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by 박인식

인구 (2018.03.01)


작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05였다고 한다. 신생아가 재작년에 40만 명이었던 것이 작년에는 35만 명대로 떨어졌다는데, 낮은 출산율도 문제지만 인구감소도 너무 빨라 도무지 무슨 대책을 세워야할 지 막막한 모양이다. 인구감소에 따른 충격을 생각하기 전에 과연 이 사회가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겠는지 걱정해야 할 지경이 아닌가 싶다.


인구는 ‘정해진 미래’라고 한다. 미래가 이미 정해졌으니 무슨 정책을 세운들 짧은 시간 안에 이를 회복시킬 수 있겠나. 이런 관점에서 어제 국회를 통과한 ‘주 52시간 근무’ 법령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펼쳐온 정책이 육아환경을 개선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에 개정된 노동법은 젊은이들이 결혼할 수 있는 여건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을 것이 아닌가.


개정된 노동법으로 중소기업이 큰 부담을 짊어지게 되었다. 어쩌면 이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영세기업이 상당수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온다. 하지만 이런 급진적인 정책이라도 펼쳐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인구 문제는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고통스럽지만 모두들 지혜를 모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남북대화 (2018.03.06)


전후세대인 나는 어머니께서 이산가족이신데도 통일에 대한 절박함이 없다. 통일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국민들이 과연 이런 부담을 지려 들겠나 하는 의문도 들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통일과제’를 접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극한 대치상황에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니 평화공존을 모색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상대가 그렇지 못하니 그런 노력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특사 파견이 그리 탐탁하지 않았다.


오늘 특사가 돌아왔다. 방북과정이나 협의결과를 보면서 그동안 가졌던 의구심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고 여러 면에서 진일보한 것을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모든 과정을 공적 기구를 통해 공개적으로 추진했고, 우방과 사전조율을 거쳐 오해를 불식시켰으며, 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갖도록 만들어 북한에 끌려 다닌다는 비난의 소지를 잠재웠다. 이 모든 진전을 단번에 무산시킬 수 있는 난제였던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북한의 양해를 끌어낸 것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동안 북한의 태도로 보아 이번 합의가 지켜질 수 있을지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만에 하나 북한이 또 다시 합의를 번복한다 하더라도 이번 일로 정부에 대한 오해가 어느 정도 해소된 만큼 이전처럼 정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을 것 같다. 진전을 기대한다.



창조과학 (2018.03.07)


창조과학에서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역사를 과학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학은 지금도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오늘 기준으로는 어제의 과학이 온전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온전하지 못한 과학으로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입증하는 게 가능하겠나?



인공지능 시대 (2018.03.11)


인공지능이 지배할 새로운 시대에 살자면 가치관이나 생존방식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여러 의견을 살펴보니 대부분 공감하고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우선으로 꼽고 있다. 공감하고 협력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사람을 앞설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 본연의 도리를 회복하는 일이 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필수 요소라는 말이다.


이미 은퇴할 나이에 접어든 사람으로 어떻게 하면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아랑곳 할 일이 있겠나만, 그것이 지금까지 지키려 애썼던 가치와 다르지 않으니 참으로 반갑다. 자식 또한 그렇게 살도록 가르쳐왔고,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다행스럽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 (2018.03.16)


성동조선에서 돈을 받았단다. 아무리 돈에 눈이 멀었어도 그렇지, 어떻게 해서든 망해가는 기업을 살려보겠다고, 그래서 어려운 국민들 거리에 나앉는 일 없도록 만들겠다고 국민이 낸 피 같은 세금으로 쏟아 부은 그 돈을 받아먹는다는 말이냐. 명색이 대통령 부인 아니냐. 국민을 보듬어줄 거라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지만, 그래 그 혈세를.



진보의 도덕성 (2018.03.17)


최근 상당수의 진보 인사들이 성 추문에 연루된 일로 진보의 도덕성을 탓하는 글이 도처에 넘친다. 그런데 이게 진보와 보수의 문제인가?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닌가. 언제부턴가 진보는 도덕적이고 보수는 비도덕적이라고 여겨져 왔다. 도덕성은 진보니 보수니 하는 진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고 단지 개인의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번 일로 진보를 탓하는 건 적절치 않은 일이다. 진보가 도덕적이라는 주장이 적절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당부 (2018.03.17)


나는 지난 선거에서 문 대통령을 선택하지 않았다. 최근 그가 이룬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가 펼치고 있는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인격을 의심해본 일은 없다. 특히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진심으로 그가 재임하는 동안 큰 성취를 이루어내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취라는 것이 개인의 의지나 역량만으로 이루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니 그가 애쓴 만큼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전임 대통령들과 같이 피의자로서 국민 앞에 서는 일은 결코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후일에 국민에게 존경받는 국가 원로로 남아주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부디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글 쓸 자유 (2018.03.19)


