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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ok Review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by 박인식

아비지트 베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이순희 옮김

생각연구소

2012년 5월 15일


어렸을 때 매우 가난하게 자랐다. 넉넉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끼니를 밥 먹듯 건너뛰었다. 그래서 나는 가난을 안다고, 굶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해한다고, 다시 그런 가난이 닥쳐도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난의 구체적인 모습을 맞닥뜨리면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닫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저자는 경제학에서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상태’를 가난으로 분류한다고 말한다. 오래된 통계이기는 하지만 2005년 기준으로 세계인구의 13%인 8억6,500만 명이 이에 해당한단다. 4인 가족이라면 한 달에 120달러, 고공행진을 벌이는 달러 값을 감안해도 16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가난할까 싶지만, 사우디 청소 노동자 한 달 급여가 120달러였다. 컨설팅 하던 일 때문에 그들의 캠프를 보게 되었는데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다. 입찰준비 하느라 빌렸던 버스의 기사는 그보다 훨씬 많은 500달러를 받기는 했지만, 그 중 50달러를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집에 보낸다고 했다. 출장기간동안 수고했다고 50달러를 쥐어주니 눈물을 글썽였다. 모두 가난한 주변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도 가난한 이들이 많다. 그래도 그 정도는 면하지 않았을까?


인도 가난한 마을에서 자라난 저자는 가난은 ‘단지 돈이 부족한 상태’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난은 인간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어 가난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가난은 아무리 총명한 사람도 교육 받지 못해 성장할 수 없게 만들고, 운동 소질이 뛰어난 사람도 영양 부족으로 실력을 보일 수 없게 만들고, 뛰어난 사업구상을 가지고도 창업자금이 없어서 시작도 하지 못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경제학에서는 가난을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의 결과라고 여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그에 반하는 경제학자의 주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제목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든 것은 모두 특별하거나 개인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예외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예외적인 사례는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게 마련이다. 제목이 뜻하는 바를 뒷받침할 사례라면 좀 더 일반적인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보다는 가난이 무엇이고 그들은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설명하는데 거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야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타고났다. 가난한 사람은 기회를 잡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참신한 발상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혁신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타고난 기업가라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결국 제목은 반어법인 셈이지만, 솔직히 말해 낚였다는 생각도 든다.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저자는 경제학에서 빈곤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많은 연구자들이 가난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가난의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나마 경제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빈곤에 대한 연구의 깊이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경제학자들의 가난의 주체로서 경험하지 못하고 객체로 이해하다 보니 가난을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라며 유감을 표한다. 가난을 경험했다는 내 관점에 비추어 봐도 그렇기는 하겠다.


저자가 열거한 사례 따라가 보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면서 생계를 책임진 남성이 병에 걸려 생계가 위태로워졌다. 어린아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여성들은 병약한 아기를 낳는다. 오로지 가난해서 어린아이들이 교육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초등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지만 결석률은 14~50%까지 차이를 보인다. 부실한 건강 때문이기도 하고 (케냐에서는 학교에 구충활동을 시행한 후 결석률이 낮아졌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 싫어하거나 부모가 그런 아이들을 억지로라도 학교에 보낼 마음조차 없기 때문인데, 부모로서는 어린아이들이 벌어오는 작은 소득조차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그렇다. 중등교육으로 가면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중등학교는 학비도 들고 학교에 갈 10대가 어린아이보다 노동력이 크고 소득에 기여할 기회도 있어서 부모가 포기해야 하는 소득이나 취업경험의 가치가 어린아이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10년 후 자녀의 예상소득을 고려해 돈을 빌려서라도 교육을 시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난한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된 뒤에야 비용을 상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당장 비용이 발생하는 교육에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은 덜 가난한 사람에 비해 훨씬 위험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설령 같은 강도의 불운이 닥쳐도 그 파장은 더 크다고 말한다. 소비를 줄이는 것은 애초 소비 수준이 낮은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평균적인 가정에서 소비를 줄여야 할 경우 휴대전화 사용시간을 줄이거나 고기를 덜 먹거나 아이를 등록금이 저렴한 학교에 보내는 방법을 쓸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필수적인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인도 어느 지방에서는 극빈층 가정 가운데 45%가 성인의 식사량을 줄여야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불운으로 임금이나 소득이 감소하면 사람들은 일을 더 많이 하려 든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오히려 문제를 키운다. 경기가 나쁠 때 가난한 노동자가 모두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어 하면 경쟁이 심해져 임금이 하락한다.


저자가 열거한 사례 중 인도네시아에서는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그 가정의 소비가 20% 감소했고, 필리핀에서는 주민 간의 연대가 위중한 질병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았는데 입원비나 치료비가 대체로 비싸서 작은 도움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위중한 질병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난한 가정을 몰락으로 밀어 넣는다. 의료혜택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우리나라에서도 은퇴자들이 서민의 삶에서 빈민의 삶으로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위중한 질병이라고 하지 않은가.


