접촉하는 것만큼도 진전이 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인도 커뮤니티의 영향력은 규모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파키스탄 사람들은 서로 간에 아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중동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저자는 인도 사람과 파키스탄 사람이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인도 사람은 학업성적도 높고 소득도 높을 뿐 아니라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에 파키스탄 사람은 학업성적이나 소득이 인도 사람보다 크게 낮으며 소규모 자영업자가 많단다. 그리고 이 차이가 종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한다.


“파키스탄 사람은 무슬림으로 온전히 이슬람의 가르침을 따라 생활한다. 반면에 인도 종교인 힌두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삶의 형태에 가깝다. 파키스탄 사람은 무슬림 문화를 고수하려다 보니 영국 문화에 융화되지 않고, 자연히 자신들만의 네트워크에 갇혀 있다. 반면에 인도 사람은 힌두 문화를 갇혀 있지 않기 때문에 영국인들과 교류를 꺼리지 않으며, 그 결과 영국 문화에 쉽게 동화되고 영국 사회에 구성원으로 쉽게 녹아든다.”


이런 차이가 학업성적의 차이, 소득의 차이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고, 이런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은 월드컵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네 팀이 출전한다. 영국은 축구의 모국이라는 이유로 국제축구연맹에서 네 지역 축구협회가 각각 가입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이 각 지역 간의 역사적 적대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렇다면 네 지역은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적대적이라는 말이 아닌가. 하긴 스코틀랜드 독립 때문에 시끄럽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브렉시트 때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고도 하더라마는.


영국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다. 교외 한적한 고성에서 하룻밤 묵어봤으면 좋겠고, 하이드파크에 도시락 바구니 들고 가서 자리 펴놓고 느긋하게 책을 읽어보고 싶고, 무엇보다 런던의 음악을 즐기고 싶다. 런던에 갈 때 짧은 일정 속에서도 공연장을 빼놓지 않고 찾았다. 하지만 웨스트엔드 무대의 <미스 사이공>은 표가 없었고, 코벤트가든과 로열앨버트홀에서는 공연이 없었다. 언제 한 번 로열앨버트홀에서 열리는 프롬스 축제를 보러 가겠다고 벼르고는 있는데, 런던이 앞뒷집도 아니고. 그런데 이번 달 <월간 객석>에 실린 노먼 레브레히트 칼럼에서 올해 프롬스 축제가 마지막일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칼럼에서 BBC 방송 측은 프롬스 축제를 방영하는 BBC 4채널의 송출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BBC 산하 여섯 개 오케스트라에게 독자 생존 방안을 요구했다고 전하고 있었다. 프롬스 홈페이지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고 다른 곳에서도 딱히 그럴 사정을 짐작할 만한 기사도 찾지 못했다. 부디 무탈하게 잘 해결되기 바랄 뿐이다. (‘프롬스 축제’에서는 로열앨버트홀에서 여름 8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최고 수준의 클래식 공연 무대가 펼쳐진다. 객석은 좌석 5,400석 입석 1,500석이며 관람료는 7천 원이다.)


국경을 마주한 나라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가 없단다. 비록 국경이 직접 맞닿아있는 건 아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소문난 앙숙이다. 저자는 영국은 얄타회담과 포츠담회담에 참석하려는 드골을 끝내 저지했고, 프랑스는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려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며 양국의 앙숙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몇 나라의 독특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천국에는 영국 경찰관과 프랑스 요리사와 독일 수리공이 있고, 지옥에는 독일 경찰관과 영국 요리사와 프랑스 수리공이 있다.”


“영국에는 풍부한 콘텐츠와 자유가 있고, 프랑스에는 세련된 예술의 품격이 있으며, 독일에는 높은 삶의 질과 효율성이 있고, 이탈리아에는 감탄할만한 화려한 역사가 있다.”


유럽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나저나 저자는 영국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 읽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치와 사회제도 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거의 백과사전식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정치와 사회제도는 저자의 전공분야이니 그렇다고 쳐도 관심만으로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그만큼 이해하고 있는지 놀랍다. 덕분에 편하게 앉아서 짧은 시간에 영국이 지닌 속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저자의 <런던라이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조만간 이의 속편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런데 저자가 “이것이 영국이다” 할 만한 장면을 한두 컷 고른다면 어떤 게 될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여기를 보지 않으면 영국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뭐 그런 곳이나 그런 모습? 그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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