시간이 갈수록 노인들이 대접받기 어려운 세상이 될 거란다. 경제에는 기여하지 못하면서 노인복지에 들어가는 비용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니 말이다. 그렇기만 하면 괜찮은데 젊은이들 가르치려 드는 건 도무지 봐줄 수가 없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가 말 수 좀 줄이라고 성화를 한다. 자식도 부모 잔소리는 듣기 싫은 법인데 누가 나이든 사람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하겠느냐,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옛날 사고방식을 내세워 봐야 망신 밖에 더 당하겠느냐고 한다. 다행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너그러워 아직까지 잘 대접해주는 것이니 이쯤에서 자제를 하란다. 나름 말 수를 줄이고 다른 사람들 말에 귀 기울이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 아내 눈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간혹 나이 든 명사들이 나와 젊은이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본다. 부럽기는 하지만 교훈이 될 만한 삶을 살지도 못했고 뾰족하게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것도 없으니 앞으로는 이래저래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할까보다. 그렇기는 해도 글 쓰는 것까지 뭐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해부터 치매 예방 삼아 하루 하나씩 글을 쓰고 있다. 글쓰기가 여러 유익이 있지만 무엇보다 글을 쓰기 위해 생각에 몰입할 수 있어 즐겁다. 간혹 이전에 써놓은 글을 읽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생각이 달라진 걸 깨닫기도 하고, 그게 옳은 건지 다시 살피고, 잘못을 발견하고 바로잡은 경우도 적지 않다. 이야기하는 거야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않는 한 듣지 않을 방법이 없으니 상대 심기를 살펴가며 이야기 해야겠지만, 글이야 읽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그러니 내게 글 쓸 자유를 허하라!



반성 (2018.03.26)


지난 세월 열심히 살았다. 어느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보다 더 열심히 살 수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어디에 내놓을 만한 삶은 아니었을지라도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알겠다.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계획과는 무관한 삶이었다. 모두 내 유익을 위한 열심이요 치열함이었다. 때로는 남을 배려하고 선을 베풀기도 했을 것이나, 그 조차도 내 만족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해야 할 주간에 삶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대고 있다. “다 너 좋자고 한 일 아니었냐”는 꾸짖음에 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가슴을 칠뿐이다. 깨닫게 하셨으니 바로잡게 도와주시지 않겠나. Kyrie Eleison.



찬양 (2018.03.30)


성가대원 하나가 집에서까지 부활절찬양을 준비했는데 본사와 화상회의가 잡혀 예배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낙심이 이만저만한 게 아닌 모양이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실적 때문에 압박 받는 걸 옆에서 느낄 정도니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 동병상린이라고, 나 또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찬양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을까,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정작 찬양을 드리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낙심이 되었을까 쉽게 짐작이 갔다.


내게는 성가대에 서는 일이 봉사가 아니다. 한 주 내내 부담과 압박으로 맺힌 울분을 풀어낼 수 있는, 그래서 마음의 평정을 얻고 새롭게 다시 한 주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얻는 회복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특권이고, 그로서 늘 큰 은혜를 누린다. 그 교우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고 그러니 낙심도 크지 않았겠나.


이 밤, 그렇게 고단한 중에도 언제나 우리 공동체 화목의 뿌리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그 교우 가정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시기를 기도한다.



라노비아 (2018.03.30)


대학 입학했을 때 만난 선배가 있다. 나도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선배는 나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철저하고 치열하게 살았다. 본업은 말 할 것도 없고, 조치훈 기성이 한창 날릴 때 임직원 앞에서 기보해설을 할 정도의 기력을 갖췄고, 꽃밭 제대로 가꾸겠다고 원예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서예전에 작품을 내기도 하고, 삼 년 만에 싱글 골퍼가 되기도 했다.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보았다. 직장생활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으로 은퇴하게 되었으니 직장인의 표상이 아닐 수 없는데, 정작 물러나게 되었을 때 울분을 삭이지 못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위로 삼아 그 선배와 한 열흘 여행하면서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지만 매인 몸이라 마음으로 그쳤던 일은 아직도 아쉽다.


처음 만났을 때 채 서른이 되지 않았던 선배가 이젠 일흔을 훌쩍 넘겼다. 지사에 부임하고 나서 전화 한 게 전부이니 못 본지 십 년이 넘었다. 선배가 막걸리 한 잔으로 불콰해지면 단짝이었던 친구와 어깨동무 하며 함께 불렀던 ‘라노비아’를 듣다 보니 문득 옛 생각, 옛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식사 당번 (2018.03.30)


이번 주 식사 준비하느라 교회를 다녀오면서 아내에게 묻고 싶은 말이 하나 있었다. 이미 오래 전 일이기는 하다. 공교롭게 교회 식사 준비하는 주에 내가 꾸물대는 통에 몇 번 늦은 일이 있었다. 대중교통이 있었으면 기다리지 않고 먼저 가기라도 하겠지만, 꼼작 없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보니 그저 내가 서두르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내가 폭발하고 말았다. 자기 애 먹이려고 일부러 늦장을 피운다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나. 늦은 건 미안한 일이지만, 아내 덕으로 내 흠을 가리며 살아온 것도 감지덕지인데 어떻게 애 먹이려고 늦장을 부릴 수 있을까. 억울했지만 아내가 워낙 화가 나 있어서 변명도 못했다. 며칠 지나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무슨 생각으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일부러 애를 먹이겠나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벌서 몇 년 전 일인데 교회 식사 당번을 할 때면 늘 그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어보지를 못했다. 내일 한 번 물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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