가난한 사람은 채무불이행 우려 때문에 융자를 얻기도 어렵고 융자를 얻어도 높은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대출금을 제대로 회수하려면 대출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확인해야 하고 대출한 이후에도 계속 대출자를 주시해야 하는데, 이때 소요되는 비용은 대출금 규모에 비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출금이 적을수록 소요비용은 상대적으로 커지고 결국 이율이 높아진다. 이율이 높아지면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다시 이율에 전가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며 이율이 폭발적으로 높아진다.


어떻게 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가?


저자의 주장과 열거하는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가난을 벗어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처럼 보인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불과 몇 십 년 만에 원조 받은 나라에서 원조국으로 탈바꿈했다. 그런 사례를 보면 원조가 선순환에 시동을 걸어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을 감안하면 원조가 독자적인 해결을 막고 관련 기관을 부패로 몰아넣어 오히려 기반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동기부여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저자는 그 원조가 없었다면 재앙으로 이어져 괴멸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며 원조를 옹호한다.


저자는 교육을 제대로 받는 것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교육을 받지 않거나 교육의 질이 낮은 것은 부모의 관심 부족 때문이며 이는 현실적인 이득이나 수익이 낮기 때문이므로 실제로 교육이 주는 이득이 늘어나면 국가가 간섭하지 않아도 취학률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젊은 여성을 고용하는 아웃소싱 콜센터가 들어선 이후 3년이 지나자 다섯 살부터 열한 살 사이의 여자아이 취학률이 5% 높아졌고 체중도 늘어났다. 부모들이 여자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여자아이를 돌보는 데 전보다 많은 투자를 했다는 말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재학기간이 1년 늘어나면 임금이 약 8%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와 비슷하다고 한다. 수입의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 뿐 아니라 말라위에서는 여자아이들이 학업을 지속한 덕분에 10대 임신율이 낮아졌고 케냐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결국 교육받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사업을 유치해 인력 수요를 늘이고 더불어 공급도 늘어나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인데, 교육받은 노동력이 없는 지역에 과연 그런 사업장을 유치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인지 모르겠다. 내게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으로 들린다.


저자는 인도의 거대 IT기업 인포시스가 자격이 없는 사람도 언제든 찾아와 능력을 테스트해볼 수 있도록 상설 테스트 센터를 마련한 사례를 인용하는데, 이곳에서는 교과서 암기능력이 아니라 사고력과 분석력에 초점을 둔 테스트를 진행해 결과가 좋은 사람은 일단 훈련생으로 발탁하고 훈련 성적이 좋으면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다. 저자는 이 시스템을 교육체계의 허점 탓에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고 매우 긍정적으로 표현하지만 과연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에서 그 일을 감당할 업체가 나타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저자는 좋은 정치, 좋은 정책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정치가 올바르면 좋은 정책은 저절로 출현하고 반대로 정치가 올바로 서지 않으면 좋은 정책을 입안해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패는 빈곤의 덫이다. 빈곤은 부패를 낳고 부패는 빈곤을 낳는다는 말이다. 부패는 물론 단순한 직무유기도 엄청난 비효율을 낳는다. 교사와 간호사가 수시로 결근하는 상황에서 교육정책이나 의료정책이 제대로 실행될 수 없다. 과적차량을 운전하는 화물차 운전자에게 뇌물을 받고 눈을 감아주면 망가진 도로를 건설하느라 들은 수십억 달러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정치가 올바르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게 좋은 정치가 아닐까? 그러면 지금까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나라는 정치가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인데, 그 올바르지 못한 정치는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저자는 1980년대 중국 사례를 인용하며 비록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아도 민주주의를 도입했을 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1980년대 초 중국 농촌지역에 마을 단위의 선거가 도입되었다. 초기에는 중국공산당이 후보를 직접 지명했기 때문에 대개는 별다른 변화 없이 공산당 지부가 지명한 서기들이 마을의 행정을 맡았다. 더구나 무기명 투표를 보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투표함에 조작된 표가 투입되는 일도 있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절차상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혁은 마을 대표의 책임감이 강화되는 등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마을 단위의 선거를 시작한 이후 마을 대표는 한 자녀 정책 증 주민의 반발이 큰 중앙정부 정책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저자의 결론에 이르다 보니 허탈하기까지 하다. 교육과 정치를 정상화시키지 않고는 가난을 탈피할 수 없다는 말인데, 나는 가난을 탈피하는 일보다 교육과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더욱 어려울 것 같아 보이니 말이다. 저자도 그런 결론이 미진했는지 아래와 같은 글을 덧붙였다만, 그것도 허망하기는 다르지 않다.


“현실적으로 정치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거대한 문제에 대해 거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주변으로 눈을 돌리면 제도와 정책을 개선할 여지는 많다. 모든 사람이 각자 처한 상황 및 환경을 심사숙고하면 부패나 근무 태만 때문에 왜곡될 여지가 없는 좋은 정책과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지만 일단 자리를 잡아 탄력을 받으면 꾸준히 발전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조용한 혁명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않는다.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그 방안이라는 것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여겨진다. 가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왜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정도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다. 사백 여 쪽에 달하는 책을 읽은 결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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